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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돈나    
글쓴이 : 장석창    22-08-10 21:37    조회 : 9,428

마돈나


  태아(胎兒)는 슬픈 표정이었다. 아직 얼굴 형체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러했다. 제발 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나는 칼을 내려놓았다.


 선배님, 정관 수술 좀 해주세요.”

  그는 의과 대학 후배다. 무슨 일인가 했다. '불과 몇 달 전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해준 신혼인데, 혹시 부부에게 심각한 유전 질환이라도 있나?' 나는 후배에게 이유를 물었다. 후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원하지 않거든요. 얼마 전에 집사람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정관 수술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더는 캐묻지 않았다. 주변에 자식을 원치 않는 MZ 세대 부부를 여럿 보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후배의 간청이니 들어주기로 했다. 그를 수술대에 눕혔다. 그의 음낭 안에 있는 정관의 위치를 확인하며 수태까지 정자(精子)가 겪는 인고의 여정을 그려본다.

  정자, 모든 동물의 근원이 되는 생식세포, 작은 머리와 긴 꼬리만 가진 올챙이 모양으로 사백 배율의 현미경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미물. 정자는 후방의 생산공장(고환)에서 하루 억 단위로 만들어진다. 훈련소(부고환)에 보내져 숙련된 군사로 조련되어 대기한다. 작전명은 난자(卵子) 공주 구하기’, 전술은 인해전술이다. 군사들은 가늘고 긴 작전 통로(정관)를 통해 최전방 군수기지(정낭, 전립선)까지 이동한다. 이곳에 모인 군사는 약알칼리성의 반액체 포탄(정액)이 된다. 남녀의 운우지정(雲雨之情)으로 대포가 달아오르다 절정에 이르면 명령이 떨어진다. “방포(사정)하라.” 첫 전투지는 주름 가득한 동굴()이다. 동굴 안에는 약산성의 강물(질 분비액)이 흥건하다. 포탄이 터지면 안에 있던 수억의 군사들은 일제히 공주를 향해 헤엄친다. 누구의 지시도 없다. 귀소본능에 이끌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 같다. 일부 내통자들의 도움(질 수축)도 역부족이다. 이제부터는 각자도생, 적자생존 해야 한다. 첫 격전지에서 무수히 익사한다. 생존자들은 견고한 성문(자궁경부)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감춰진 그물(대식세포)에 걸려 대부분 포획된다. 일부는 성안(자궁)으로 들어간다. 이제 수백의 결사대만 남았다. 시간이 없다. 오늘은 감옥(난소)에 감금되어 있던 공주가 한 달 만에 특정 장소(나팔관)로 외출(배란)하는 날이다. 미리 정보를 입수했다. 잠입에 성공하지만, 공주 주변에는 경비병(난구 세포)들이 둘러싸고 있다. 선발대와 경비병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양쪽 모두 전사한다. 살신성인이다. 후발대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지휘관이 공주와 포옹(수정)한다. 나머지 군사들은 접근이 금지되고 곧 사멸한다. 잉태의 순간, 그들의 삶과 죽음은 교차한다. 정자가 난자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에서도 우열의 법칙은 적용된다.

  생각해 보면 라는 인간은 수억 분의 일의 경쟁에서 선택된 개체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 고귀한 존재이다. 귀소본능, 무한경쟁, 적자생존, 우열의 법칙, 수태되는 동안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은 출생 후 우리의 삶에도 이어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남아있는 본능을 좇아 드러냄의 연속이리라. 정관 수술은 통로를 차단해서 군사 이동단계에서 봉쇄하려는 선제적 타격수단이다. 가임력이 입증된 신혼부부에게 자식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온당한가. 이는 종족보존이라는 자연의 섭리에도 어긋나지 않는가. 나는 번민 속에서 칼을 들어야 했다. 손이 떨렸다.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불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위어 간 후배 부인의 복중 태아가 떠올랐다.

 

 후배를 보내며 명화 <마돈나>를 감상해 보라고 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1894년에 그린 걸작이다. 이후 뭉크는 여러 점의 연작을 남긴다. 그림의 모델인 유엘(Dagny Juel)은 뭉크와 연인관계였지만 그의 친구와 결혼해버린다. 본 것을 상상하며 그리지,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는 않겠다던 뭉크, 그는 그 여인을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빈 캔버스에 채워 넣었다. 뭉크에게 그녀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이었다.

