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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냄새    
글쓴이 : 봉혜선    22-10-16 20:18    조회 : 3,513

여름 냄새

 

봉혜선

 

 여름 냄새가 났다. 땀이 흠뻑 나는 운동을 마치고 샤워장에서 맞는 물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확행이다. 샤워장에서 만나는 샤워 멤버 누구보다도 더 오래 물을 맞으며 운동 후의 땀과 피로를 몰아내며 샤워용품의 냄새에 싸이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싱그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사계절 쉼 없이 하는 운동 후 어김없이 하는 샤워는 계절을 잊게 하는 특효약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운동, 샤워로 더위와 추위를 견딜 만해진다. 수영장을 몇 바퀴 돌고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나면 있던 감기 기운이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체육센터에서 집에 오는 길은 1킬로가 채 되지 않는다. 오늘도 깨끗하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비 그친 길로 돌아오고 있었다. 체육센터에서 2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아파트로 내려서는 계단이다. 계단은 유치원 건물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 넝쿨 아래 작은 정원과 꽃밭 옆에 나있다. 계단을 내려와 오솔길을 걷는데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여름 냄새.

 초록과 땅의 밤색이 섞이는 듯한 생명의 기운을 지닌 여름 정원의 냄새는 눅진하고 비밀스럽다. 초록에 덮인 묵은 낙엽이 내는 낮고 진한 냄새, 갓 자라나오는 새싹과 계절을 거치는 동안 피었다 지는 꽃들이 발하는 푸른 냄새, 때가 되어 열매 맺는 실한 냄새. 여름은 냄새로 느껴지는 계절이 아닐까. 지나친 발길을 뒷걸음쳐 다시 냄새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다. 풀들이 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냄새는 사방으로 퍼지고 사방은 여름의 푸름으로 가득 찬다. 여름의 높고 푸른 바람이 불어와 냄새를 실어 나른다.

 텅 빈 허공은 여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생명 가진 것들이 여름을 맞아 뿜는 열기가 보인다. 땅의 기운을 받은 나무와 풀이 높고 넓게 자라느라 태양의 빛과 열기를 향하고 있다. 갑자기 경쾌해진다. 가던 발길을 앞으로 민다. 높은 데에서 매미는 푸른 생명을 응원하며 소리로 리듬을 맞춘다. 여름 나무임이 분명한 대추나무도 열매 덕에 잔뜩 휘어있다. 개암나무 열매는 어느새 무게를 지니고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반 이상 큰 감나무 열매가 자체적으로 열매를 솎고 있다. 떨어진 열매를 처리하는 개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들어 올린 발이 디딜 곳을 찾아 개미의 틈새를 찾는다. 생명이 뿜어내는 기운이 여름을 들썩인다.

 어제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비는 밤에도 전혀 기세를 줄이지 않았다. 비 듣는 소리에 끌려 방에 있던 이부자리를 거실로 끌고 나왔다. 밤이 깊을수록 안고 있는 서러움을 푸는 듯 비는 더욱 섧게 울었다. 비를 안아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베란다 더 가까이로 이부자리를 끌었다. 허공에서 내리는 빗소리는 허공을 가득 채워도 빈 소리로 내린다. 베란다 앞 화분 거치대에 내어놓은 화분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제 막 오르고 있는 싹을 해칠 것만 같았다. 결국 일어나 기다란 화분을 들여놓아야 했다. 문을 열자 먼저 들어오는 투명한 여름 냄새가 진했다. 밤이 깊을수록 날카로워진 신경을 점령해 오는 건 소리를 품은 냄새였다.

 비가 만든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가 내리자 사람이 만든 것들은 더욱 보잘 것 없는 풍경으로 변했다.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으로 차가 내려가는 벽과 파이프는 세월의 영향으로 많이 낡았다. 풀과 나무들은 거칠 것이 없다. 해마다 새 잎으로 거듭나서 낡을 새가 없다. 봄이 남긴 라일락 냄새의 잔향이 남아 있고, 밤꽃 내가 진동하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냄새를 품고 있는 여름의 냄새는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여름이 가진 강렬한 기운과 냄새 때문에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시기이도 하다. 냄새가 가장 많은 계절은 여름이 아닐지. 온 데 문을 다 열어놓아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후각은 멀리서부터 날아든 향기는 물론 우리가 살아온 세월조차도 느끼게 해주는 마법사다헬렌 켈러의 말이다. “외국 사신이 오면 사향(麝香)을 피우고, 공적인 모임 때는 독누(篤耨). 용뇌(龍腦), 전단(栴檀), 침수(沈水) 등을 태운다.” 향을 중시하며 고려도경에 나오는 말이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냄새로 박하, 정향, 회향(썩은 간장에 넣으면 본래의 냄새로 되돌아간다), 라벤더, 카모마일, 로즈마리 향이 있다. 또한 세계 3대 향료로 사향, 용연향과 침향을 들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면 세계 몇하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향수는 더 좋은 냄새를 위한 제품이다.

 비누, 세제가 본래의 세정이나 섬유 유연제라는 목적 외에 다양한 향으로 생활 가까이에 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신경 쓰이는 건 어쩌면 자기만의 냄새 때문일지 모르겠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직접적인 냄새에 국한하지 않는다. 고향 냄새, 시골 냄새 역시 물리적인 냄새가 아닐 것이다.

 향을 맡는 것, 냄새를 맡는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해 추억으로 몰고 간다. 좋은 냄새, 익숙한 향은 오래도록 그리움을 소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기운, 분위기 같은 것들의 총체가 냄새다. 시각보다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 생존에 유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 아닐까. 발길은 정원에 오래 머물렀다. <<좋은 수필>>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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