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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 세 판    
글쓴이 : 봉혜선    24-09-06 09:45    조회 : 3,826

삼 세 판

 

봉헤선

 

 동양에서 1은 남자, 2는 여자를 나타낸다고 믿어 왔고 아이를 낳아 가족 수가 셋이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가정이라고 인정을 받았단다. 서양에서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에서 보듯 숫자 3은 안정을 뜻한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 아니면 매가 석 대라는 속담에도 3자가 들어있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거나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연결하는 매파에게 돌아가는 건 그저 술 석 잔이나 매 석 대다. 조상들의 3에 대한 순응과 사랑 앞에서 새삼스런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런 것이 아닐지. 속담이나 격언이 괜스레 전승되는 것이 아닌 이유다.

 맞아 맞아, 하며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유구하고 장구한 역사의 한 모퉁이를 흐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속담이며 격언이다. 숫자 3이 들어간 속담을 생각해 보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 한다.’등이 금세 떠오른다.

 결혼 전 시집살이 3, 삯 월세* 3, 전세 3년 살고 10년 만에 집을 사자.”고 했을 때 즉석에서 그러자고,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되물은 건 단 한 마디였다. “그런데 삯 월세가 뭐예요?” 삯 월세를 설명하는 예비 신랑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던가, 한심한 아가씨와의 앞날이 캄캄하다 여긴 한숨이 어렸던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하기로 했던 아가씨가 집 문제로 끝내 돌아섰다는 얘기를 결혼 후에 들었는데 내가 월세니 시집살이 등등 3년씩을 단박에 수긍하자 집안에서 어떤 말이 오갔을지 짐작되었다. 결혼할 때벙어리 3, 귀머거리 3, 봉사 3을 지켜야 할 덕목으로 받았다. 속담을 보물단지 모시듯 모셔야 한다는 말을 경구인 양 듣고 결혼했다. 쪽 찌신 시어머니의 주름 갈피마다 3년마다의 인고의 세월이 새겨져 있음을 몰랐던 때였다. 결혼 6년째 되던 해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갓 30을 넘은 때였다. 3년 상이라도 치러야 하나 눈치를 보았으나 3일장 후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3년쯤 지나 남편이 막내 너를 두고 가는 게 맘이 아픈데막내아가 괜찮은 기 들와서 맘이 놓인다.”고 한 시어머니의 유언을 전해주었다. 남편은 3형제 중 막내라 시어머니는 내게 제일 어리고 젊으니까 참아라.”라고만 하셨는데 뜻밖이었다

 결혼 후 3년 안에 어른이 아프시거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잘 못 들어온 새사람 탓을 하는 세대의 어른 말씀이라 내내 위안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유언을 왜 3년이나 묵혔다가 말해 주느냐는 내 물음에 건방져질까봐라고 답한 남편에게 드디어 나를 믿어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결혼 10년을 채우지 않고도 집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두 형님들은 우리 셋이 잘 지내야 한다고, 시어머니 흉도 같이 볼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큰형님이 들어오던 날부터 살림을 맡기고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최근 며느리를 한 명씩 본 형님들과 시어머니 제사 때 모이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며느리가 셋이 들어오면 셋이 목욕이나 가자.” 여기 어울리는 속담 한 마디. ‘세 동서가 모이면 황소도 잡는다.’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지만 셋이 모이면 역사가 만들어지고 일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삼 동서가 모여 밥을 하면 몫몫이 서로 다른 잘하는 일을 수행해내어 밥이 맛있다. 삼박자가 균형을 이루며 안정한 상태에 솥 ()’자를 붙인 이유를 알겠다.

 소설가 전경린은우주 원리라는 것이, 그 근원이 숫자의 비밀에 있고 숫자는 제각각 성질을 품고 있으며, 그 성질대로 자기 에너지와 색과 온도로 작용한다.’라며 숫자가 가진 의미를 지적했다. 삼복더위를 지나야 여름을 날 수 있고 추운 겨울을 삼동이라 부르는 것, 만세는 삼창해야 제 맛인 것, 그리고 삼신 할매, 삼칠일, 삼원색, 삼보일배, 삼재(三災), 3일장, 삼우제(三虞祭)... . 숫자 3은 가장 안정적인 수이며 생활에서 축을 이루며 중심이 되는 숫자다.

 공부에 유학에 여행에 스펙 쌓기에 바빠 스펙과는 거리가 먼 요리를 배울 시간은 없어 보이는 요즘이다. 젊은이들은 그들을 가르칠 어른이 없어지는 것과 합세해 대세를 우리와는 다르게 이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삼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단판에 초중고 10년 남짓한 세월이 비정하게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입시니 취업의 행태 때문이 아닌지 짚어보게 된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에서 진일보한분식집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말 역시 지나간 시대의 산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개도 3년이면 무언가 배운다는 소리인데. 요즘은 엄마가 하는 요리는커녕 정확히는 일용할 반찬 만드는 것조차 볼 기회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검색하면 전국 맛집 비결이 다 나오는 검색기가 손마다 들려있어 남녀 불문, ‘요린이들도 문제없다. 반조리 식품이나 아예 밀키트 시장의 규모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손맛이 들어가야 삼삼해지는 전통 음식은 대기업의 이름으로 마트에 진열되고 백화점에는 다국적 요리가 자리한다.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실수 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3이라는 우주의 숫자를 전할 방법이 요원하다.

 3판 양승제나 53승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지는 듯하던 경쟁이 더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희망이란 희미할지라도 고통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지. 한두 번의 실수를 통해 우뚝 서는 삶이란 얼마나 인간적인가. 밤새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리도록 끓어야 진국이 우러나는 곰탕처럼 진짜 맛은 속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닐는지.

 운전면허를 내고 남자는 3년 동안 사고를 칠 만큼은 친다고 한다. 내재되어 있던 모험심과 자신감이 자꾸 피를 끓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3년 무사고에 자신만만하게 된 여자들이 내는 사고는 그 이후에 나기 쉽다니 골라 탈 수 있다면 성별 운전 경력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천지(天地)만으로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이 가운데 사람이 들어서야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세상이 된다. 사는 맛이 삼삼하기를 바라고 있다.

*삯 월세는 그동안 사글세로 표기법이 바뀌었습니다.

 

<<현대수필, 202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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