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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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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드 마그리트    
글쓴이 : 봉혜선    23-08-23 16:12    조회 : 1,851

인사이드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봉혜선

 2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 신사의 입상이 서 있는 입구. 신사의 환영하는 미소는 보이지 않는다. 중절모를 쓴 신사의 얼굴 바로 앞을 여름 숲을 연상하게 하는 진한 초록 사과가 표정을 가리고 공중에 매달려 있다. 잘 안 돌아가는 발길을 끌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림 밖으로 나온 담배 파이프 보울(bowl) 부분에 내 머리를 거꾸로 들이미는 데 망설임이나 거칠 것은 없다.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충분한, 그래서 피우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크기의 파이프 앞이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글자를 넣어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의 작품전(르네 마그리트. 인사동 쌈지길. 2020, 04. 29~09. 13)에 걸맞는 설치품이다. 그 난해함에 이끌려 신청한 전시회 관람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 일상적인 생각에 대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절대적 보편적 진리는 없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에서 파이프 그림을 인용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진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붕대로 휘감은 얼굴로 상대와 밀착한 모습을 표현한 <연인들>을 앞에 두고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하고야 마는 미지(未知)성과 막무가내를 느껴야 했다표정과 눈빛뿐 아니라 서로의 냄새입의 감촉도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말을 새긴다.모자 장사를 했던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그리고 그 어머니의 자살에 타격받았을 그는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그리는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려냈다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엄마를 그리며 그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검은 양복이나 코트를 입은 신사는 양복 재단상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품의 주 소재이다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시대 보통 복장인 신사복으로 똑같이 차려입고 질서정연하게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으로 공중에 늘어놓은 겨울비, <골콩드>도 상식적인 선으로는 설명해 낼 수 없고 이해불가하다. 혹시 세상 마지막인 혼돈의 날에 선택받는 사람들은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어야 승천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보통 복장인 선남선녀 우리 모두 말이다방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 창 앞에 선 25명의 똑같은 모습의 신사들이 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에게 받은 영향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 예술가의 모습에서 언뜻 프로이트가 생각난 건 왜일까. 사랑을 사랑으로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예술가의 비애를 반증한다고 해석해도 되려는지.

 그림의 틀만을 마련해 둔 곳에서 관람자 스스로가 작품이 되어야 하는 낭패와 당혹감을 맛보아야 한다. 모자와 파이프를 위아래로 배치해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머리와 입을 맞추어 끼워 넣어보고 싶게 하는 참여적 작품을 만들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관람객에게 나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될 거야 라는 자신감과 기대감으로 기다릴 수 있지만 그 순간 주인공은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거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스갯거리가 되어도 열심히 맞추어보려는 시도는 어쩌면 인생과 닮았다. 어떻게 해도 머리에 모자, 입에 파이프를 정확하게 댈 수 없는 혼돈을 겪으며 관람객은 르네 마그리트가 지향한 초현실을 체험한다.

 세헤라자드 체험 존에서 내 얼굴은 보석에 둘러싸여 낯선 모습이 되었다. 천일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왕과 결혼을 할 수도 있을까?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진 <빛의 제국>에서는 가능하려나? <빛의 제국> 시리즈는 낮과 밤이 공존하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916>이 환한 빛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를 표현한 작품의 제목이다. 그저 무제라거나 모월모일이라는 의미조차 담지 않은 제목이다.

 제목과 작품이 관계없다는 작가의 주장에 편승해보자. 영화광이던 작가가 작품을 내보이는 시네마 룸의 의자는 치워져 있음이 분명하다. 작가의 무의도대로 바닥에 앉아 빠르게 흐르는 자막을 보며 흑백 장면들을 훑는다. 작품의 제목을 짓는다는 것은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친구들과의 모습을 직접 촬영, 출연한 영상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지은 북치는 토끼 두 마리의 그림 제목은 <쿵 두둥 두둥둥 쿵 둥>이다. 글쓰기 기법에 나오는 용어 중 낯설게 하기가 예술 작품을 마주 대할 때 겪는 신비한 경험에 닿으면 스탕달 신드롬(스탕달은 미인을 한번 보고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이라 한다는데, 오늘 밤 나는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는 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라고 했다. ‘이질적인 것에서 낯선 매혹적인 힘을 느끼고 이를 시()라 부른다고 했다무엇을 그린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의미 없다고도 했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르헤스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한 말처럼 그도 그랬다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린다고 했다혼돈을 감수하고 발길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한다.

