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겠다
진연후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부러워하는 것이 왜 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는다면 웃음이 예쁜 사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등 부러운 이가 한둘이 아니어서 “와, 좋겠다, 부럽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나는 이기는 것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엄마가 척추 수술을 했다. 컴퓨터로 MRI 사진을 보여주며 수술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같이 설명해주는 의사들 앞에서 머릿속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예정 수술 시간을 넘기고 나온 담당의사의 수술 가운이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일정 시간을 넘기고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정신없이 부르며 울고 있을 때, 좀 늦게 깨어나는 거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는 동화 속의 빨간약 같았다.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20여 일 동안 통증이 있거나 열이 오르거나 할 때마다 무엇이 잘못된 건 아닌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많이 아프죠? 여기가 좀 아플 거예요. 잘 아물고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예요. 그들에겐 매일 만나는 일상적인 일, 수많은 환자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데도 고통을 알고 있다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말 한 마디와 부드러운 표정이 간절했다. 그것은 효과 좋은 진통제보다 더 빠르게 마음을 달래 주었다. 매일 아픈 사람만 만나는 직업이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사람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왜 부러워하는지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좋은 직업이라고 부러워하는 진짜 이유를 알았다. 그들은 내게 대단한 존재, 부러운 사람이 되었다.
학원에서 중학교 3학년 독서토론 수업시간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고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에 행복해 보이는 이가 누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이 행복한 것 같은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생각되는 부모 밑에서 열여섯 살의 아이들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아마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부자들을 떠올렸을 거라고. 그런데 라다크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물질의 풍요만이 행복의 완전한 기준이 되는 건 아니구나 느꼈다며 주변 사람들 중에서 정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단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엄마처럼 살래? 그런 말은 정말 듣기 싫어요.”
“우리 아빠는 의사예요. 돈은 좀 많이 버는 것 같은데 아빠가 아주 행복해 보인 적은 없 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누구냐고요?”
“그래도 난 돈이 많은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그럼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 거냐구?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거네.”
“그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면 돈을 많이 벌어야하는 거지요.”
아이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무시하기 힘들다는데 결론을 낸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꼭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을 거란다.
행복해 보여서 부러움을 사는 이들은 누구일까? 어느 개그맨은 남을 웃길 때 가장 행복하단다. 선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행복해 보인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들 중 불행하다는 이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부러운 건 그들이 가진 능력이 내게 있다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거나 불안한 이들을 치유해주고 안정을 주는 능력, 좌절하거나 실망한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나는 참 부럽다.
아주 간혹 주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니 좋겠다고, 부럽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 부러운 일을 나는 행복하게 하고 있을까?
책과 인생 - 201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