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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손님이 중학교 친구라고?    
글쓴이 : 박병률    18-10-09 20:41    조회 : 5,796

                  밤손님이 중학교 친구라고?
                                                                                                                              
  
  신혼여행을 마치고 정오쯤 집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중학교 동창 정민이라면서, 재봉이한테 소식을 들었다며 결혼 축하.”한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밤중에 정민이한테서 '우리 집 앞이라며'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내가 대문 밖에서 두리번거리자 "나야 나, 병률이 하나도 안 변했네."정민이라는 사람이 나를 알아봤다. 정민이는 재봉이와 한동네 살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했다. 엊그제 재봉이를 만났다고도 했다.
  재봉이는 중학교 동창으로 내 결혼식에 참석했다. 전라도 광주에서 철도청에 근무했는데, 미혼이라 직장 근처에 방을 얻어서 혼자 살고 있었다. 정민이라는 사람이 재봉이 친구라는 말에 차 한잔 대접할 요량으로 집으로 안내했다. 차를 마시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앨범을 찾아봤는데 정민이라는 이름이 없던데.”
  “내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다른 학교로 전학 갔어.”
  “, 그래서 앨범에 사진이 없구나!”
  정민이 전화를 받고 중학교 앨범을 찾아봤지만, 정민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차를 마시면서 1학년 때 전학 갔다기에 궁금증이 풀렸다. 정민이가 찻잔을 앞에 놓고 학창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내 기억이 희미한지 정민이와 놀았던 추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신혼집이라고 해봤자 1층 방 한 칸 세를 얻어 살았는데 어느새 통행금지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민이더러 여관을 얻어 줄 테니 나가자고 하자, 정민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내게 물었다.
  “요새 패물이 비싸지, 집사람한테 뭐 해줬는가?”
  “금반지하고 시계지 뭐.”
  정민이를 집 근처에 있는 여관방을 얻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다녀와서 피곤했던지 잠자리에 들자마자 잠에 푹 빠졌던 모양이다.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병률아부르는 소리가 정민이 목소리였는데, 모깃소리 같이 가늘었다. 나는 자는 척했다. 잠시 후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듯 시차를 두고 미세하게 덜컹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창문을 뜯고 누군가 방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아내가 내 귀에 대고 밖에 나가봐.”라고 했다. 나는 코를 골고 자는 척하면서 속으로 전투(?)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오려고 고개를 내밀 때, 눈(目)이 밤송이 되도록 주먹으로 후려갈기거나, 목덜미를 휘어잡고 업어치기로 선제공격할 참이었다. 아내 보라는 듯 멋지게 한판 붙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쥐 죽은 듯 밖이 조용했다. 나는 그럴수록 주먹을 불끈 쥐고 경계태세에 들어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잠시 후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오더니 방충망이 뜯겼네.”라고 투덜거리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겁쟁이.”라고.
  아내에게서 방충망 뜯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란 척했다. “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아내한테 오히려 반문하고 친구가 일어났나?” 혼잣말하면서 정민이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갔다. 그가 자고 있었다. 정민이를 깨워서 밥 먹자고 재촉했을 뿐, 어제 일어난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 좋은 인연은 보기 좋게 가꾸고, 나쁜 인연은 걸러내서 물 흐르듯 사는 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이를 식당에 데리고 가서 해장국 한 그릇 시켜주고 바쁘다는 핑계 삼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때마침 재봉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중학교 동창이라고 정민이라는 사람이 찾아가면 조심하게. 만나면 따귀를 때리고 싶단게. 월급봉투를 헐어서 저녁도 사주고, 코가 삐뚤어지게 술도 사주고, 집에서 함께 잤는데 월급봉투를 훔쳐갔단게.”
  “오메 돈을 몽땅 털렸으니 어쩌야쓰까 잉.”
  재봉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재봉이처럼 당한 꼴이었다. 어젯밤 일을 떠벌리면 재봉이 마음이 더 상할까 봐 입도 뻥긋 안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결혼기념일만 돌아오면 정민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정민이가 중학교 동창 맞을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과거가 오늘의 부분이 되고 오늘 전체는 내일의 부분이 되듯, 괜히 궁금해서 아내한테 정민이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정민이라는 사람이 우리 방 창문을 넘어오려고 방충망도 뜯고 소란을 피웠지?”
  “뭐가 그리 재밌소, 겁쟁이가! 집에 난리가 몰아쳐도 뒷짐만 지고 있읍디더. 사내대장부가 간이 콩알만한교.” 아내는 나더러겁쟁이라고 놀리고, 나는 누가 창문 열고 넘어오면 순식간에 업어치기로 적을 제압하려고, 코를 고는척했단게.”라고 우겼다.  
   
 
                                                         성동문학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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