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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언덕    
글쓴이 : 정민디    18-10-26 08:41    조회 : 5,200

                                      시인의  언덕


                                                        정민디                                                                                             

 언덕에 올랐다. 저 아래 도심의  풍경이 한 눈에 가득히 들어온다. ‘오늘도 가을 바람은 그냥 붑니다' 라는 시인의 노래를 읖조려 본다. 시인은 이 자리에 서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음직 하다.  

시인의 언덕은 윤동주 문학관이 개관하기 이전인 2009년에 조성됐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와 종로구청이 주도한 문화사업의 일원이다.이후 2012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청운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이 탄생한 것이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윤동주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ㅊ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문학관에서 매주 일요일 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27살 나이에 후쿠오카 감옥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외롭게  죽어 간 젊은이를 얘기해야 한다. 늘 먹먹하다. 누이의 마음 , 어머니의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겪어내야 했던 시대가 원망스럽다.

           

           추운 동섣달 눈 속에 핀 꽃은,

           차가운 얼음 아래 헤엄치는 잉어는,

           비장해서 눈물 겹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가

           비참하게 요절한 청년시인 윤동주의 인생 역시

           비장해서 눈물 겹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동섣달 핀 꽃처럼,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처럼.


  문학관 입구로 들어서면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의 유고시집 출간을 기념해 쓴 서문을 만날 수 있다. 1948년 31편의 시를 모아 세상에 내놓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린 글이다. 조국이 겪어내야 할 질곡의 역사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시인이 지키고자 한 영혼의 순수는 곧 별이다. 애타게 별을 헤며 노래한 것이 시로 남았다.    

 윤동주와 청운동의 인연은 그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하던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시절, 그는 학교 후배였던 정병욱과 함께 종로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 송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당시 시인은 종종 근처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곤 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詩)'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을 이 시기에 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친필원고를 고이 간직하였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한 후배 정병욱은 “그의 성격 중에서 본받을 일이 물론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본받을 장점의 하나는 결코 남을 헐뜯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일이었다.” 고 회고했다.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추운 겨울 눈 속에 핀 꽃과 같았던 윤동주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인의 집이라는 의미의 '시인채'로 불리는 이곳 전시실에서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한 사진자료와 함께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명동 소학교 졸업사진부터 그의 장례식 사진까지 볼 수 있다.

 고뇌에 찬 낙서가 가득한 친필원고도 눈에 띤다. 1942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유학을 결심한 윤동주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 창씨개명을 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 '참회록'이라는 시 한편을 남겼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로 시작되는 유명한 작품이다.그가 남긴 시 옆에는 '시인의 삶, 비애, 생(生), 생존(生存), 문학(文學), 모르겠다(不知道)' 등 단어들이 복잡하게 적혀 있다.  고민하는 윤동주의 모습이 시 여백의 낙서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자신의 조선 이름을 쓴 시인의 필체를 들여다 보면 식민지 지식인의 슬픔, 순수 민족시인의 고뇌가 느껴진다.


 우물가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릴 수 있는 '제1전시실'의 가운데에는 그의 고향인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가져온 우물 목판이 놓여 있다. '우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자신을 돌아봤을 우물은 곧 '성찰'을 뜻한다. 이 우물에 대한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자화상'을 낳았다. 이곳 문학관의 전체적인 테마도 '우물'이다. 제 1전시실을 지나면 물탱크를 개조한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로 이어진다.

  연결된 철문을 지나면 '열린 우물'이 나온다. 문학관 설계 도중 발견된 물탱크를 윗부분만 개방해 그대로 활용했다.우물속에는 자갈들과 수초가 있고 위를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이 만져질 듯 다가온다. 벽돌로 촘촘히 쌓은 물탱크에 저장됐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낄 수 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다시 이 우물과 연결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둡고 음습한 방이 나온다. '열린 우물'과 대비되는 이곳은 '닫힌 우물'이라고 불린다. 제 3 전시관이다.  '열린 우물'과 달리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사방이 막혀 있는, 언뜻 감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1945년 2월 16일 윤동주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후쿠오카형무소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참회의 공간 또는 침묵하고 사색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1943년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경찰에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철문이 닫히고 '닫힌 우물' 내부에 빛이 모두 사라지면 윤동주의 인생을 짧게 정리한 영상물을 볼수 있다.  시인이 마지막 순간에 자기 인생을 정리하며 돌아보는 듯한 느낌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볼 수가 있다. 깜깜한 우물 안은 침묵 속에서 먹먹해진다. 영상을 통해 시인이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가보니 '모자에 진 작은 주름 하나도 견디지 못한 사람, 영혼의 구김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동주는 참 순했어요.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금방 눈물이 글썽글해졌어요.”


 문학관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는 뒤편에는 우물가에 토종닭이 뛰어놀 듯한 ‘별 뜨락'이라는 정감있는 이름의 쉼터가 나온다. 이곳을 거쳐 '시인의 언덕'에 올라보자. 산길 성벽을 타고 조금만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른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북악산을 감상할 수 있고, 곳곳에 '서시', '슬픈 족속' 등 윤동주의 시를 새긴 시비(詩碑)도 만날 수 있다.

 오늘의 시대를 일러 ‘수치를 모르는 시대’,’지조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옳은 말을 하는 선비정신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열망하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순결한 시로 자극을 받아보고 싶은 때이다.

                                                                       

                                                                                                                                         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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