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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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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모녀 외 1 (동인지 산문로7번가 23.05월)    
글쓴이 : 박경임    23-05-25 16:01    조회 : 1,712


이상한 모녀

박경임

pkl1027@hanmail.net

그녀는 남편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파출부 일과 행상을 하며 세 딸을 키웠다.

학교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도시락 여섯 개를 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들 못 낳았다고 구박하던 시댁을 벗어나 세 딸과 살던 시절은 그녀에게 행복이었다. 대학은 힘에 부쳐 못 보냈기 때문에 세 딸은 모두 여상을 나와 은행에 취직했고, 남편들도 잘 만나서 잘살고 있다.

큰딸은 공무원인 남편을 만났고 이재에도 밝아 집을 세 채나 가진 부자가 되었다. 다른 두 딸도 중산층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녀는 성공한 셈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시댁을 나올 때 시아버지는 서울 변두리에 반지하 작은 빌라를 사 주었다. 그 빌라에서 20년을 살았고 그곳(지역)이 재개발되어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깨끗하고 좋은 집을 가지게 되었다. 파출부 월급을 받아 악착같이 저축해서 아파트 분담금을 조금 더 내면 이제 완전히 성공한 인생이 된다고, 그녀는 공사 중인 아파트를 바라보며 꿈을 꾸었다. 혼자 고달프게 사는 그녀를 친구도 가끔 업신여기는 것 같아 언짢았는데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녀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이제 그녀 나이는 70 중반에 들어섰고 큰딸은 50이 넘었다.

 

어느 날 큰딸이 이사하는데 살고 있던 집과 새로 이사할 집의 잔금 날짜가 안 맞아 이사 비용이 모자란다며 마련해 둔 분담금을 잠시 빌려 달라고 했다. 그녀는 분담금 내야 할 날이 다가오는데 그런 부탁을 받아 걱정이 되었지만, 자식 일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은행에 다니는 아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며 15천만 원을 선뜻 내주었다. 이후 분담금 내라는 고지서가 나왔는데 큰딸은 돈이 없다고 했다. 목돈 마련이 안 된다고 하여 일곱 번에 나누어 내는 분담금을 딸이 내기로 하고 한숨을 돌렸다. 아파트가 완성되었고 그녀는 나비 날개를 단 듯 이제까지 살았던 삶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싶었다. 아파트 20층에서 바라보는 낮과 밤은 반지하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다.

 

입주해서 꾸게 된 행복한 꿈이 깨기도 전에 황당하게도 딸이 분담금을 대신 내 주었으니 제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딸에게 그 돈은 네가 빌려 간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딸은 엄마에게 돈을 빌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딸은 내가 엄마한테 돈을 빌렸다는 근거를 내놓아 보라며 엄마가 그 돈을 벌었다는 증명을 해 보라 하는데, 파출부한테 월급 명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모았던 상호신용금고도 재개발로 사라져 어디에서도 돈의 출처를 증명할 수가 없었다. 자식이라 큰돈을 주면서도 영수증 하나 안 받았는데 그 돈이 쇠망치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내리쳤다. 2년을 거주하지 않으면 양도세 비과세 적용을 받지 못해 집을 팔 수도 없는 처지였다. 딸은 그녀를 완전 빚쟁이 채근하듯 다그쳤다. 그녀는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20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버릴까 몇 번을 망설이기도 했다. 이 억울한 인생, 자식마저 등 돌린 이 세상에서 더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른 두 딸이 걱정되어 마음을 다져 가며 등기가 완료되면 팔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때를 기다렸다. 등기가 완료되어 등기부 열람을 하니 큰딸이 자신의 채권을 내세워 가압류를 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등기부를 들고 큰딸을 찾아갔지만 자기 변호사와 얘기하라며 매몰차게 돌아서는 딸의 등을 바라보니, 지난 시절 파출부로 일하며 키운 시간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엄마가 돈을 어떻게 모아서 나에게 빌려줬는지 내용증명을 만들어 오라는 딸의 유식한 반격에 그녀는 맥 풀린 다리로 돌아와야 했다.

도대체 큰딸은 그녀에게 왜 그럴까? 큰딸은 남매를 두었고 다시 늦둥이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 아이가 지적장애아였다. 큰딸은 그 늦둥이 아들에게 아주 많은 돈을 들이고 있었다. 그 아들이 장애아임을 알았을 때 그녀는 큰딸에게 남매가 있는데 뭐 하러 또 애를 가졌냐며 미리 검사해서 장애아인 것이 밝혀지면 요즘엔 다 알아서 수술도 해 주던데 그냥 낳았느냐고 말한 일이 있다.

그녀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딸에게 비수가 되었겠다 싶었다. 아들을 못 낳았으니 나중에 네 눈에 피눈물 날 일이 있을 거라던 시어머니 말이 아직 그녀 가슴에 있듯이 큰딸의 가슴에도 걱정 반 책망 반으로 내뱉은 그녀의 말이 가시로 박혔을 수도 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남자에게 곁눈질 한 번 안 하고 자식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 엄마가 마른 북어 같은 몸을 끌고 다니며 압류 해제를 해 주면 집 팔아 갚아 주겠다고 딸에게 사정을 했는데도 36장에 달하는 고소장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압류가 된 집이라도 매매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러 온 그녀가 털어놓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금방 쓰러질 듯한 체구가 안쓰러웠다. 자식은 빚 받으러 온 인연이라던 어떤 스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빚 갚으러 온 놈은 효자로 살고, 빚 받으러 온 놈은 불효자일 테니 모두 자신의 업이라 여기고 달게 받으라는 말씀이었다.

