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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모습 초상화( 동인지 『산문로 7번가 』7호)    
글쓴이 : 김주선    23-05-25 14:50    조회 : 2,272

뒷모습 초상화 / 김주선


 아버지 장례식 때 쓰인 영정 사진은 초상화였다. 그것도 양복이 아닌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오십 줄의 중년 모습이었다. 증명사진을 확대해 영정으로 사용해도 되었지만, 아버지는 생전에 염원하던 자기 모습을 영정 초상화로 제작해 놓으셨다. 마치 흑백사진인 듯 콧수염 한 올 한 올이 실사처럼 보였다. 

아주 오래전 윤중로에 벚꽃 구경을 하러 갔다가 남자친구와 나란히 캐리커처 모델이 된 적이 있었다. 그림을 그려 이는 남자친구의 고향 선배였다. 벚꽃 시즌 동안 여의도에서 아르바이트한다며 접이식 의자에 우리를 앉히고는, 오고 가는 사람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 준 남자였다.

반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오는 농부처럼 얼굴과 코를 망측하게 그려 놓아 그림값을 지불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림 한 장 그려 놓고 자기는 화가지 사진사가 아니라며 오히려 언짢아했던 것은 그쪽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렸을 때 모델이었던 농부 중 한 명이 자신을 너무 못생기게 그렸다는 이유로 고흐를 고소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절친인 동료 화가 라파르트 마저 과장된 얼굴 묘사구성의 결함을 지적하며 빈센트를 심하게 혹평하는 바람에 친구 관계를 끊을 정도였다고 배웠다. 감히 세계적 명화를 캐리커처의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순 없지만, 그때 내 심정이 딱 그랬단 뜻이다. 

몽마르트르에 갔을 때 나도 아버지처럼 초상화 한 점을 남기고 싶었다. 여행객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국적도 다양한 화가들의 샘플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화가 앞에 앉으면 되었다.

이미 캐리커처에 실망해 본 경험이 있어 몽마르트르 언덕에선 화풍을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수채화 물감을 덧칠하는 연필 스케치를 골랐다. 30유로였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 여인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여 증명사진 찍듯이 포즈를 취하고 가만 앉아 있었다. 같이 간 친구가 뒤에서 실없이 웃었다. 외간 남자와, 그것도 백인 남자와 마주 앉아 있으려니 시선 둘 곳이 없었다. ‘김치라고 미소 짓는 입 모양을 하려고 해도 금세 입술이 풀어지곤 했다. 그는 에스파냐 출신 생계형 화가라고 친구가 통역했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나의 표정, 눈빛,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캔버스에 어떻게 담아낼지 잔뜩 기대하였다. 30여 분도 안 지났는데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목구비가 밋밋한 동양인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던가. 아무튼 한국 사람이 돈도 잘 쓰고 예쁜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1도 안 닮은 그림이었다. 괜히 지갑만 털린 기분이었다. 

테르트르 광장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옆모습과 살짝 돌아앉은 듯한 뒷모습을 그리는 화가를 발견하니 이거다싶었다. 그래, 다음에 기회 된다면 나의 뒷모습을 그려 보자. 숨기지 않은 진짜 나의 모습은 오히려 뒤에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뒷모습이야말로 현대인의 진정한 자화상이라는 어느 작가의 칼럼을 본 적이 있었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 뒷모습만큼 정직한 게 없다고 쓰여 있었다.

그때부터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나의 뒷모습에 꽂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주로 남편 시점의 사진이었다. 그에게는 예술적 감각이 없기에 버리는 사진이 태반이었지만 어쩌다 한두 장 건질 만한 게 있었다. 사진 보정 앱을 깔고 사진을 초상화 버전으로 인화해 보면 몽마르트르 화가의 그림 못지않은 작품이 나왔다. 우스갯소리지만 나의 영정 사진은 뒷모습이 담긴 초상화로 할 것이라고 유언 아닌 부탁의 말을 남길 정도였다. 꼭 앞모습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상식을 깨자.

뒷모습 초상화는 문학으로 치면 열린 결말일지도 모른다. 초상화에서 어떤 감정과 표정을 읽을지는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쓸쓸해 보여, 행복해 보여, 슬퍼 보여,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여 등등. 고인을 추억하는 이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것 또한 의미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반 고흐가 그린 폴 고갱의 초상이라는 초상화도 고갱의 뒷모습을 그렸다. 앞모습을 보지 않아도 붉은 베레모를 쓴 고갱의 양쪽 어깨와 살짝 보이는 옆모습에서 내면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진중한 모습의 폴 고갱이었다.

반면,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초상은 술에 취해 게슴츠레해 보이는 눈과 어눌해 보이는 빈센트를 담았다. 해바라기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상징과도 다름없는데 다 시들어 가는 해바라기를 그리는 모습이 모델이 된 고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기를 장난하듯 성의 없이 그린 것 같아 마음이 상한 고흐는 고갱과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귀를 자르고 절친과 헤어지는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 계기가 이 초상화라고 미술사 강의에서 들었다.

결국 삼나무 숲을 지나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는 비극을 초래한 초상화 한 점이 그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 인정받고 싶었을 텐데, 존경하고 사랑하고 선망하는 대상이었던 친구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에 좌절을 느끼진 않았을까.

모름지기 초상화란 멋지게 그려 주는 게 예의라고 학창 시절 미술 교사가 말했다. 하지만 화가의 시선으로 본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해 주는 것도 예술이니 고갱을 나무라고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반 고흐 역시 그의 첫 발표작에서 감자 먹는 가난한 농부를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예술적 상상력을 덧댄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영정 초상화에 사진이 담지 못하는 남다른 품위를 자손에게 남기고자 연필 선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갓을 그려 넣어 달라고 의뢰했을지도 모른다. 설령 내가 뒷모습에 꽂혀 영정 초상화를 남긴다 한들 나의 자손이나 가족이 영정으로 쓸 리 만무하지만, 발칙한 상상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장례식이 축제인 양 즐겁다. 굳이 영정이 아닐지라도 나의 뒷모습을 초상화로 남겨 보리라.

먼 훗날, 책꽂이에 일목요연하게 꽂혀 있는 책의 뒷모습처럼 내 등에서 보일 삶의 함축된 의미가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어깨로 흘러내린 머릿결, 주름진 목덜미, 살짝 돌린 고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 귀의 뒷면까지 자연스럽게 등 뒤로 스며든 나의 모습을 남길 수만 있다면.

오늘도 남편에게 내 등을 보이고 정갈한 걸음걸이로 앞서 걸었다.


( 동인지 『산문로 7번가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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