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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릴 수 있을까    
글쓴이 : 진연후    19-10-06 19:17    조회 : 7,671

살릴 수 있을까

진연후

답답하시죠, 저는 환장합니다. / 직진만 1박 2일, 집에 가고 싶어요. / 당황하면 후진해요.

출근 길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본 초보운전 스티커 문구들이다. 어떤 글귀가 초보자의 상황과 심정을 가장 잘 전달하여 배려 받을 수 있을까 괜한 고민을 하며, 핸들을 잡았던 그 날을 떠올린다.

“언니, 브레이크를 밟고 키를 돌려” 동생은 답답한 내색 없이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인터넷에서 초보자 시동 거는 법을 찾아 수십 번 읽었건만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엑셀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만 대여섯 번. 발은 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키를 꽂고는 핸들에서 두 손을 떼지 못했다. 한여름은 지났지만 창문을 내리지도 못하고 삼십 분이 넘도록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으니 얼굴이 벌게졌다. 누군가 나를 보면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동생에게 휴대폰으로 실시간 지시를 받아가며 면허증을 딴 후 이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시동을 걸어 보았다. 작년 여름 올케가 미국에 6개월쯤 갔다 온다며 자동차를 맡겼다. 올케는 이참에 운전 연수를 받아서 차를 끌어보라고 했지만 팔월엔 너무 더워서, 그 후론 하는 일 없이 바빠서 한 달이 넘도록 주차장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차를 모른 척 했다.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하기 싫은 숙제였다.

“차 오래 그냥 세워두면 배터리 방전되는 거 알지? 가끔 시동이라도 걸어주어야 해.”

운전경력 20년 넘은 친구 화영이 가볍게 던진 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되어 버렸다. 키를 돌리는 순간 차가 앞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엔 차를 움직이게 하는 여러 장치들, 기어를 움직여야 한다거나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주어야 하는 것 등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시동 걸기만으로도 바퀴가 굴러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거지? 차 말이야. 아직 살아있으니까 이제부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운전석에 앉아서 라디오도 틀어보고 해. 자꾸 앉아 있어보면 그 자리가 조금씩 익숙해질 거야. 그게 차도 살리고 너도 좀 더 편하게 살게 되는 길이고... .”

다음날, 아이들 학원 데려다주는 뚜렷한 목적으로 운전대를 잡는 친구들 중 한 명인 윤정의 전화를 받았다. 차를 잘 살려두란다. 자동차는 굴러가야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니, 제대로 살리려면 바퀴를 굴려야겠지.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겁이 많은데다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지 못해 미래가 불안했던 이십 대 중반 운전면허증에 도전했다. 면허증을 따면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뭐든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면허증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더구나 ‘해도 된다’와 ‘할 수 있다’사이는 참으로 멀어서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삼십대 중반, 변화가 없는 삶이 조금은 지루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을 보며, 막연히 꿈꾸었던 것 중 하나인 글쓰기를 생각해냈다. ‘장롱면허’로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운전을 해도 된다는 것에서 글을 써도 된다는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등단이란 건 그저 면허증에 불과했다. 시동을 걸 듯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십 오년 째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애가 안 해서 그렇지 공부를 하기만 하면 잘 할 애에요.” 부모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공부를 잘 하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 운전을 잘 하려면 차를 끌고 도로로 나가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써야 한다. 초보운전 시동 거는 법. 초보운전 핸들 조작 방법. 초보운전 차선 맞추기. 초보운전 신호 보는 법. 운전을 글로 배우는 건 부모가 학원 정보만 수집하러 다니는 것과 같다. 로또를 사지도 않고 복권 1등에 당첨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애초 계획보다 길어진 일정으로 일 년 만에 올케가 돌아왔다. 시동 걸기 40여 번으로 차는 살려 놓았지만 운전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이다. 일주일에 한 번, 준비운동만 10분씩 하며 일 년을 보낸 차도 참 답답했겠다. 차는 말이 없는데 주위에서는 다들 한마디씩 한다. 결혼이 쉽겠어, 운전이 쉽겠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떡할래? 슬슬 운전을 배워 볼래, 아주 열심히 글을 써 볼래?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막연한 두려움에 갇혀서 원래 열정이 없었어. 재능이 없어. 세상이 무서워. 그렇게 핑계대면서 진짜 살리고 싶은 것을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처음 시동 거는 마음으로 살리고 싶은 목록을 작성해 본다. 이 글이 완성되면 살리고 싶은 것 1호가 되는 셈인가.

그로부터 일 년 후... . 당신도 한 때는 초보였다 라는 문구를 붙이고 그녀는 오늘도 멋지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드라마라면 이렇게 끝을 맺겠지만 현실은 여전히 버스 안에서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라는 문구를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한국산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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