  어느 성인 영화의 광고 포스터를 보는 듯하다. 농익은 S자형 굴곡을 가진 여인의 나신이 눈부시다. 검고 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막 정사를 마친 듯 푹 젖어있다. 살짝 감긴 눈이 교태롭다. 뭇 남성을 유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절정 후 여운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고개는 왼쪽으로 힘없이 기울어져 이어질 극치를 고대하고 있는 듯하다. 오른팔은 위로 향하다 머리 뒤로, 왼팔은 아래로 향하다 허리 뒤로 꺾여있어 가리고 싶어 하는 여성의 신체 부위가 그대로 노출된다. 시선이 가슴골을 지나 잘록한 허리에 이르면 꽉 껴안고 싶다는 강한 소유욕이 일어난다. 아뿔싸! 아랫배를 보니 여인은 임신한 상태이다. 여인의 주변을 휘감는 배경의 색채는 음산한 죽음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뭉크는 여인의 머리에 진홍빛 띠를 둘러 고결한 성인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후광을 표시했다. 원래 마돈나(Madonna)는 성모 마리아(St. Maria)의 별칭이다. 서양에서는 성스러운 여인으로 추앙받는다. 평자들은 여인이 잉태 순간에 느끼는 관능적인 황홀경과 초월성을 동시에 묘사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전자에 가깝다.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모든 매체에서 저런 분위기의 여성을 앞세워 원초적 욕망을 들쑤시지 않는가. 뭉크는 왜 그림의 제목으로 마돈나를 선택했을까?

  작금의 우리는 마돈나라 하면 이 여인이 떠오른다. 성모 마리아가 아니다. 팝의 여왕이자 섹시 아이콘, 가수 마돈나이다. 마돈나가 그녀의 본명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녀가 전설이 된 1984MTVVMA(video music awards) 동영상을 켠다. Like a Virgin이다. 전주부터 들려오는 댄스 비트가 흥겹다. 면사포를 두르고 짧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돈나가 등장한다. 시스루 패션이다. 보일 듯, 말 듯,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길들이기 쉽지 않은 고양이 같은 춤을 추며 간간이 들려오는 콧소리가 고혹적이다. 마지막 후렴구가 들려온다. “Can't you hear my heart beat for the very first time?(당신은 정말 처음으로 뛰는 내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없나요?)” 그녀의 동작이 압권이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상하로 움직이더니, 엑스터시에 도달한 듯 바닥을 뒹구는 그녀의 몸짓은 첫사랑의 짜릿한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동영상이 끝나자 야릇한 상상에 빠진다. ‘나의 첫 느낌은 어떠했을까? 저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남자가 나뿐만은 아니겠지?’ 그런데 마돈나의 열성 팬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 뭉크가 활동했던 시대는 물론이고, 마돈나가 데뷔했던 미국 사회에서도 이상적인 여성상은 성모 마리아였다. 사회 분위기에 억눌렸던 여성들은 마돈나를 보고 대리만족했을 것이다. 성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니까.

 

  오늘 같은 날에는 뭉크의 <마돈나> 석판화가 보고 싶어진다. 붉은 테두리를 따라 헤엄치는 정자들, 하단 모퉁이에 그려진 앙상한 태아 모습은 농염한 여인의 자태와 어우러져 황홀 속의 절망, 환호 속의 절규, 삶 속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뭉크는 평생을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탄생은 죽음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틀렸다. 잉태가 죽음의 시작이다. 어쩌면 그 전부터 일지도. 여인의 볼록한 아랫배에 복대라도 둘러주고 싶다. 양수를 통해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태아의 두려움을 덜어 주리라.

  '생식본능이 우선이냐, 성욕이 우선이냐'는 난제는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피임 시술이란 생식본능을 저버리는 인위적인 의료 행위가 아닌가. 나에게 정관 수술을 받았던 무수한 남성들, 잠시 따끔하면 끝날 거라는 나의 자위 섞인 농담 뒤에는 그들 배우자의 뱃속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생명이 있다. 생식본능을 뛰어넘는 인간의 파괴적인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진정 성욕은 본능을 초월하는 것인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둘이 서로 경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남성의 오르가슴은 사정할 때 나타난다. 여성이 오르가슴에 오르면 질을 수축시켜 사정을 독촉한다. 남녀 모두에게 섹스의 목표는 결국 임신이다. 이렇듯 인간이 섹스에서 느끼는 가장 큰 희열은 그들의 본능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생명 창조에 대한 욕구가 실현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울린다.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후배의 메시지가 와 있다.

  ‘선배님, 저희 부부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좀 더 숙고해 보려고요.’

  씁쓸한 마음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림 속 태아가 웃고 있다.


에세이문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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