그녀 얘기만으로 큰딸의 처사를 탓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상식선에서 값이 15억에 달하는 집이 있는데, 엄마가 어디 도망갈 것도 아니고 결국은 다 자식 몫이 될 텐데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송사는 한쪽 말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라 그녀에게 딸이 시킨 대로 변호사에게 하고 싶은 얘기 다 털어놓고 해결해 보라 했다. 매매가 가능해지려면 잔금 납부 시에 가압류 해제 확인서가 있어야 하니 변호사와 의논해 보고 오시라 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여야 할까 하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긴 채로, 돌아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본능이라니

박경임

 

아침 방송에서 한 택시 기사가 수첩에 적힌 내용을 엮어 펴낸 책을 소개했다. 택시를 이용한 사람들이 남긴 낙서를 모아 만든 책으로 다양한 사연들을 통해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모임에서 이 책 얘기를 나누다가 택시 기사 일을 하는 친구에게 본인이 모는 택시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벌어지는지 좀 들려 달라고 졸랐더니 망설이다가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일흔이 족히 넘어 보이는 한 여자 손님이 택시에 타자마자 청량리로 갑시다 하며 내 오늘은 이놈을 잡아 거시기를 떼어 버릴 겁니다라며 식식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룸미러를 보니 그녀는 계면쩍게 웃으며 남편의 남자구실이 시원찮아서 거금 700만 원이나 들여 아랫도리 수술을 해 줬더니 자기는 뒷전이고 때 만난 수캐처럼 온 동네를 쏘다니며 젊은것들만 찾아다니니 괜히 수술해 줘서 날개를 달아 준 모양이라고 한탄하더란다.

 

저녁나절에 호프집 앞에서 머리가 길고 몸집이 큰 남자를 태우게 되었다. 덩치가 있어서 뒷좌석에 앉았으면 했는데 기사 옆자리에 앉아 불편했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좀 멀어서 손님의 잡담을 들어 주려니 자기는 여자로 성전환한 사람이라 했다. 겉으로 봐서는 머리가 긴 것 말고는 영락없는 남자인데 치마처럼 휘둘러 입은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며 보여 주겠다길래 관심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집에 도착한 그는 택시비를 가지러 잠깐 다녀오겠다며 오피스텔로 올라갔지만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올라갈 때 눈여겨봐 둔 방으로 가서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아 계속 두들기니 나오지는 않고 현관문에 대고 하는 말이 아저씨. 아까 내가 보여 준 것이 오늘 택시비보다 비싸요.” 너무 어이가 없어 경찰에 신고했더니 상습범이었다.

 

단아한 중년 여인이 잠실에서 택시를 타고 춘천을 가자고 했다. 그녀는 경춘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며 가끔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춘천 내 목적지의 정확한 위치는 춘천에 도착하면 알려 주겠다 해서 그는 앞만 보고 달렸다. 그녀는 춘천으로 가는 동안 사는 게 재미없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며 그를 건너다보기도 했다. “뭐 특별할 게 있나요? 그냥 하루하루 견디며 열심히 사는 거지요.” 하는 그의 대답에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다. 춘천에 도착하자 그녀는 다시 서울로 가자면서 아저씨는 참 눈치가 없네요.” 했다.

얘기를 듣던 우리는 그녀가 차를 잘못 골랐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사람 차를 탔으니 참 억울하겠다. 그래도 그렇지 요석공주를 품은 원효대사도 있는데 한쪽 눈 감고 잠시 놀아 주지 잘못했네.” 하며 그를 놀려 댔다. 잠시 파계하더라도 그것은 인간 구제이니 다시 참회하면 되지 않냐며 모두 웃었지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차내에 설치된 블랙박스는 어쩌고. 그리고 우린 겁이 나서 그런 일 못 혀.” 하며 특유의 느린 말끝을 흐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는 택시라는 공간. 기사는 잠시 스치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손님들이 아주 솔직해지거나, 가식덩어리로 자신을 포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친구가 들려준 얘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여든이 훨씬 넘은 부부가 함께 요양원에 기거 중인데 이들은 온종일 서로의 몸을 탐하며 보낸다고 했다. 그 빈도가 너무 잦아 여자는 항상 질염에 시달린단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남자 간호사에게 미소를 보냈다 하여 할아버지가 남자 간호사는 절대 그 방 출입을 못 하게 해서 남자 간호사가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병원 종사자들이나 자식들이 그만 좀 하라 말려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너무 좋아한다며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인간의 성에 대한 본능은 언제쯤 사그라질까 궁금해졌다. 식욕, 성욕, 수면욕이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이라는데 식욕이나 수면욕은 나이 들면 어느 정도 줄어들지만 성욕은 사람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결혼 생활도 육체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아직 미혼인 친구가 선을 보고 나서 다른 조건은 다 좋은데 상대방의 모습을 보니 스킨십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상대방의 몸을 열망한 끝에 합일에 이르는 순간 서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겨야 결혼을 꿈꾸게 되지 않을까 한다. 상대를 처음 볼 때는 상대가 가진 생각이나 성격을 알 수 없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외모로 결정할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상대를 향해 열린 몸짓의 언어들이 미래를 열게 하고 그래서 합법적 섹스를 위해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사회 분위기일 수도 있다. 책임은 멀리 있고 쾌락은 가까이 있으니 누가 헌신적 결혼에 의미를 둘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듯 성욕은 인간의 미래까지도 결정하는 본능이다. 택시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육체의 본능에서 비롯된 외로운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욕망이 우선이었겠지만 나이 들면 정이라는 감정으로 서로를 품으며 살게 된다. 외모에 대한 끌림에서 시작한 관계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정신적 관계로 바뀌어 긴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나 본능은 어쩔 수 없이 육체를 지배한다. 그래서 절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을 닦아 가며 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니 자신의 본능을 보다 유연하고 이지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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