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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쉬는 갯벌    
글쓴이 : 봉혜선    23-07-15 17:42    조회 : 2,656

숨 쉬는 갯벌

 

                                                                                                                   봉혜선

 

 김포 대명항을 시작으로 철원까지 이어지는 총 280킬로 ‘DMZ평화대장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생명, 생태, 평화의 기치를 내건 평화누리길 트레킹은 20211114일에 시작되었다. ‘비와이엔 블랙야크의 후원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날, 블랙야크 강태선 사장이 <2021 섬유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단체 소식 방에서 접한 후라 낯선 이들끼리도 처음의 긴장을 덮을 만큼 들뜬 얼굴을 했다.

 강석호 회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실무진들의 수고로움에 편승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오전 8시 사당역 1번 출구 앞 주차장에서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출발했다. 내가 탄 1호 차는 김포 구래역에서 5명을 더 태우고 대명항에 도착했다. 경기도의 후원을 받는다고 쓰인 희망을 뜻하는 노란 평화누리길 표지표, DMZ평화대장정이 찍힌 연녹색 새싹을 닮은 스카프, 생명력 넘치는 녹색 잎과 나란히 나는 새가 인쇄된 동그란 배지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곧이어 도착한 2호 차 회원들과 첫 기념사진을 찍었다. 출발 기념 안내 표지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찍는 사진은 언제나 그렇듯 활기에 넘쳐 사진 찍으려 기다리는 마음마저 가볍다.

 모처럼 만의 외출에 하늘은 쾌적하고 상큼한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라는 듯 한없이 맑다. 장거리 걷기에 자신 없다는 남편 대신 동생과 걷기로 했고, 중학 시절 친구도 함께 걷는다. 남편 없이 집에서 나선 마음이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세상이 나를 불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걷기모임에 인생길 동반자인 동생과 친구를 끌어들인 책임까지 자진했으니 용기를 내야 한다. 시작점에 쓰인 매우 쉬움이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전 코스 내내 걱정하지 말고 걸으라는 격려문 같았다. 대명항 함상공원 일별을 시작으로 덕포진(사적 제292), 부래도, 염하강을 거쳐 문수산성(신라 혜공왕(제위765~780) 사적 제139) 남문에 이르는 김포 구역 14km를 걸을 예정이다.

 김포는 20여 년 전 만 2년을 산 곳이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작은아들이 세 살 때였다. 그동안 김포군이 김포시가 되는 쾌거를 접했으며 남편 회사에 잠시 출근했던 곳이다. 아이들 돌보기를 마치고 출근하니 남들보다 출근이 늦었다. 버스도 닿지 않은 곳에 있던 회사에서 나를 데리러 나오기를 며칠, 막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 때문에 일찍 나가야 하는데 퇴근시켜 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혼자 집에 갈 수 있느냐며 차를 내주었다.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치인데 연습 없는 길이라니. 본 적 없는 시골 논밭 풍경에 눈을 뺏기던 출퇴근이었는데. 큰아이도 시골로 이사 온 데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친구들이 이상하고 엄마가 없는 집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놀이방에 맡겨둔 아기가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운전대를 잡고 더듬거리다가 낯선 풍경에 아연해졌다.

 길옆 포장 친 가게 곁에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인천 쪽으로 가는 길이라 한다. 김포 시내 중심가를 자세히 가르쳐 주었지만 방향을 짐작할 뿐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차를 돌려 겨우 멀리 아파트가 보이자 진땀과 함께 기운이 났다. 직진으로, 오른쪽으로 달아나듯 빠져 가는데 교통경찰이 불러 세웠다. 바쁜데 왜 부르나 나가보니 차 앞으로 뒤로 돌며 자꾸 차를 보았다. 나도 따라 돌며 왜 그러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다. 속도위반, 갓길 주행이라며 위법했다고 겁을 주었다. 그렇게 차로 첫 길을 낸 김포다.

 철책선을 따라 다져진 평화누리 길은 정전 중인 우리나라 분단 상황이 빚어낸 슬프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난개발되고 있는 도시화 속에서 남북한 사이 비무장 지역에 시선을 둔 것이 숨이 트이도록 느껍다. 산업화와 현대화의 숨구멍 역할을 해 줄 환경 보호 구역 4킬로 구간을 다른 시설이 아닌 사람이 다니는 길로 조성했다는 사실이 곧 선진국으로의 발걸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선 이들을 따라 걷는 이 길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임을 확신한다. 현재의 코로나19 위기와 맞물려 쓴 마스크는 평화통일을 향한 결의를 다지게 하는 눈앞의 풍경으로 인해 눈빛을 더욱 형형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통일을 향해 앙다문 입을 본 듯도 하다.

