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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체조 시작!    
글쓴이 : 박병률    20-12-11 04:15    조회 : 8,336

                                        보건체조 시작!

 

  ‘00 한강공원에는 평상이 군데군데 놓여있고, 천막 아래 벤치에서 어떤 사람이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자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비닐을 덮은 체 신발을 신고 잤다.

  잔디밭에는 빈 술병이 나뒹굴고, 먹다 남은 통닭 부스러기며 페트병과 비닐봉지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걷는 운동을 하는데 월요일 아침 공원풍경은 다른 날과 달리 쓰레기 천지다. 앞서가던 부부가 손가락으로 쓰레기를 가리키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여보, 쓰레기 좀 보소. 억수로 많십니더!”

  부인이 쓰레기를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자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일자리 창출이유. 일자리 만든 공로를 높이 사서 쓰레기를 버린 사람한테 감사패를 줘야유!”

  남편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자 부인이 되받아쳤다.

  “당신은 아침부터 누구 약 올리는교?”

  부인 목소리가 컸던지 빗자루를 들고 있던 환경미화원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부부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은 다음 장갑 낀 손으로 쓰레기를 주워서 봉지에 담았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빈 깡통을 줍거나 쓸만한 물건이 있나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편은 환경미화원한테 수고 혀유.”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공원에서 쓰레기를 봐왔던 터라,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지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평상으로 다가갔다. 평상에는 꽃가루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고 입으로 불어서 꽃가루를 날려 보낸 뒤 자리에 앉았다. 잔디를 깎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풀냄새 은은한 향기가 내 안에 퍼질 때 코를 벌름거리며 공기를 빨아들였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윤사월, 내 눈길은 밖에서 자는 사람 쪽으로 쏠렸다. 누군가 벤치에서 비닐이나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기분도 전환할 겸 강둑에 핀 개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둠에 가려서 꽃이 희미하다. 강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고 공원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내 마음은 시 세계로 풍덩 빠져들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박목월 시윤사월이 떠올랐으므로.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 엿듣고 있다//

  눈 먼 처녀가 문설주에 귀 대고 꾀꼬리 소리를 듣는 것처럼, 공원 벤치에서 자는 노숙인도 운동 나온 사람들 발소리를 듣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거리다가 장롱에서 두꺼운 티셔츠 2벌을 챙겨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내가 아끼던 옷인데 헌 옷이라고 싫어하면 어쩌지?” 혼잣말하며 볼펜과 메모지를 챙겼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망설였습니다. 제가 입던 옷인데 장롱에서 꺼냈습니다. 추위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두꺼운 티셔츠 2벌을 놓고 갑니다. 힘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라고 쪽지를 써서 옷 봉투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옷 봉투를 들고 00 한강공원으로 새벽 운동을 나섰다. 공원에는 걷는 사람, 달리기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 기대 반 설렘 반 벤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젯밤처럼 두 사람이 벤치에서 따로따로 자고 있었다. 비닐을 덮고 자는 사람 곁으로 다가가서 소리 안 나게 옷 봉투를 내려놓았다.

  이튿날 공원에 갔는데 노인이 자주색 내 티셔츠를 입고 맨손 체조를 하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잠자리에서 막 일어났는지 빨간 가로무늬가 선명한 내 티셔츠를 입고 벤치에 앉아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잠시 후 기지개를 켜던 중년 남자가 노인 곁으로 다가가서 맨손 체조를 따라 했다. 나는 맨손 체조를 하는 두 분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체조하는 모습은 마치 수렁에 빠진 사람이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맨손 체조는 국민 보건체조라는 이름으로 1970년도 말, 대한민국에 널리 보급되었는데 두 남자는 순서와 상관없이 이어갔다.

  보건체조 시작!

  “팔 운동,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다리 운동, 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옆구리 운동,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몸통 운동,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숨쉬기 운동,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내가 멀리서 두 분을 바라보며 속으로 구령을 붙일 때 아침 해가 붉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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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문학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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