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풍장
풍장이다.
시체를 드러내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이 아닌가! 늦가을, 한강의 갈대밭을 지나는데 바람이 세게 불었다. 갈대가 유난히 휘청거렸다.
“어쩌면 몸이 저렇게 가뿐하지?”
중얼거리며 갈대를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얼굴을 대고 사진도 찍었다. 무엇보다 '이런 몸으로 겨울을 어떻게 날까?'라는 생각이 컸다. 해마다 한데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았다. 겨울을 나는 동안 눈에 짓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곧게 서 있었다. 나는 이 길을 수없이 걸었다.
어느덧 가을,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다. 운동 삼아 중랑천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작년에 자주 걷던 길, 올해도 어김없이 갈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가 지났어도 갈대가 서 있는 모습은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쉬어갈 요량으로 갈대밭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갈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갈대 밑동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라! 생의 마지막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섞인 것처럼’ 푸름 속에서 듬성듬성 갈색을 띠고 있지 않은가. 새싹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비바람을 이길 때까지 울타리처럼 버티고 있다. 울타리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내 마음에 파도가 이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떤 울타리일까?”
양손으로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뭔가 뱅뱅 돌 뿐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뭔가 잘 떠오르지 않아 벤치에서 일어나 물가로 갔다. 징검다리를 건넜다. 한강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걸었다.
청계천에서 내려오는 물과 중랑천 물이 만나는 곳.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 물이 겸손해지려는 것과 달리, 물고기들은 가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위로 솟구친다. 물고기가 높아지려는 오랜 습성이다. 물가에서 가마우지가 모가지를 쑥 빼고 물고기를 노려본다. 가끔 부리를 물속에 처박지만 번번이 빈손이다.
어디 그뿐인가. 갈대밭 양쪽에 철 따라가며 꽃양귀비가 요염한 자태를 뽐낸 뒤, 이어 코스모스가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갈대는 붙박이처럼 한곳에 머물렀고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벌, 나비, 잠자리, 철새, 곤충이 찾아오고 물소리와 어우러졌다. 고개를 돌렸더니 갈대밭 한편이 움푹하다. 새털이 서너 개 빠져있는 걸로 보아서 철새가 머물다간 자리인 듯하다. 기나긴 밤, 갈대는 온몸으로 철새의 체온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밤하늘의 별을 세고 달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갈대를 우러러보았다. 갈대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 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
콧노래를 부르며 내가 머물렀던 벤치로 돌아와서 메모지를 꺼냈다. 갈대의 삶을 떠올려가며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늦가을, 갈대는 몸에 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았다. 겨울 찬바람에 흔들려가며 한데서 눈비와 맞섰다. 이듬해 봄이 오자, 갈대 밑동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어미 갈대가 어린 갈대에 젖을 물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아주 느리게 시간이 흘렀다. 여름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어미 갈대 몸뚱이는 야금야금 녹아내렸다. 그와 반대로 어미의 자양분을 받아먹은 어린 갈대는 웃자랐다. 어느새 내 키만 하다. 갈대는 여러해살이풀로 봄에 태어나 이듬해 여름까지만 산다. 갈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미 갈대는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걸 어린 갈대한테 다 쏟아부었다. 이제 잔치(풍장)는 끝났다. 6월이 온통 푸르므로.
시에 201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