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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담과 함께한 토요일    
글쓴이 : 김단영    19-04-12 23:16    조회 : 4,171


토담과 함께한 토요일

김 단 영  

 

친애하는 토담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친애한다는 표현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벌써 3~4년 전이네요. 그때는 허물없이 장난도 치는 친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뵙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니 편지글을 쓰면서도 예의를 갖추게 되는군요. 지난번 전시회 때 꼭 가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사정이 생겨 가질 못했습니다. 수강생은 많이 늘었겠지요? 항상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네 시간씩 선생님께 수업받던 시간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토담 선생님의 글씨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서예 선생님의 전시회 뒤풀이가 열린 식당에서 처음으로 토담체를 발견했답니다. 나무에 새겨진 날마다 소풍이라는 글씨가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다짜고짜 식당 주인에게 누구의 작품이냐 물었더랬지요. 소풍 가느라 들뜨고 즐거운 발걸음이 글씨에서 오롯이 느껴졌는데 반석 선생님의 글그림이후 크게 감명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서예 선생님의 SNS를 통하고 식당 주인을 거쳐 드디어 토담 선생님의 SNS와 연결이 되었어요. 그렇게 작업실 위치를 확인하고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던 것이랍니다.

배운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또 배울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때 함께했던 새론 샘과 린 양의 근황도 가끔 궁금해지곤 한답니다. 린 양은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교사라서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어 했고, 새론 샘은 POP 글씨 지도교수였는데 새로운 손글씨를 배우겠다고 대구에서 울산까지 한달음에 달려오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강생은 이렇게 달랑 셋뿐이었지만 선생님은 마치 300명을 가르치는 듯한 열정으로 수업을 해 주셨지요. 가르치고 배운다기보다는 서로 어울려 즐거운 놀이를 한다느낌이었어요. 내 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일깨워 주는 열린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시종일관 즐거웠다는 기억만 가득합니다. 글자도 그림처럼 얼마든지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알려주셨지요. 못나게 쓰는 게 잘 쓰는 글씨라는 말씀에 못 쓰려고 노력했던 엉뚱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릴 적에 한글을 처음 배우면서 삐뚤빼뚤 글씨를 적었습니다. 자라면서 글자는 가지런하게 써야 한다고 배웠고, 배운 대로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아왔지요. 게다가 저는 서예를 좀 배웠던 터라 글씨란 모름지기 모난 데가 없이 고르고 균일하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토담 선생님의 글씨를 만나고 나서는 굉장히 자유로워졌습니다. 서예반 회원 중에는 제가 캘리그래피 글씨를 배우는 일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분도 계셨지만, 그건 아마도 저의 작품이 이도 저도 아닌 흐지부지한 글씨가 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 수업을 계기로 오래 묵혀 두었던 붓도 꺼내 보고, 녹슬었던 꿈과 소망도 닦아 보게 되었답니다. 캘리그래피로 쓰면 좋을 시도 검색해서 외워 보고, 찬송가만 부르던 제가 가사 내용이 좋다 싶은 가요를 골라 듣고 흥얼거려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영화 포스나 책 제목, 과자 봉지에 적힌 상표나 글씨에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요. 석 달 남짓의 짧은 간이었지만 글씨의 기교가 아닌 개성감성을 표현하도록 가르쳐 주신 토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란 그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배울 수 있도록 돕는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우리에겐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어요.

 

수업 중에 특히 좋았던 활동은 커다란 작품지를 바닥에 깔고, 여럿이 번갈아 가며 한 글자씩 써서 완성하 것이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크고 작게, 밀도 있게 여유 있게, 촘촘하게, 반전이 있게, 그리고 농담(濃淡)섞어 가며 다채로운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집중했습니다.

실수로 틀리게 쓴 글자도 선생님 순서가 되면 예술적으로 바뀌었지요.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멋진 작업이었답니다. 또 우리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하면 벽에 걸어 놓고 기념 촬영하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선생님도 기억나시죠?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을 담은 사진은 SNS에 저장되어 가끔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곤 한답니다.

 9주간의 캘리그래피 수업이 모두 끝난 자리에서 선생님은 이제부터의 실력은 각자의 연습량이 결정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혼자서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니다.

 

토담 선생님의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서각하는 캘리그라퍼 토담 김상진

캘리그래피 수업에 이어 서각(書刻) 수업까지 수강 신청을 했던 건 선생님께 좀 더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랍니다. 붓끝을 가다듬어 조심스레 써 내려간 글씨도 굉장한데 하물며 칼로 새기는 작업이라니. 서각의 매력에 또 한 번 푹 빠져들었지요. 초보자에게 자꾸만 잘한다칭찬을 해 주시니 격려의 말씀인 줄 알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답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서각 작업에만 몰두해야겠다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지만 지난 연초의 전시회를 끝으로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어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토담 선생님께 캘리그래피와 서각, 두 가지 수업을 받으면서 모리와 함께했던 화요일을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미치가 모리 교수와 대화를 나누며 삶을 더 깊게 이해했듯이,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삶과 인생, 그 너머의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여러 순간순간도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작품 구상하느라 머리를 질끈 동이고 고민하시던 모습도 생각이 나고, 서툰 글씨를 표현하려 책상에 올라가 발가락에 붓을 끼우고 쓰시던 모습도 생각이 나 웃음 짓습니다. 설렘이란 두 글자를 써놓고 정말 설렜다는 선생님은 아마도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영혼을 가지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쯤 울산 태화동의 가로수길 낙엽들이 아름다운 가을을 그려 놓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동네에도 까마귀가 조금씩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태화강 십리대밭에도 곧 까마귀 떼가 찾아와 장관을 이루겠지요.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 버리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공방을 찾아가 뵙겠습니다.

내내 감기 조심하시고, 부디 늙지 말아 주세요. 토담 선생님의 블로그 닉네임처럼 더클소년으로,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토담 선생님, 많이 존경합니다 

울주군 상북에서 단영 올림.



-수수밭길 동인지3호 《맑은 날, 슈룹》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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