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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송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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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 겁나지 않아요    
글쓴이 : 송경미    17-08-09 09:06    조회 : 5,415

                                                      더위, 겁나지 않아요

이제는 아슴아슴한 기억 속의 일이다. 무더위를 쫓는 이야기를 하려니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나의 신혼시절 여름밤이 떠오른다.

다세대 주택의 4층이었던 우리의 신혼집은 비좁았고 침대도 에어컨도 없었다.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시작한 살림은 모든 게 작고 부족했다. 그럼에도 결핍을 모르고 그저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그 날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방에는 달랑 선풍기 한 대 뿐이었다. 콘크리트 건물의 맨 위층이니 하루 종일 햇빛을 받아 가열된 지붕의 열기와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공기로 방안은 정말 찜통이었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고 나는 가끔 늦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쓰러져 자곤 했다. 그렇게 더운데도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날도 남편은 늦었다. 나는 사우나실 같은 방에서 밍밍하고 더운 바람을 내는 선풍기를 켜놓고 창문도 닫아 둔 채 자고 있었다. 땀을 쪽쪽 흘리며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가 보다.

그는 차가운 물로 샤워한 몸으로 불덩어리 같은 내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세상에 이렇게도 시원한 것이 있다니.... 비몽사몽간에 느낀 그 시원함은 얼얼하고 차라리 짜릿했다. 깊은 숲 속 계곡에서 맞았던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 좋은 청량함과 상쾌함 그것이었다. 아침까지 푹 자고 방긋 웃으며 일어난 그날의 행복감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해 비밀스런 더위퇴치법을 알아낸 그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지금은 기온이 그때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그때보다는 덜한 것 같다. 더위를 쫓아낼 여러 방편들을 가지고 있으니 견디기도 쉬워졌다. 이미 편리한 환경에 적응되어 몸이 더위를 더 못 참게 된 것은 아닐까. 조금만 더워도 얼음물을 마시고 에어컨이 켜진 장소로 들어가며 아예 에어컨을 켜 두고 잠을 잘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밤마다 양재천으로 나간다.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밸 때까지 걷다가 아직 태양의 온기를 머금은 뜨듯한 돌 벤치에 앉아 쉰다. 물기를 품은 몸을 감싸는 따뜻한 바위는 아늑하고 포근하기가 엄마 품 같다. 더운 기운에 오히려 몸이 풀린다. 시원하고 차갑게만 하는 것이 더위퇴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이 알아차렸나 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바로 그 정서다.

, 가끔은 대형 찜질방으로 도망친다. 영하 2도의 아이스 방에서부터 150도에 이르는 한증막까지 각종 방이 있고 적당히 어둡고 편안한 토굴에서 시원하게 잠을 잘 수도 있다. 한증막에서 인내심을 시험하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앉아 땀을 빼다가 아이스 방으로 들어가면 천국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서너 번 땀을 빼고 나와서 훌훌 마시는 미역국은 정말 꿀맛이다.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는 풀코스 피서지로 날씨가 나쁜 날이나 휴일에는 남녀노소로 붐빈다. 5월만 되면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여름 날일을 걱정하며 여름잠에 들고 싶었는데 이젠 더워도 걱정이 없다. 잠을 설칠 일도 없다.

 

이제 남편은 냉수 샤워를 하지 않는다. 아니, 서로에게 그렇게 예민하지도 않다. 더위를 쫓을 에어컨을 가졌고 널찍한 침대에서 몸이 닿을 세라 양쪽 끝에 누워 떨어져 잔다. 침대를 따로 쓰지 않고 각방을 주장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시 한 번 냉수마찰한 몸으로 나의 더위를 식혀달라고 하면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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