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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맞춤    
글쓴이 : 박병률    23-08-08 06:54    조회 : 2,282

                                      눈 맞춤

 

 고향, 형님네 문밖에 배롱나무가 있었다. 나무에 꽃이 피면 멀리서도 사람들 눈에 띄었다. 형님이 말하길, 수십 년 동안 자란 나무를 어떤 사람한테 거액의 몸값을 받고 팔았단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가 이빨이 빠진 것처럼 허전했다.

 어릴 적이 떠올랐다. 우물가에 배롱 나무가 있었는데 어른들이 말했다.

 “나무를 간지럼 태우면 나뭇가지가 겁나게 흔들려야, 너그들도 해봐라!”

 “진짜요? 거짓말이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뒤 나무에 빙 둘러서서 간지럼을 태웠다. 어른이 말을 해서 그런지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듯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그 후 간지럼나무라 불렀다.

 형님네 큰 나무는 없어졌지만 뿌리가 번졌는지 어린나무 몇 그루가 주변에 자라고 있었다. 나무를 키울 요량으로 3 년쯤 자랐다는 나무 한 그루를 얻었다. 한여름에 나뭇가지를 듬성듬성 쳐내고 뿌리에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마대자루를 씌우고 끈으로 묶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차에 싣고 와서 옥상 화단에 심었다. 한동안 몸살을 하더니 얼마 후 꽃이 피었다.

 다음 해 봄, 나무가 어려 추위에 약할 것 같아서 아늑한 자리로 나무를 다시 옮겨 심었다. 그해도 꽃이 만발했다.

 꽃이 진 뒤 형님 집에서 자라던 나무를 떠올렸다. 형님 집에 있던 나무처럼 나무가 집 밖에서 자라면 동네가 환할 것 같았다. 가을에 옥상에서 자라던 나무를 1 층 현관문 옆으로 옮겼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왔다.

 집 앞에 매실나무, 보리수나무, 살구나무는 잎이 나서 자라는데, 간지럼나무는 여름이 다가오도록 깊은 잠에 빠졌는지 감감무소식이다. 겨울에 추워서 나무가 얼어 죽었을까, 나무를 3 번이나 옮겨 심어서 몸살이 났을까, 나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나무를 캐올 때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간 게 나무도 출세한 거요라고, 형님한테 농담을 건넸고, 양지바른 곳에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따뜻하게 자라라는 선한 마음이었다. 사람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종잡을 수 없는가. 나무를 밖으로 옮길 때는 남이 듣기 좋게 명분을 내세웠다.

 “귀한 몸이 옥상에서 살겄냐, 땅에서 자라야지.”

 나무가 땅에서 자라야 한다는 구실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휴가철에 형님 집에 갔을 때 추억이 떠올랐으므로. 그 당시 간지럼나무에 분홍 꽃이 만발했고 바람이 불어 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함박눈이 내리듯 꽃잎이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나 잡아 봐라하며 나무 근처를 빙글빙글 돌던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형님 집에서 자라던 나무처럼 예쁘게 가꾸고 싶었다.

 그런데 가을에 옮겨 심은 나무가 봄이 저물어 가도 싹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나무를 바라볼수록 힘이 빠졌다.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봤다.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뿌리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가끔 물을 주었다.

 5 월 중순쯤 나무의 겉모습이 차차 푸르러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 좁쌀만 한 새싹 2 개가 보였다. 나무에 눈이 나온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눈이 났잖아, 나무가 살았어!”

 나무와 나, 눈 맞춤을 했다.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진이 인간진화저널에 발표한 보고서가 떠올랐다. 눈은 사물을 보는 기능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의사소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눈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지 않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다른 영장류보다 사람 눈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영장류들의 눈은 갈색 등 짙은 색의 공막을 갖고 있어 눈동자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지 않지만 사람의 눈은 흰색 공막을 갖고 있어 시선이 잘 드러난다. 또 얼굴 피부와 공막, 홍채의 색깔이 대비돼 사람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눈이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어머니와 갓난아기의 눈 맞춤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에서 보듯,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와 눈 맞춤을 하면서 자란다. 아기는 사랑해 주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서 자신이 귀한 존재로 알고 사랑과 자존감을 키워가듯,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내 마음이 간지럼 나무에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에 새싹이 돋았다. 삶이란, 어찌 보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은 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인가!

 

                                                한국산문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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