 감동은 초입부터 시작되었다. 철책선 위로 나는 새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열을 지어 나는 무리에서 정연하면서도 자유로운 자연을 보았다. 경계 없는 하늘로 나는 새에게 남북한이나 철책선의 구분은 무색하리라. 새는 사람이 가로막은 철책 너머 천혜의 자연 갯벌에 모여 있다. 창공을 나는 새에게 물이, 바다가, 갯벌이 터전이라는 자연법칙이 새삼 놀랍다. 자연은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로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이런저런 인연 따라 모인 우리가 나중에는 친해질 것을 알고 있듯이. 그래서 너도나도 잊고 발길 따라 같이 걸으며 이야기 나눌 장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듯이. 누구 한 사람 쳐짐 없이 이끌고 밀며 결국은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도착지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믿듯.

 갯벌은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다. 흔히 회자하는 파란 바다도 아니요, 생명력 가득한 흙빛이 아니다. 울울창창한 녹색 숲도 아니다. 늪을 연상하게 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가졌을 게 틀림없다. 소금물과 흙으로 만들어진 갯벌에 수많은 숨구멍이 보인다. 커다란 모양을 한 갯벌 덩이는 자체로 커다란 짐승으로도 보이고 끝없이 이어진 생명체 같기도 하다. 자신의 온몸을 내주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엄마의 모습이다. 멀리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 북한 땅이라는 데까지 아슴푸레 이어지는 회색 갯벌. 천천히 몸을 뒤채며 모양을 바꾸면서 안에 깃든 온갖 생명을 보듬어 안을 큰 품을 지녔으리라. 사막이 꿈꾸는 넉넉함은 혹 저런 모습이 아닐는지.

 아무것도 내치지 않을 갯벌의 모양새에 내가 투영된다. 조금만 힘들어도 멈추었고 쉬거나 기댈 곳을 찾았다. 조금 더 노력하면 닿을지도 모르는 목표 앞에서도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기댈 수 없는 가파른 마음이 주변 사람들을 품어주지 못했다. 나를 벗어나 주변을 둘러 생태와 평화를 지키려는 오롯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오늘 이렇게 뭉친 이들의 발걸음에 맞추려는 시도가 그간 좁은 마음으로 지낸 나에게 새 숨을 불어 넣을 계기기 될 것임을 믿는다. 숨 쉬는 갯벌 가에 모여 앉은 새를 바라보며 친구와 동생과 또 낯선 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한다는 소중함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초입에 있는 손돌목은 손돌이바람, 손돌이추위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목숨을 바쳐 지킨 고려의 왕은 몽고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신라 때부터 조선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침략해 온 외세가 노리는 이유를 짚어보았다. 틀림없이 지켜야 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모임의 기치로 내건 생명 생태 평화의 중요성이 새삼스럽다.

 길을 걸으며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상살이임을 실감하며 바지런히 발을 놀리기에 급한 눈을 쓰레기 되가져오기를 넘어선 클린존 운동이 붙잡는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채워가는 봉투의 무거움을 마음으로 붙잡아 주었다. 10만 원의 저렴한 회비로 푸짐한 식사까지 제공한다는 끌림에 네 명이나 불러들였다. 다음 달에는 넷 모두 클린 존 운동에 나서자고 해야겠다.

 오늘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한 김포는 평야, 포도, 공항 등 대표되는 것들이 많은 곳이다. 강 건너 북한 땅과도 지척이다. 살던 데와 전혀 다른 김포를 접하니 안다는 것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첫 경험처럼 두렵고 설레는 마음이다. 자세히 알수록 애정이 생기고 이해할 수 있으며 푸근해지는 이웃처럼 환경생태를 주지하는 나라가 세상을 이끌리라. 이제 시작할 뿐이나 남은 건 지속적인 실천, 이어지는 참여 확대로 희망을 갖는 일이다. 철책선 넘어 동방의 작은 불빛 온전한 통일의 나라 우리 땅으로 성큼 들어가는 중이다.    

DMZ 평화의 길을 걷다.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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