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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글쓴이 : 박병률    17-07-25 22:24    조회 : 9,962

                                   까치밥

                                                                  

  단감나무에 올해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감꽃이 지고 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2개 남았다. 늦가을, 감이 붉게 물들어 갈 때 오며 가며 눈 맞춤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소리 소문도 없이 감 하나를 따갔다. 많은 것 중에서 하나가 없어졌다면 별로 표가 나지 않을 텐데 빈자리가 무척 커 보였다.

  어떤 계기가 되면 내 안에서 별의별 일들이 꿈틀거렸다. 서울로 이사 온 지 오래되었지만, 시골 장독대 옆에 서 있던 15년쯤 된 감나무가 떠올랐다. 감꽃이 피었다가 질 때 땅바닥에 튀밥처럼 하얗게 쌓였다. 먼저 주워 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동생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이슬이 묻어있는 감꽃을 옷에 대충 문질러 먹었다. 심심하고 밍밍한 군것질이었다. 때론 감꽃을 실에 꿰어서 동생 목에 걸어주었다. 감이 영글어갈수록 감나무 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막대기로 받쳐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웬걸, 감나무 잎에 가려진 감 하나!’ 누군가 입으로 베어먹었는지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 동생 한 짓이 뻔하다고 아버지한테 일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나를 다독거렸다.

  “까치가 와서 쪼아 먹었나? 동생 다그치지 마라.”

  하지만 내 눈에는 동생이 말썽꾸러기로 보였다. 다음 날 집에 아무도 없을 때였다. 마루에 걸터 앉아서 감을 네가 베어 먹었지?”라고 동생을 윽박지르며 큰소리로  몰아붙였다. 때마침 아버지가 동네 잔칫집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셨다. 대문 앞에서부터 으흠, 으흠.” 헛기침을 두 번 하시기에 얼른 받아쓰기 공책을 상위에 펴놓았다. 아버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동생이 어려서 말귀를 못 알아듣제?” 혼잣말 하시며 상위에 놓여있는 받아쓰기 공책을 뒤적거렸다.“병주가 글씨를 제법 잘 쓰는구나!” 삐틀빼틀 쓴 동생의 글씨를 보고 칭찬 하셨다. 내 목소리가 워낙 커서 동생 혼내는 것을 아버지가 다 들었을 테지만, 일부로 딴전 피우는 것을 중학생인 내가 모를리 없었다.

  나도 실은 동생 못지않은 개구쟁이였다. 딱지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얼음판에서 팽이치기며, 정월 대보름 때 불붙은 숯을 깡통에 넣고 공중에 원을 그리며 놀았다. 손등이 갈라지고 바지가 흠뻑 젖어서 어머니한테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아그들이 그렇게 놀아야 튼튼헌 게, 아따 그만 좀 허시유. 하시면 어머니는 뒤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속상하고 힘든 일이 닥쳐도 늘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 살 때 동생이 감을 베어먹은 것이 뻔하다고 아버지한테 일렀다. 아버지는 범인 잡을 생각은 안하고 까치가 감을 쪼아 먹었나?'라고 핑계를 대셨다. 아버지는 해마다 감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놨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동생 짓인 줄 뻔히 알면서 범인 취급하면 상처받을까 봐 염려했던 모양이다.

  처음엔 감 2개 중 절반이 사라졌을 때 남의 감을 왜 따 갈까?’ 라는 원망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오매, 징허네. 벼룩의 간을 빼먹지!"

  구시렁거리며 나뭇가지에 남은 감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런데 미워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고향 집 감나무에 남겨두었던 까치밥이 떠올랐다. 감을 따간 사람은 누구인지 몰라도 감 하나 남겨둔 마음씨가 대단히 크게 보였다.

  종이에 까치밥입니다.’라고 쓴 뒤 비닐로 씌워 감나무에 걸었다. 내 마음은 어느새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감이 홍시가 되면 까치가 날아와서 먹고, 먹다가 남은 홍시는 눈이 오고 날이 추워지면 감 아이스크림이 되었다. 이듬해 봄 반쯤 일그러진 홍시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홍시, 홍시.’ 이름만 불러도 입안에 단물이 고이고, 홍시에 관련된 시가 떠올랐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옛 마을을 지나며>전문

  가을걷이 때, 특히 우리 조상들은 논밭에 벼, , 수수 몇 포기를 겨울 철새 먹이로 남겨 두었다.

 

                                                         성동문학 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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