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의 기억
앳된 새댁이 갓난아기를 안고 식당에 들어선다. 몸 푼 지 얼마 되었느냐 물으니 이제 삼칠일(21일) 되었다 한다. 조리기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먹고 싶은 거 먹으러 나왔다며 수줍게 웃는다. 산모의 배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하다.
새댁은 밥상 앞에 앉는다. 아기를 눕힌 여인은 불안해 보인다. 갓난이 눈동자는 엄마의 음성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고, 손톱만 한 입술은 오줌을 누는지 한껏 오므리고 있다. 고새 기저귀가 젖었는지 응아응아 운다. 산모는 울음소리가 나자 가슴에 손을 댄다. 젖이 도나 보다. 유즙이 흠뻑 밴 저고리 속을 무명수건으로 받친다. 기저귀를 살핀 그녀가 곧 아기를 안고 벽 쪽으로 돌아앉는다. 내 몸이 허공에 뜬 것 같아. 먹어도 자꾸만 배고파. 여인은 남편 품에 아기를 건네고는 다시 숟가락을 든다.
첫애를 낳았을 때 시어머니는 내 가슴을 보며 헛웃음만 치셨다. 쯧쯧, 생긴 거 하고는. 유방이 그렇게 작아서야 어디. 어머니의 불똥 같은 시선을 면전에서 받으며, 나는 3킬로의 신생아를 안고 안절부절못했다. 58킬로그램의 임산부 몸에서 양수와 혈액, 태아와 태반 10킬로가 빠져나왔으니 산모 몸무게 48킬로였다.
밥 줘! 먹을 것을 좀 달라고!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아기는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 젖혔다. 마음은 수유할 자세가 되었지만 몸은 준비가 안 됐는지 가슴이 도무지 팽팽해질 기색이 없었다. 아기의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유두를 물고 늘어지는데, 나는 그 모양이 두렵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이 점점 자라 지능화되고 사회화되면 즐기고자 먹고 누리고자 먹겠으나, 아기는 단지 살기 위해 먹을 뿐이었다. ‘나는 살고 싶다’라는 기능대회에 나간다면 신생아가 단연코 1위를 차지하리라.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일분일초가 몇 시간처럼 흘렀다. 가슴이 저릿저릿하더니 풍선에 물을 담듯 유방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유즙이 유관을 타고 유두로 쏠리면서 가슴 전체가 바위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잔잔하고 어두운 우물에 쇠뭉치 하나가 떨어져, 파동을 일으킴과 동시에 맹렬히 솟구치는 왕관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마그마와 같은 온갖 물질들이 잠든 지상을 향해 일제히 터져버리는 활화산의 폭발처럼 느껴졌다. 달리 비유하자면, 수평선 아득히 먼 저 지구 끝까지 쓸려갔다가 순식간에 밀려오는 해일 같다고나 할까.
‘보세요, 어머니. 내가 이겼지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후 아기의 젖줄은 더욱 커지고 팽배해졌다. 날이 갈수록 유륜은 또렷해지고 유선은 나뭇가지가 새끼를 치듯 길고 푸르게 뻗어나갔다. 수유에 탄력을 받은 아기는 세차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시작했다. 만족한 표정으로 단꿈을 꾸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볼 때마다, 어미의 가슴은 등불을 켜는 것처럼 어김없이 젖이 돌곤 하였다. 종국에는 솟구쳐 남아돌기까지 하는 유즙을 감당할 수 없어, 그릇에 받아 밤마다 주인집 굴뚝 뒤편에 몰래 내다버리기까지 하였다.
아기의 입심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여린 어미의 유두를 초토화하고야 말았다. 뉘에게 하소연할까. 아무런 대비책도 세워놓지 못한 나로서는 대략난감한 일이요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이었다. 그 시간들이 살을 도려내듯 아파서, 갓난이를 끌어안고 젖을 먹이면서도 이를 악다물고 눈물만 흘렸다. ‘천사 같은’ 이 아기는 배고플 때 집요하게 파고들다가도 젖이 넘친다 싶으면 잇몸에 온힘을 주어 깨물고 비틀어댔다. 어찌나 물고 잡아당기는지 갈라지고 찢어져 생딱지가 앉았다. 아기는 우는 제 어미를 빤히 올려다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할당량을 가져갔다. 항생제를 삼킬 수도, 지혈제를 바를 수도 없었다. 아기의 행위는 오로지 먹는 일에만 몰입돼 있었으며, 어미가 아프거나 말거나 ‘내가 할 일은 원래 이것이고 네가 할 일은 그것 아니더냐? 그러니 좀 참아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독일의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향수》의 도입부에는, 썩은 생선더미에서 건져온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 잔 뷔시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내걸 전부 뺏어 먹었어요. 얘가 전부 빨아먹는 바람에 나는 이제 뼈만 앙상해졌어요. 이 사생아는 전부 먹어 치워 버린다고요.” 유모는 그 아기 때문에 자기의 몸이 10파운드나 줄었다며 테리에 신부에게 하소연한다. 문장가 쥐스킨트는 이 부분을 적절하게 기술해 놓았다.
실제로 젖먹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기에게 한 번씩 젖을 주고 나면 날아갈 듯 가뿐하고 가벼워짐을 느낀다. 또 금세 배고파진다. 수유부가 섭취하는 모든 영양분은 대개 젖줄로 모여 아기에게 전해진다. 물 한 잔만 마셔도 유방은 극도로 팽창하며, 어쩌다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하면 가슴이 따끔거리고 아기는 탈이 나기도 한다. 미각에 예민한 아기가 용케 알아차리고 혓바닥을 내밀며 인상을 찌푸리고 마는 것이다.
아기는 어미의 정신과 육체의 모든 성질을 무섭게 빨아들인다. 갓난아기는 경이롭지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때론 가볍게 때론 아프게 만든다. 그는 어미 몸에 있는 수천억 수십조의 세포 알갱이, 피와 골수, 체액까지 모조리 흡수하여 제 것으로 소화한다. 수유하는 동안 어미의 몸은 아기의 성장을 위해 쉼 없이 재생하며 아물어간다.
아기의 고픈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감전된 것처럼 여전히 가슴이 뭉클하고 쪼뼛해진다. 하고 있는 모든 걸 팽개치고 당장 젖을 물려야 할 것만 같다. 허공에 뜬 것처럼, 자꾸만 배고프다고 되뇌는 산모에게서 나는 오늘의 문장을 읽는다.
-《수필과 비평》2019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