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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손 투병기    
글쓴이 : 봉혜선    26-01-09 14:54    조회 : 772

오른손 투병기

 

 이렇게나 무능하고 거칠고 둔탁하고 서툴었던 왼손인가. 양쪽에 나란히 있기에 별다르지 않을 줄 알았다. 요구도 비슷했고 모양도 비슷한 것이면 되었다. 다른 쪽을 특별히 위한다는 구별도 하지 않았다. 더 자주 부리지 않아 오히려 더 아껴주기조차 한다고 생각되는 순간도 있었다. 때로 더 힘을 쓰기도 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돕는지 몰랐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며칠을 비웃기라도 할 듯한 2월에 내린 눈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강원도 인제 구역을 지나고 있는 날이었다. 3년 전 시작한 강화도에서 고성까지 DMZ구간을 따라 걷는 모임 날이었다. 1회의 걷기는 구간에 따라 하루 걷는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 평지는 조금 길고 경사가 있거나 해서 난이도가 있으면 조금 짧게 걷는다. 주변 지인들을 길동무로 초청해 같이 걷는 길은 더 큰 기쁨을 주었다.

 인제 길은 생각과는 달리 평지가 오래 이어졌다. 자식들을 인제, 원통 부근 군대에 보내며 하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어쩌나라는 말로 미루어 첩첩산중일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 직접 걷거나 체험하는 기쁨이기도 하리라. 길동무와 함께 가니 버스로도 잠깐이었다. 늘 그렇듯 소풍 가는 마음이라 전날 밤잠을 설친 채여서 잠을 자두려 했으나 이야기가 먼저였다.

 인적도 차도 거의 없는 겨울의 강원도는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먼 데 있는 산의 설경에 시선을 뺏기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움 뒤에 도사린 악의 손길은 그런 모습인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눈길이나 얼음판을 걷기는 얼마나 용을 써야 하는지. 곧 먹을 줄 알았던 점심이 조금 늦어진다고 했다. 은근히 꽤가 나서 약자를 픽업해 준다는 버스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아차 할 사이도 없이 일어났다. 다리와 오른쪽 팔이 마치 직선을 긋듯 주욱 펴지며 나둥그러진 모양을 한 사태는. ‘, 다행이다. 아픈 데는 없다.’ 사선으로 누운 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쉬고 일어나 툭툭 털자. 그러나 그럴 수도 있는가.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미끄러진 거지? 내 사전에는 없어야 하는 사고다, 아니 실수다. 몇 번이나 옆 사람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며 잘 걸어왔고 부축해 주던 사람의 가방도 들어주며 걸어왔다.

 일어나자 심장 께가 졸아붙는 것 같고 앞이 까맣다. 왼편에서 같이 가던 이에게 붙잡아 달라거나 같이 가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기척을 못 느낀 이가 돌아본다. 그 가방을 잡았다가 놓치고 팔짱을 잡았다가 놓친다. 걸음에서 유래 없는 노인이 나타난다. 오른팔이 점점 부자유스러워진다. 팔이, 손목에 이상이 생긴 듯 부풀어 오르는데 걸음은 왜 느려지는가.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앞으로 오란다.

 한없이 먼 점심 식당이다. 양보 받은 난롯가로 시선이 쏠리고 인사가 오간다. 약을 뿌린다, 목도리를 풀어 목에 메어 준다, 붕대를 감아 준다, 오른손이 인기다. 갈비탕에 나온 고기는 다 발라 잘라준다. 국물이 참 맛있다. 김치랑 깍두기는 마침 나온 집게 질, 눈물이 나온다. 아픈 거다. 왼손이 바쁘고 부지런하다. 왼손이 바빠야 오른손이 나으리란 생각으로 다 먹는다. 덜 아픈 건가.

 서울에 도착해 사고 소식을 알리려 아들에게 연락하니 입이 안 떨어진다. 병원 응급실에서 오른쪽 팔목 골절 진단을 받았다. 부서지지는 않았다며 뼈를 맞추었다. 엄지손가락 반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했다. 택시로 귀가해 방으로 스며든다.

 생활은 왼손 담당이다. 오른손을 바른손이라 배워왔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동서고금이 들고 일어나 오른손을 돕는다, 아니다 왼손을 부추긴다. 왼손은 불결한 손, 먹는 것은 오른손으로 한다는 인도의 전통, 오른손을 다치면 인도에서는 어떤 취급이려나, 하는 걱정에 왼손을 주목해온 사실이 없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왼손잡이의 비애도 생각난다.

 간단해서 말거리도 되지 않던 일상이 오른쪽 팔목 하나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 되어 불거진다. 주부 1번인 설거지가 안 된다. 기본적인 살림 처리를 남편에게 부탁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응해준다. 예전에는 어림없던 부탁이었다. 특히 설거지를 못하던 남편과 막내의 설거지 솜씨는 솜씨를 부려야 할 것도 없는 설거지에 실력이라는 말을 써야 할 정도다. 서로 미루기만 하니 설거지통이 빌 새가 없다. 혼자 챙겨 먹는 것에 생색이니 탓할 수 없다. 나의 먹거리를 신세지고 있으니 되레 생색이 더하다. 다리는 멀쩡하니 바지런히 도울 거리들을 찾아준다. 깁스 댄 쪽으로 물건을 들고 가져다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방해되니 앉아 있으란다. 일거리가 느는 것이 싫은 기색이 딱 잡힌다. 멀쩡한 오른팔의 고마움을 모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개인위생 1번인 세수하기와 칫솔질과 옷 입고 벗기도 쉽지 않다. 가운데 달린 입속 칫솔질을 그동안 오른손으로만 해왔나. 왼손은 아예 공격하는 것 같다. 매일 하던 운동도 스톱이다. 스트레칭도 가능하지 않다. 내 손으로 내 몸을 정비할 수 없다니 구부러지는 것이, 곡선인 것이 얼마나 유연하고 아름다운지 새삼 느낀다. 왼쪽을 다쳤다면 달랐을까. 큰 병없이 무탈하게 살아왔으니 이런 투병은 낯설다. 

 남편이 목욕을 도와준다. 왼손으로도 씻을 수 있는데 혼자 해보니 왼쪽 팔을 씻을 수 없다. 오른팔을 큰 비닐에 넣고 벽에 대고 있으면 절로 라는 말 그대로 목욕을 해준다. 일류 세신사는 아닐지라도 오른팔 노릇을 수행해준다. 남편이 나의 오른팔임을 새삼 깨닫는다. 거칠고 서투른 왼쪽을 두어 힘들었을 남편의 과거를 되씹는다.

 오른손이 일을 쉬니 멋 부리려 왼손에 낀 반지, 팔찌, 시계가 거추장스럽다. 오른손이 도와야 왼손이 제 빛을 발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왼손에 로션 바르기도 쉽지 않아 투실투실해진다. 양쪽 손이 모여야 일상이 일이 아니게 된다. 다리가 아픈 것이 나은지 손이 아픈 것이 나은지 겨뤄볼 때가 있었다. 어디라도 아프지 말아야 일이 일이 아니련만 그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이는 곳뿐이 아니다. 어디라도 정상이길 바라는 마음을 수양해볼 요량으로 책을 잡는다. 오른손아 얼른 나아다오. 나는 왼손이다.


<<한국산문.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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