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칼럼 2023년 12월 7일자>
단하! 목불(木佛)을 태우다
(단하소불 丹霞燒佛)
‘단하(丹霞)’ 스님은 추운 겨울날 만행(萬行) 중에, 낯선 절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객실에는 온기가 전혀 없어 추워서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땔감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단하는 궁리 끝에 ‘대웅전’의 목불을 모셔다가 도끼로 쪼개서 불을 지폈다.
그때 지나가던 주지 스님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단하는 태연하게, “너무 추워서 군불을 지피는 중이오.”
주지 스님은 “당신 미쳤소? 부처님을 쪼개서 불을 때다니~~~”
그러자 ‘단하’는 아궁이의 ‘재’를 헤치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단하의 행동이 이상하여, “아니 당신 지금 뭐를 찾고 있소?”
단하는, “부처님을 다비(화장)하였으니 ‘사리’를 찾는 중이요.”
주지 스님은 고함을 치며, “목불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그러자 단하는 태연하게, “그렇다면 나머지도 아궁이에 넣어야겠소?”
화가 난 스님은 단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단하는 스님의 손을 뿌리치며…… “스님이 방금 ‘나무토막’이라고 하지 않았소.”
주지 스님은 “……… ?!!!”
“목불(木佛)은 과연 부처인가 나무토막인가?”
우상숭배(偶像崇拜, idolatry)는 불교의 ‘근본정신’이 아니다. 석가는 ”그 어떤 상(像)에도 현혹되지 말고, 오직 ‘자신’과 ‘법’(경전)을 등불 삼아 혼자서 정진하라.”라고 하였다. 불상(佛像)에 빠져, 본질(解脫해탈)을 보지 못 하는 일을 염려한 것이다.
불교는 “일체(一切)는 고통이라 하여, 바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 한다. 깨달음을 통해 해탈(解脫)하여 열반(涅槃)에 드는 것이다.” 고통의 근원을 ‘자아(自我)’에서 찾아,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종교계는 우상화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종교는 이미 상업화되었고 기복신앙(祈福信仰) 화 된 지 오래다. 마치 ‘나무토막을 부처라고 우기는 형상이다‘. 이제는 ‘우상화 놀이’를 당장 그만두고, ‘종교의 근본정신’을 회복하여 ‘인류 구원’에 힘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