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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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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국수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33    조회 : 4,650

콩 국 수

 

노 정 애

 

난 오랫동안 콩국수를 먹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콩 국물을 싫어한다. 여름이 오면 식당에 붙은 콩국수 개시에 고개를 돌린다. 어쩌다 일행들과 식당에 들어가면 콩국수 글자를 등지고 앉는다. 일행이 그 메뉴를 선택해서 먹으면 보지 않으려고 내 밥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다. TV에서 맛집에 콩국수 집만 나와도 속이 울렁거린다. 윤형두의 <콩과 액운>이라는 수필 콩의 뿌리엔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것이 있어서...’로 시작하는 글을 읽으며 혹시 콩국수에 대한 내용이 나올까봐 더 읽지도 못했다. 콩국수를 먹고 심하게 체한적은 없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체질도 아니다. 콩이 들어가는 밥이나 반찬은 무리 없이 먹으니 콩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던 중 한권의 책이 내 기억을 두드렸다.

공중그네131회 나오키문학상을 받은 오쿠타 히데오의 소설이다. 정신과 치료를 다루지만 어렵거나 지루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편한편이 코미디다. 읽으면서 내내 입이 벙싯거렸다.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고 꽁치만 봐도 구역질을 일으키는 선단공포증에 걸린 야쿠자 중간보스 세이치, 베테랑 곡예사지만 공중그네에서 자꾸 떨어지는 고헤이, 병원장인 장인의 가발만 보면 벗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다쓰로등 정신질병을 앓는 5명의 환자들과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사소한 계기, 질투, 불신, 직업, 내면의 갈등등이 정신질환으로 이어졌다. 이라부는 뻔한 치료와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주사바늘만으로도 커다란 공포인 세이치에게 매번 주사를 놓거나 공중그네 타기를 두려워하는 고헤이에게 하마 같은 몸으로 공중그네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의사의 처방은 엉뚱하고 엽기적이며 황당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치료과정들이 지나면서 환자들은 모두 돌파구를 찾는다. 이라부는 환자의 입장에서 행동함으로서 환자들 스스로가 능동적 의지를 갖게 만든다. 작가는 그 방법을 매우 구체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치료가 아닌 치유로서의 소설적 이야기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수긍하게 한다. 옮긴이 이영미는 작가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세상이니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살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병적 집착이나 두려움, 트라우마, 우울증등이 고질병이 된 요즘이다. 이라부는 현실을 피하지 말고 부딪쳐보라고, 가끔은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해보라고, 결과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처방하는 듯 했다.

 

여름이면 우리 집 냉장고에는 콩국물이 담긴 페트병이 항상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물대신 마시고 점심에는 콩국수를 즐겨 드셨다. 블록공장을 했던 우리집. 어머니는 새벽부터 공장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도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틈틈이 콩을 불려 삶았다. 소소한 집안일은 늘 내 차지였다. 여름방학이면 집에서 뒹굴던 나에게 아침식사 후의 설거지와 콩 껍질을 벗기고 믹서에 갈아서 패트병에 담아두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국수를 삶아 상을 차리면 간단한 점심이 완성되곤 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콩국수가 점심 메뉴였다. 나는 책만 보는 아버지도 땀을 흘리며 콩을 삶는 어머니도 싫었다. 뒤처리로 맡겨지는 설거지며 정리는 당연히 내 몫이라 더 짜증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난 콩국수를 먹지 않았다. 못된 성질머리가 극에 달했던 사춘기 즈음에 아버지에게 먹기 싫다고 대든 다음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이 모여 앉은 점심에서 나만 밥을 먹거나 비빔국수를 먹어서 눈총을 받곤 했다. 공장이 안정되어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콩물 만드는 일에서 허드렛일은 여전히 내가했다. 그 뒤 난 한 번도 그것을 먹지 않았다. 안 먹는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나중에는 밥상에 놓인 콩국수만 봐도 울렁증이 생겼다. 결혼하고는 패트병에 담긴 콩 국물을 안 봐서 좋았다.

 

아버지의 기일은 8월초다. 김해 어머니 집에서 온가족이 모인다. 어느 해인가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을 위해 엄마는 콩국수를 준비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먹자는 가족들. 나중에 따로 먹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의 당황하는 눈빛. 콩국수가 싫어진 오래전 여름이야기를 했다. 모두 아버지 탓이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야 그건 내 탓 이데이, 아부지가 간단하게 콩국수 묵으면 내가 낮잠을 좀 잘 수 있었다 아이가. 그래서 더 그랬제.”라고 했다. 나는 잊고 있었다. 반찬은 김치 하나면 되고 국수를 삶는 것도 대부분 내가 했다. 새벽부터 일한 엄마는 그 시간 꿀맛 같은 낮잠을 주무셨다. 젊은 시절 큰 교통사고로 힘든 일을 못하게 되신 아버지의 속 깊은 배려였으리라.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 담겼던 콩국수였다. 혼자되신 엄마에게 좋은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어머니의 짧은 단잠. 국수를 삶고 상을 차리는 내게 늘 조용히 하라는 아버지의 낮은 훈계, “당신 콩국 솜씨는 최고라는 아버지의 칭찬.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지셨던 어머니는 더 힘을 내서 일하러 나서시곤 했다.

 

윤형두의 <콩과 액운>을 끝까지 읽었다. 콩국수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요즘은 콩국수 먹는 사람을 보는 것은 견딜만하다.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의 음식이 아니던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공중그네에서 이라부는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맞아들이라고 한다. 그것조차 자신이 받아드려야 하는 삶의 무게라고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내가 이라부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먼저 비타민 주사를 한방 놓고 육중한 몸으로 배고프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으며 치료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일까 여전히 나는 콩국수를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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