한 볼탱이 혀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 “어머니, 오랜만에 저녁 어때요?”라고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5년 전(손자를 봐준다고) 막냇동생 집으로 가신 뒤, 한 달에 한두 번 전화해서 용돈 몇 푼 드리고 외식을 한다. 어머니는 워낙 고기를 싫어해서 “연세가 드실수록 단백질도 가끔 보충해야 건강하대요” 한다치면 마지못해 “큰아가 좋아하는 거 먹지, 난 뭐가 좋은지 몰라”라고 딴전을 피운다. 그래도 “어머니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하면 “나는 지름기 자르르 흐르는 음식이 싫어” 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쟁이 시작된다. 삼겹살, 갈비탕, 갈비, 도가니탕, 추어탕, 감자탕 등 어머니가 한 번쯤 드셨던 메뉴를 일일이 나열한다. 그 후 “골라, 골라, 떨이요”해가며 어머니하고 전화로 한바탕 승강이를 벌였다.
“글씨, 경로당 할머니들이랑 갈비 먹었던 집이 있는디”
하시기에 그 집이 어딘가 생각나면 전화하세요. 차 가지고 모시러 갈게요. 그러자 “큰아 막걸리 한잔 해야지” 하시며 굳이 가게까지 걸어온다고 하셨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사시기에 금방 도착하실 것 같아서 밖을 여러 번 내다봤다. 마침내 어머니가 손가방을 들고 느릿느릿 걸어오고 계셨다. 마중을 나갔다.
“어머니 메뉴 정하셨어요?”
“아무거나 큰아 좋아하는 거 먹지” 또 그러셨다. 지금도 자식 좋아하는 거를 먼저 챙기시며 어머니는 언제나 뒷전이다. 우리 5남매를 키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어머니는 배부르다는 핑계를 대고 자식들 입에 넣어주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민물장어를 사드리고 싶었다.
“민물 장어 한번 드셔 볼 거요?” 지난번에 집사람하고 맛을 봤는데 입안에서 살살 녹습디다.
“장어를 푹 곤거여?”
“아뇨, 숯불에 구워 먹어요”
어머니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민물 장엇집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홀이 한산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여직원이 장어를 숯불에 올려놓으며 ‘고단백질로 소화도 잘된다고’ 장어 예찬론을 폈다.
“어머니, 거봐요. 몸에 좋다지요? 우선 막걸리 한잔 받으세요.” 하며 한잔을 따라드렸다.
“큰아도 한잔 받어” 하시기에 잔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어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노릇노릇 익은 장어 한 점을 양념장에 찍어서 어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갈비보다 부드럽지요?”
“응, 그려”
하시며 어머니가 고기 한 점을 상추에 싸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입을 벌리고 다가가는데 웬걸, 내 옆에서 장어를 구워주는 여직원 입에 넣어주려던 참이었다.
“중국에서 왔담시롱 한볼탱이(한입)혀요” 이어 ‘내가 읍시살아서 그런지 남의 입이 겁나게 커 보인단께!’라고 한 말씀 덧붙였다. 상추쌈은 여직원이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결국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입을 먼저 내밀었던 것은 아마, 어릴 적 어머니한테 받아먹던 버릇이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여직원은 오히려 챙겨줘서 감사하다며 중국에 있는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고 말끝을 흐렸다.
어머니가 장어 몇 점을 연거푸 드시는 걸 보고 ‘진즉 사드릴 걸, 어머니는 원래 고기를 싫어하시니까’라는 선입견을 앞세워 어머니한테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식사 중에 “너그들 내가 어떻게 키웠는디” 밑도 끝도 없이 혼자 푸념을 하셨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서 ‘저도 대충 알어유’ 어머니처럼 속으로 되새김질했다. 아버지는 서울로 돈 벌로 가시고, 우리 5남매 키우시느라고 무척 고생하셨죠. 한겨울, 눈이 무릎까지 차오를 때 땔감을 구하러 산에 오르셨지요.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동생 손잡고 대문 밖에서 덜덜 떨면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은 생솔가지 몇 개 꺾어서 끈으로 엉성하게 묶은 것을, 양손으로 끌고 눈길을 내려오셨습니다. 오자마자 푸른 솔가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고 군불을 집혔습니다. 청솔가지가 타면서 내뿜는 연기가 정지(부엌)에 가득 고였습니다. 저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훌쩍거리는, 당신의 모습을 문틈으로 훔쳐보았습니다. 고생보따리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무엇이든 좋은거면 남을 먼저 챙기셨습니다. 특히 음식 앞에서는 남의 입이 커 보인다고 ‘한 볼탱이 혀유!’라고.
한국산문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