 거울을 활용, 가상과 비가상의 경계를 없앤 체험존에 들어섰다. 도화지나 보드에 그린 그림이 2차원, 입체를 부여한 조각품이 3차원이고 거기까지가 미술이라고 알고 있는 상식이 무너졌다. 거울 두 개 사이를 떼어서 놓은 맞 거울은 설치미술로 여겨졌다. 작가가 매료되었던 거울 앞에 들어서자 설치미술까지를 상상한 4차원 입체를 넘어서 가상과 비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들어선 거울 사이는 자기 복제 체험 공간이다. 관람자를 거울에 비쳐 참여하게 하는 형태가 4차원이라면 맞 거울에서 내 앞모습과 뒷모습이 무한 반복되며 손오공이라도 된 듯 분신을 만들어 내는 광경은 5차원이었다. 무엇이 미술품인지, 혹시 내가 예술품인 건가? 아니라면 특별할 것이 없는 갑남을녀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이며...? 관람자의 시선과 생각은 혼돈에 빠진다.

 디지털 프린트, 디지털 영상, 멀티미디어 영상이 펼쳐지는 전시장이다. ‘이머시브 룸(immersive room)에서는 소리와 움직임을 얻은 그림이 일렁이는데, 구름을 머금은 눈알이 바닥을 흘러 다니고, 미지의 인간이 땅에서 석상처럼 솟아오른다고 안내한 곳에 이르렀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어야 할 기둥은 허공을 떠돈다. 꽃들은 무리지어 다니는 누우 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꽃받침이 없는 꽃들이 나비처럼 공중에서 움직인다. 허공에서 피아노 야상곡과 이츠하크 펄먼의 바이올린 선율이 뒤섞인다. 사진과 그림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시대에 걸맞게 디지털화한 그림이 대세인가 보다.

 출구에서 맞닥뜨린 초록사과는 거대한 크기로 <청취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과 혹은 청취실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없다. 껴안을 수 없는 커다란 사과에 귀를 대어보아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과의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길 바라는 것이 잘못인가. 상식을 깨지 못한 채로 경이감과 감탄만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자신에 대해 낭패감을 느낀다.

 마그리트는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를 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병치함으로써 초현실의 그림 세계로 진입했다. 혼란스러운 그림을 통해 평소에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예술가로서 마그리트는 무엇을 보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불멸의 예술 작품은 상식과 논리 없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꿈과 아이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키리코의 글에서는 니체의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관람을 마무리하고 구름 쉼터에 마련된 기념 입체 카드를 만들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 벌판을 떠다니는 <피레네의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천공의 성 라퓨타>에 영감을 주었다. 미국 CBS 방송의 로고는 그의 구름을 배경으로 떠 있는 거대한 눈을 본 딴 것이다. <겨울비>는 영화 <매트릭스>, 푸른 사과는 비틀즈의 <사과 앨범>에 영감을 제공했다. 이 외에도 후대에 끼친 영향력으로 마그리트는 빛을 지닌 제국이 되었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라는 말로 예술가가 지켜야 할 본연의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마르셀 뒤상의 작품 <>에서도 마그리트가 밝힌 불은 꺼지지 않았다. 레디메이드인 변기도 자신의 사인이 들어가면 예술이다행간을 꿰뚫 줄 알아야 뜻을 알게 되듯음악미술입체특별하지 않은 나 혹은 무명의 혹자 등 예술이 다루는 종횡무진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이 무어든 보통의 삶이 예술, 바로 그것이라는 가르침, “사랑해라는 고백이 사랑 받기보다는 주체인 내가 사랑에 빠져 있다는 뜻이듯이.

전혀 다른 어떠한 시각으로도 해석 가능한 거장의 세계를 둘러보며 거의 세 시간 동안 홀려있었다. 작가의 영혼에 기댄 상태로 굳이 꼬리를 붙이자면 이 글 일독도 어디부터라도 상관없기를 바란다


<<수필미학. 202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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