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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표    
글쓴이 : 권순예    26-08-10 13:34    조회 : 20

  어느덧 나도 시어머니가 되었다. 두 손주를 보았다. 이제야 확실히 시어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당신 아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셨을 그 마음. 한 편으로 며느리 눈치 보일까 봐 조심스러우면서도, 뭐 하나라도 더 쥐여주고 싶어 안절부절못하시며 보따리를 싸셨을 그 묵직하고 애틋한 사랑 말이다.

 새댁 시절, 집에 돌아올 때면 어머니는 늘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주셨다. 감자가루, 강낭콩, 말린 도라지, 변색된 김에 기름 발라 정성껏 구운 김 등, 당신 아들에게 좋은 것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남편이 예비군 훈련을 가야 한다길래 어머니가 주신 말린 도라지를 물에 불리면 몇 배로 불어난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하고, 큰 그릇에 몽땅 담가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30촉짜리 백열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도라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화들짝 당황스러워 급한 대로 한 묶음 덜어 박박 씻어 물기를 짜낸 뒤 불에 볶아 남편 밥상에 올려주었다.

 냉장고도 똘똘하지 않던 시절, 허연 도라지를 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양이 저렇게 많으니 어머니가 남편에게 도라지는 잘 먹었냐고, 물어보실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어머니의 노고를 알기에 차마 버릴 수도 없었다. 다시 말리던가 용기에 담아 보관해야겠다 싶어 부지런을 떨었다. 그러다 너무 놀라 뒤로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에 그릇 밑바닥에 하얀 굼벵이 같은 작은 애벌레들이 많아도 너무 많이 퉁퉁 불어 죽어있지 않은가!

 한참 고민 끝에 큰맘 먹고 도라지 손질을 했다. 그리곤 새콤달콤 무치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구이도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주었다. 나도 먹으려 했지만 에벌레들이 떠올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처음엔 맛있게 잘 먹더니 점점 질렸는지 먹질 않았다. 나는 머리를 써서 삼색나물들을 준비해 어머니가 주신 참기름을 듬뿍 넣고 비빔밥을 해 먹이니 그 많은 도라지를 남편이 다 먹어 치웠다. 모르고 먹는 것은 다 약이 될 거라 확신을 애써했지만, 지금도 남편이 도라지만 먹으면 괜스레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머니가 감자 전분을 싸주시면 남편은 감자떡이 먹고 싶다며 성화를 부렸다. 내가 떡 할 줄 모른다고 하자 끓는 물에 반죽만 하면 된다며 재촉했다. 나는 남편 말만 듣고 익반죽해(가루에 떠운물을 부은뒤) 삶은 강낭콩을 넣어 양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감자떡을 만들었다. 그런데 맛을 보니 찌릿하게 쓴맛만 났다.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얼른 갖다줬더니 싱글벙글 한 입 크게 물어 먹더니만 인상을 팍 쓰며 아우 써하고 뱉어버렸다.

 1980년 대만 해도 그리 흔치 않던 귀한 감자 전분이었다. 사실 감자를 삭혀 흰 가루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못난이 감자 잔챙이, 초록색으로 변한 감자를 물에 담가 한 달 동안 삭히고, 단단하게 가라앉은 녹말을 떼어내 매일 물을 갈아주며 30일 동안 우려내야 비로소 특유의 쓴맛이 사라진다. 어머님이 주신 감자 전분은 덜 우려낸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돌덩이처럼 가라앉은 전분을 떼어 마분지 위에 널고 햇볕에 바짝 말려야 투명하고 쫀득한 떡이 된다는 것을 알 리 없었던 초보며느리는, 떡에는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조차 몰라 그냥 마구잡이로 해버렸으니 더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아들 좋아하는 만두 만들어 보내려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문득 손길이 멈춰지면서 남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망설이게 된다. '맛없다고 지 남편만 먹이는 것은 아닐까?', ' 혹 내가 모르는 하자가 있어 냅다 버려버리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이 물밀듯이 들어와 조심스럽기 짝이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당신 아들 먹이고 싶어서 며느리 눈치 보며 보따리 싸서 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앞으로는 신명 나게 시어머니께 배운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남편 밥상을 차려줄 생각이다. 감자떡도 자주 만들고, 뜨끈한 감자옹심이와 기름 내 가득한 고소한 감자부침도 푸짐하게 만들어야겠다. 도라지 요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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