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지다
봉혜선
지하철에서부터 전화를 받는 폼이 플랫폼을 거쳐 계단을 오르면서도 똑바르게 세워지지 않는다. 그를 살피는 나도 따라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다. 신호등 눈치를 살피고 건널목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며 어깨를 자꾸 추킨다.
아파트 입구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러 내려올 땐 바쁜 걸음을 도울 만큼 수 있을 만큼, 깜빡이는 신호등을 보고 뛰어도 무사히 건널 만큼 경사가 부드럽지만 급한 마음으로 종종걸음 치는 귀가 길을 헉헉거리게 만들기엔 충분히 높을 만큼 경사졌다.
목을 외로 꼬며 어깨를 추키던 눈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어깨에 휴대폰을 끼고 혼자 시시덕대는 모양이 들어왔다. 여학생과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휴대폰에 기댄 모양은 상대방에게로 잔뜩 기울인 집중의 상태로 느껴졌다 기울인다는 건 어쩌면 사랑이로구나. 사랑도 기울어져야 비로소 생기는 것. 딱 반이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게 된다. 사랑 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사랑주의자 말에 따르자면 기울어지는 것이 사는 것일까? 관계하지 않고 사는 각자도생의 관계. 그걸 굳이 관계라고 해야 한다면 말이다.
옛 로마에 사람을 모이게 한 것 중 물을 끌어들인 수로 사업을 빼놓을 수 없는데 거의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수원지에서 오로지 기울기의 차이로 수로를 설치했다. 로마로 흘러 들어온 물로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어 위생상태가 대폭 개선되었다. 목욕탕은 로마인들의 휴식처와 사교장으로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여기에서 기울기는 문화이다.
날은 날로 봄으로 향해 있는 2월 하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햇볕이 드는 쪽은 노란 산수유가 불을 켠 듯 훤하다. 따뜻하다. 볕을 향해 한껏 위로 가지를 편 다른 나무들이 봄에 복종하는 몸짓을 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파트 벽에 기대듯 심은 플라타너스는 볕을 단체 관람하듯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한 모습이다. 뿌리가 얕아 옆으로 넓게 벌리지 못하고 위로 쭉쭉 뻗는 플라타너스 큰 키는 서로에게 기대지 못한다. 벽 쪽 가지는 마치 칼로 자른 무인 듯 잔가지만 듬성하다.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목숨이로구나, 생명이로구나.
건강의 비결이라며 뒷짐 지기 자세로 걸으라는 말이 항간에 회자된다. 뒷짐 지기는 앞으로만 쏠린 자세를 바로잡기에 좋은 자세다. 양 옆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거나 치우치지 않은 자세다. 앞으로 쏠리거나 그렇다고 뒤로 젖혀지지 않을 수 있는 뒷짐 지고 걷기는 몸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좋다. 한발 물러나야 상황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이를 건지려면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먼저 줄을 던져 주는 것이 상생에 더 나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방법이랄까.
외줄 위에서 걷거나 재주 부리는 것이 구경거리가 되는 이유도 줄 위에서 넘어질 듯 균형을 잡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 구경꾼의 발에서도 쥐가 날 것 같고 외줄에 올라탄 사람이 친척이나 친구가 아닌데도 손을 움켜쥔다. 외줄 위의 사람은 구경꾼의 그 긴장을 먹고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는 건지 모른다. 외줄 위에서 균형을 위해 발에 복종하는 팔의 움직임에 주목해 보았는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 그 위에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 자리에 서 팔을 양 쪽으로 벌리는 등 각종 자세는 발의 균형으로 보이지만 팔의 균형이기도 하다. 다리와 팔이 서로를 믿고 기대기 때문이 아닐까.
곡식이나 무엇을 페트병에 덜어 넣을 때 쓰는 깔때기는 양쪽 주둥이의 크기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기울기의 차이가 아니라면 별무소용인 물건이다. 비슷한 크기의 주둥이에서 물 따위를 나눠 담을 때 필요한 자세 또한 기운 정도이다. 샴푸나 기름 같은 액체 류를 옮겨 담을 경우 덜 때 위에 있는 용기를 아래 그릇에 기을여 두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마지막 한 방울까지 옮겨진다. 서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울인다는 것은 이럴 때는 시간이다. 알뜰함이다.
집중, 열정 등에 관심이라는 기울임을 더한다면 더 사랑하거나 더 생각하는 쪽이 을인 관계가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지. 을인 상태를 억울해 하면서도 너무 빨리 가려고 나를 너에게 강요한 것을. 내 감정을 너무 우겨 버린 것을, 목적지만을 위해 과정을 외면해 온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의 보이지 않던 기울어짐이 겨우 보인다.
<<나무와 해, 정목일 선생님 팔순 기념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