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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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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이름    
글쓴이 : 노정애    24-08-07 16:50    조회 : 4,464

                                           특별한 이름

 

                                                                                            노정애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종이 울리자 휴대폰에 불이 났다. 여기저기서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 왔다. 토끼가 깡총 깡총 뛰고, 절을 하고 복주머니를 안겨주고 펼쳐놓기까지... 나는 언니 생각만 났다.

 

 우리 형제들이 태어난 60년대에는 출생신고를 본적지에서 했다. 할아버지가 계신 창원에 본적을 두었던 아버지의 형제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전화나 전보로 알렸다. 자손 욕심이 많았던 할아버지는 득남 소식을 아주 좋아했다. 이름도 항렬行列에 따라 신중하게 지어 출생신고를 대신해 주었다. “여식은 제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시집보내야 한다.”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당신에게 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집 사람이었다. 이름도 적당한 앞 글자에 구슬 옥자를 붙여서 출생신고를 했다. 그래서 사촌 언니들의 이름에는 옥이 많다.

 오빠 이후로 3년 만에 언니가 태어났다. 딸이라고 아버지는 좋아했지만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단다. 큰집 언니들 이름 짓느라 쓸 만한 글자는 다 썼는지 달력을 보고 그해를 알리는 앞 글자를 따서 신고를 했다. 호적에 오른 언니 이름을 본 아버지는 딸 이름을 이렇게 지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할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였는데 남의 집 사람 될 텐데 이름이 어때서, 다음에 또 딸 낳으면 그때는 네가 지어라.” 라고 일갈했다. 사정을 알게 된 큰 외삼촌이 조카에게 어울리는 이름 몇 개를 지어왔는데 엄마가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숙정을 택했다. 그렇게 언니는 우리 집뿐 아니라 친척들에게 숙정이라고 불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년 뒤에 내가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남동생은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다.

 

 언니에게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왔다. 아버지가 이게 네 이름이다. 우리 숙정이 이제 학교 가겠네.” 했을 때 이름이 다른 것을 처음 알았단다. 언니는 낯선 이름표를 달고 학교에 입학했다. 한동안 선생님의 호명에 대답도 못하고, 친구들의 부름에도 마찬가지였다며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그리고 따라다니는 놀림. “앞니 빠진 개오지 우물 앞에 가지마라. 붕어새끼 놀란다.(개우지, 중강새, 갈강쇠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부산에서는 개오지라고 했다.)” 이 빠진 아이에게 부르는 이갈이 노래였는데 이름 때문에 늘 놀림을 당했다. , 고등학교에서는 처음 이름표를 본 친구들에게 생긴 것과 이름이 완전히 따로 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늘씬하고 큰 키에 얼굴도 예뻐 그런 말을 들었으리라. 친구를 사귀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면 조금 주저했단다.  

 언니는 20살 되던 해에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딸이 받은 상처를 알기에 아버지가 백방으로 알아봤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하지만 그때는 까다롭고 복잡해서 개명이 쉽지 않았다.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결국 바꾸지 못했다. 실망감에 며칠을 밥도 안 먹고 속상해하는 언니에게 네 이름이 그렇게 싫냐? 이름에 별자리 를 쓰는 사람은 잘 없어. 별자리 계에 구슬 옥. 구슬 별자리! 얼마나 특별하고 예쁜 이름인데.”라고 했단다. 이후 결혼을 하고 본인이 직접 개명절차를 알아봤는데 너무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확인하고는 포기. 절차가 간소화되었을 때는 엄마 이름이 좋다는 성년이 된 아이들의 말과 개명 이후 신분증과 금융기관, 보험사 등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바꿔야하는 번거로움에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언니 이름은 계옥癸玉이다. 올해 환갑이 되었다. 이름에 계자도 들어가는 완벽한 언니만의 해이다. 할아버지가 지은 이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1년 내내 한 사람만을 떠올릴 귀한 이름을 주었으니 말이다. 언니에게 이름으로 글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놀림 받은 이야기며 개명을 위한 수고, 지금까지 자신과 똑 같은 이름은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며 아버지 말처럼 특별한 이름이라고 했다. 요즘도 곧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름이...’라고 말끝을 흐리면 구슬 별자리를 당당하게 말 한단다. 자신의 이름이 평범하지 않아서 좋다며 잘 써달라고 허락했다. 이름을 떠나서 내게는 하나뿐이 좋은 언니. 잘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천간의 열 번째를 말하며 북방 계로 나와 있다. 10천간을 보니 헤아릴 규자에서 따온 글자로 헤아리고 분별한다는 뜻이란다. ‘별자리 계는 옥편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름이 싫다는 딸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셨을 아버지. 북방 에 구슬 ’, 북쪽 방향의 구슬, 북극성을 떠올리셨으리라. 딸이 별처럼 반짝이는 삶을 살기 바라셨던 당신이 별자리 계를 만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올해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언니에게 더 빛나는 해임이 틀림없다.    

 

                                                                                    <한국산문>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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