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할머니는 얼굴이 없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한옥 사랑방 창문 밖으로 여린 빛들이 어른거렸다. 다섯 살 무렵, 무슨 이유인지 나는 며칠 동안 가족과 떨어져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앉아 정면을 빤히 응시했다. 발치에 돌복 입은 남자 아기가 서 있었다. 모르는 아이였다. 말간 얼굴에 눈은 동그랗게 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위로 파란 복건을 쓰고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그 아이를 한참 동안 끔벅끔벅 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유령을 본 것일까, 꿈을 꾼 걸까. 여전히 모르겠다. 기이한 유년의 경험은 그곳 시공간을 통째로 내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일을 회상할 때마다 귀신일 수도 있는 존재보다 왠지 주변 다른 것들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사랑방의 형태, 윗목의 장롱, 긴 창문들과 불투명한 창호지, 아랫목의 벽장 등. 그중 거세게 날 붙잡는 건 ‘진주 할머니’였다. 그날 진주 할머니는 내 옆에서 주무시고 있었다.
남자 아기를 바라보던 나는 할머니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가 벽을 향해 옆으로 누워 계셨다. 할머니의 굽은 흰 등이 보이고 서서히 페이드아웃. 거기까지였다. 영상은 늘 그곳에서 멈췄다.
기억 속에서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할머니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방에서 나의 시선은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오직 할머니의 창백한 등에만 꽂혔다. 누군가를 등으로만 기억하는 건 내용을 알 수 없는 책의 찢어진 종잇조각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딱 그것뿐이어서 무엇인지 말할 수도, 말할 필요도 없는 느낌.
그리고 이건 내가 조금 더 자랐을 때의 일이다. 나는 할아버지 댁 커다란 대문 밖에서 아저씨들이 크고 길쭉한 상자를 어깨에 메고 노래를 부르며 점점 멀어져 가는 걸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상여였다. 제법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상여에는 진주 할머니가 모셔져 있었고, 진주 할머니란 이름은 증조할머니를 내 식으로 이해한 이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주 할머니는 내게 다정했을까? 증손주가 많았는데, 그중에 내 이름을 알고 불러주셨을까? 모르겠다. 기억 속 할머니는 얼굴이 없어 표정도 목소리도 없다. 내게 증조할머니는 그저 등으로만 존재한다. 무심하게 창에 닿은 새벽의 옅은 그림자처럼, 그저 고요한 등.
『한국산문』 2024년 9월호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