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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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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글쓴이 : 봉혜선    25-03-07 22:05    조회 : 1,220

5-3

 

 역사(驛舍)로 들어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목적지에 도착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목적지가 서로 다를 사람들이 긴 대기실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은 출입구가 15. 청담역은 14개나 된다. 같은 출입구를 통해 들고나는 사람들이 소위 같은 역세권 이웃이다. 모임 장소를 알릴 때 전철역 몇 번이라는 안내가 틀리면 마치 다른 나라에 가거나 우주 어디로 불시착한 외계인이 되고 말기 일쑤이다. 이웃사촌 개념이 무색하다. 엄마와 나는 같은 전철역 구획 안에 산다. 나는 4번 출입구 쪽, 엄마는 3번 출입구 쪽이 가깝다. 역은 같은데 출입구는 멀어서 전철 역 안에서 만날 약속을 하곤 한다.

 전철 칸마다 1, 4번째는 경로석, 노약자석이다. 고령화 사회니 백세시대를 맞아 활동적인 어르신들도 자발적으로 노인임을 수긍하며 앉는 풍토에 이 자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무심코 탄 지하철에 왼쪽이든 오른쪽에 노약자석이 있으면 얼른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어느새 팍팍해진 다리로 경로석 빈자리를 애써 외면할 때면 몇 년 후라야 저 자리에 앉을까 새삼 나이를 짚어보기도 했다.

 생각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금방 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때였다. 이 자리는 비고 다른 자리가 없을 때 약자에 방점을 찍고 앉았다. 약자인 것을 인정하는 신호는 몸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특히 병원 다녀올 때나 눈이 유난히 아픈 날은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눈을 가린 모습이다. 눈을 감고 노인을 외면하는 젊은 친구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야 한다는 몸짓이다.

 경로석은 작은 노인정,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손주를 대동하거나 병원 약 봉지만으로도 동병상련이 되기 쉬운 자리이기도 하다. 여자 노인끼리는 쉽게 말을 트기도 쉽다. 노인끼리 다투는 모습도 가끔 마주친다. 젊어 보이는 노인과 나이 많은 노인이 자리 양보 문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75세까지 중년이라는 유엔 통계를 설명서로 붙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65세가 되기를 바라던 마음이 붉어진다.

  겉보기에 노인인 사람들과 무늬만 노인인 사람들에 대한 회의도 깊어진다. 나이는 겉으로도 표시가 나야하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도 거든다. 노인임을 알아보려고 흰머리를 주었다는 섭리를 거스른 사람들이나 내내 검은 머리인 채로 나이를 먹은 사람, 젊어서 머리가 셀 정도의 고통을 헤쳐 온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또 있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성형 시술을 받은 사람들, 아니 노인들.

 각 칸의 2번째는 임산부석이다. “겉으로 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에게도 자리를 양보해 주라는 안내방송이 수시로 흘러나온다. 눈에 띄게 분홍색으로 구분해 놓았고, 안내 방송에서 귀가 따갑도록 반복하는데도 떡하니 앉아있는 젊은 남자들은 내 눈에는 매우 불편하다. 무 개념을 지적할까 하다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것이 만고의 진리임을 다시 확인한다. 안 보는 게 수지 싶어 2번 문에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기는 피하고 있다.

 전철 역사에서 길치인 내가 길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피해 걷는 곳은 초록 선 안인 안전 구역이다. 각 지하철 역사 내에 선으로 구분되어 있는 안전구역이라는 공간은 어디에서 안전하다는 걸까. 범죄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수상한 행동으로부터라고? CCTV가 촘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구역이 초록의 안전 구역이다.

 역사를 드나들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또 다른 세상살이이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운행하는 전철을 대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출발하는 자, 도착한 자, 급한 자,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나온 자, 약속에 늦은 자, 한껏 꾸미고 나오거나 반대인 자. 전철을 기다리거나 보내는 자, 아차, 늦어 발을 동동 굴리는 자. 모두 나의 다른 모습이다. 나라별 인종별 차이를 느끼지도 않는다. 경로석, 노약자석, 임산부석을 빼면 자리는 얼마 남지 않는다. 앉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눈을 돌린다. 속도만큼 속도에 따라 바뀌는 광경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집에서 나와 한 가지 볼일을 보고 다시 귀가할 때까지 평균 300번 찍힌다는 CCTV로부터는, 그것이 더 안전하지 않은 것 아닌가. CCTV를 지켜보는 사람으로부터 사생활이라고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를 안전하다고 표시를 해둔 공간에는 발끝도 들여놓고 싶지 않다. CCTV는 계단 위아래 버젓하게 설치되어 있고 엘리베이터 앞도 감시권이다. 긴 역사에는 양쪽과 중간 중간에 촘촘히 포진되어 있다. 한국이 여행객에게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는데 내가 움직이는 걸 찍는 감시 카메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 아닌지.

 안전이 보장된 K-컬처는 남에게 노출되어 있는 이유로 발전한 것이 아닌지.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풍토와 어울려 실오라기만 한 단서도 잡아내니 사적인 것은 ‘1안전하지 않다. 노출 사회라 명명해야 하는 곳이 지하철이다. 노래방에 이어 카페 유행이 드세다. 카페를 도서관 삼고 있는 추세는 도서관을 카페처럼 만들려는 정책으로까지 발전되어 간다고 한다. 노래방과 카페는 폐쇄성이 특징이다. 전철 안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마주 쳐다보는 남의 눈이 있기 때문에, 그 남의 눈으로 서로서로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하철은 궤도를 따라 도는 지구를 닮았다. 한 시대에 지구촌 식구 되어 궤도 안에서 같이 돌듯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같은 전철을 탄 인연을 매번 느낀다. 한 칸은 한 나라. 네 개의 문은 지방. 혹은 문마다 다른 나라. 한 칸은 연합국. 타는 데도 다르고 내리는 데도 다르고 목적지도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임시 연합체.

 『폴라 익스프레스(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미국)에 나오는 대화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 기차에 올라타겠다고 결심하는 거지.” 우리도 앞으로만 내닫는 기차를 탄 동승자이다. 영화 설국열차(감독: 봉준호, 한국 · 미국 · 프랑스)에서 폭주하는 기차 각 칸에 탄 사람들은 다른 칸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규칙이다. 기상이변의 설국을 같은 기차를 타고 달리는 중에 앞 칸으로 갈수록 다르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꼬리 칸 사람들이 앞 칸으로 가며 밝혀지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설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1, 4번 문과 2번 문을 빼고 들고 날 수 있는 문은 각 칸 3번 째 문뿐이다. 요즘은 가장 짧은 환승 칸을 일러주는 노선표가 있고, 자주 다니는 곳의 출입구 쪽에서 가까운 곳을 익혀두어 역사에 들어서면 그곳이 내 자리인 양 자연스레 찾아가 선다. 그런데 왜 5째 칸이냐고? 동행자가 있는 경우 나의 최단 거리를 고집할 수 없고, 나서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 때문이다. 그저 아무 덴데 내 인생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진리라고 하는 말을 수긍하는 중이다. 행불행이 제멋대로 교차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우리는 어딘가로 가는 데서 만난 인연? 다음으로 가는 길목, 혹은 열차를 기다리는 5-3, 혹은 어디든. 폭주.

 <<선수필>> 2025 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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