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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없는 새    
글쓴이 : 오길순    22-07-10 12:14    조회 : 5,602

                                                           날개 없는 새

                                                                                                                                           오길순

부원군처럼 뒷짐만 지고 있던 그도 놀랐으리라. 잔칫상을 수십여 년 기꺼이 차려온 아내가, 십여 년 정성껏 모셔온 조상님 봉제사를 줄이겠다니. 예초기를 메고 선영 벌초까지 하신 시어머니에 비하면 호강이었음직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오는 무한책임에서 죽느냐 사느냐, 숨 쉴 겨를이 절실했다.

시어머니는 날개 없는 새처럼 사셨다. 시제며 기제사로 발이 땅에 닿을 새가 없어보였다. 열일곱 살 분꽃 같던 소녀가 등 굽은 팔순이 넘도록 오일장을 얼마나 날아다니셨을까? 비린내 가실 날 없는 생선동구리를 씻다가도 떡방아 절구질을 하셨을 것이다. 가용주로 제주를 하고, 남새밭 채소를 팔아 보태도 부족했을 봉제사 접빈객, 그래도 일찍 잠들 수 있는 삶이 감사하셨을 터이다.

그래서 집안이 잘 된다고, 자손도 넉넉히 잘 자랐다고. 자자일촌 풍성히 나눌 때마다 이웃들 칭송도 자자했으리라. 무릎이 꺾이고 자라목이 되어도, 타고난 종부라며 칭찬했을 것이다. 훗날 보았다. 근심만 가득한 시어머니 고운 얼굴, 금방 울음이 쏟아질 듯 웃음기 사라진 그 분의 사진들을. 실은 생전에도 큰 웃음 한 번 웃으시는 걸 뵌 적이 없다.

어디 양반 고을 종부는 평균 수명이 7,8년 짧다고도 한다. 남편을 위해 태어난 듯, 남편의 조상만을 섬기다 가셨을 거룩한 그 이름 종부. 삼백예순 닷새, 마음 졸인 봉제사 접빈객에 그리 단명을 맞은 건 아닐까?

시어머니 삼우제날, 누군가 보물이라며 제기상자를 실어주었다. 진즉 받을 걸, 가신 분께 송구했다. 마침 교통사고로 영육이 몽롱했지만, 뇌진탕으로 목숨만 붙은 내게 부여한 신의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경추와 요추 염좌 진단을 받고도 제상을 잘 차리고 싶은 소망에 보물을 끌어안듯 돌아왔다.

제삿날 즈음이면 대여섯 번씩 장을 보았다. 그래도 빠진 제수거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 발 빠르지 않은 일머리가 후회되었다. 최상품 과일을 고르고 품질 좋은 고기를 배낭에 채우노라면 무너진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는데, 잘 못 잡은 뒤웅박인 양 배낭이 야속했다.

금년에는 제사를 다 잊었구나.”

한숨처럼 말씀하던 시어머니께서 한 사흘 후 소천하실 줄을. 단 한 해 잊은 제사를 유언처럼 남기고, 간병을 고집한 시아버님 병실에서 영감님보다도 앞서 쓰러지실 줄을,

오래 전 제삿날, 부뚜막에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사는 날까지 제사는 내가 책임질란다.”

아궁이 솔가지 향기에 취했었는지 나는 그 다짐에 무심했다. 일생이 얼마나 고달프셨을까? 얼마나 홀로 외로우셨으면 부뚜막 떡시루 앞에서 호소하셨을까? ‘끝없는 책임은 세습무처럼 물려받을 종부에게 동병상련 최상의 사랑법이 아니었을까?

시어머니는 늘 맨발이 물에 젖어 있었다. 검정 남자 고무신을 신고 우물로 광으로 마라토너처럼 달렸다. 작은 체구로 허둥대도 모두들 관중처럼 무심해 보였다. 너른 논밭과 측간 청소까지 끝이 없었을 터이다.

젊은 날, 때 없이 시댁에 내려갔다. 두 손을 꼭 잡고 눈물로 배웅해 주신 신작로, 그 길 끝에서 기다리실 시어머니를 떠올리면 숨이 가빴다. 어느 늦가을 새벽, 유리창 서리꽃이 하얗게 길을 막았다. 악마가 악수를 청하며 인생종점이 바로 네 곁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구름이 벼랑에 걸리듯, 그 분의 다정을 찾아 홀로 이천 리 왕복도 두려움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관혼상제 예절을 배운 일이다. 퇴직할 즈음, 예지원에서 익힌 예절연수가 그리 요긴했다. 닭이 빠졌네, 수박을 거꾸로 놓아라, 한마디씩 거드는 여성들 앞에서 당당히 진설을 했다. 남의 집 제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더니, 이렇게 저렇게 행세하려던 이들도 더 이상 언행을 삼가는 것 같았다.

두려운 것은 등록금보다 많은 제수비용이었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더니, 수시로 가계를 조였다. 갈수록 절실해졌다. 사느냐, 죽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아버님 기일에만 모두 모이자!”

시제는 선영에서 올리니, 명절 차례는 홀로 지내겠다.”

차마 나오지 않는 용기로 결정을 했다. 사무친 목소리였을 것이다. 어느새 십여 년이 넘었다. 아버님 기일에는 서로 준비해 온 제수로 진설한다. 한 밤 중 오가는 길에 악마가 유혹할까 두려웠을 형제들도 신의 한수라며 고마워하리라. 그래도 제사가 가까우면 날개 없는 새처럼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 하다.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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