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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달리는 이유    
글쓴이 : 고보숙    12-06-20 18:47    조회 : 3,220
          내가 달리는 이유
 
                                                                       고보숙
 
  코스나 화려하게 꾸며진 종점이 흔히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참가 신청도 없으며 출발점이 다르고 정해진 없다는 것은 다르다.
 
 울트라 스포츠, 익스트림 스포츠가 유행하는 요즘 마라톤은 이제 특정인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200여회가 넘는 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참가 인원도 수천에서 수만에 이른다. 참가비는 5천원에서 4만원까지 다양하지만 배번과 시간을 기록하는 개인용 칩(10km이상), 기념품(운동복 등)을 주는 것은 공통이다. 기념품이 좋아서 신청만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배번 없이 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2004년 가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늘어나기만 하는 체중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집과 가까운 곳에 동호회가 있었다. 준비운동과 달리기, 마무리 운동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회원들이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 반해서 꾸준히 나갈 수 있었다. 달리고 나서 뒷풀이 할 때는 소비한 열량보다 섭취하는 열량이 몇 배는 많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아 나는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운동효과는 있는지 매년 올라가기만 하던 체중계의 눈금은 멈췄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머리가 복잡해 질 때 강변에 나가 달리기를 하면 그 말없이 흐른 강물이 그러는지, 머리카락 사이로 내 볼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덕분인지 내 마음은 깊은 산 속 샘물처럼 맑아지곤 한다.
고교시절 체력장을 끝으로 운동을 접었던 내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이다.
 
마라톤은 B.C 490년 페르시아와 아테네가 마라톤평원에서 치룬 전쟁 때 아테네의 병사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들고 42km를 쉬지 않고 달린데서 유래한다.
이 고사를 스포츠로 승화시킨 사람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브레일교수이다. 쿠베르탱남작과 친분이 있었던 그가 1896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선보인 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육상경기의 꽃으로 보급되었다. 페르시아전쟁에서 패배한 오늘날의 이란에서는 마라톤을 금하고있다.
극한 마라톤대회로 사막의 마라톤이 있다. 잘 알려진 사하라대회보다 중국의 고비사막 마라톤대회(Gobi march)는 가장 험한 서바이벌 대회로 알려져 있다. 침낭과 옷, 식량들을 필수로 지니고 40도가 넘는 일교차를 견디며 지도를 보며 이틀동안 쉬지않고 80km를 달려야하는 롱데이 코스는 가장 힘든 지옥의 길로 참가자들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 고비사막대회와 칠레의 아타카사막, 남극레이스, 그리고 사하라대회를 모두 완주하는 것이 마라톤의 울트라 그랜드 슬램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규묘가 큰 대회로는 조.중.동 세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를 꼽는다.
매년 3월에 열리는 동아일보 대회는 광화문에서 동대문과 군자교(또는 천호대교)를 거쳐 종합운동장까지 서울시를 관통하며 달릴 수 있는 편도코스로 달리미들이 좋아하는 코스로 풀코스 한 종목만이 있다. 10월에 열리는 조선일보대회는 춘천호를 돌며 호반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순환코스이고, 11월에 열리는 중앙일보대회는 종합운동장에서 성남을 돌아 단풍이 절정인 가로수를 감상하며 돌아오는 왕복코스이다.
모든 대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활약을 한다.
정해진 코스를 안내하고 곳곳에서 응원하며 매 5km마다 물과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주며 급격히 소모된 체력과 탈수를 보충해 준다. 2007년 동아일보대회에서 코스안내 봉사를 하며 세계 유명 선수들을 눈 앞에서 직접 보았고 이봉주 선수의 우승을 지켜보며 가슴 뛰기도 했다. 일반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티셔츠와 도시락, 교통비 만 원을 준다.
인간체력의 한계라는 42.195km를 혼자서 달려야 한다면 더 힘이 들 것이다. 각 대회에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자신이 완주할 시간을 적은 팻말(또는 풍선)을 몸에 달고 각 구간마다 균일한 시간으로 달릴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 사람들이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들의 꿈의 기록인 서브쓰리(sub-3)에 도전하기도 한다. 풀코스를 2시간 59분 59초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힘든 과정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있어 마라토너들은 자신의 몸상태를 잘 읽으며 달려야 한다. 보통 30에서 35km 지점에서 부상 등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남은 거리가 10km 안팍이니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에 몸의 이상을 느끼면서도 무리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풀코스대회는 시청앞을 출발하여 마포대교까지의 코스였다.
청계천을 지나 광진교에서 한강 남쪽으로 건너는 20km 지점에서부터 힘이 들어 달리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올림픽대교와 잠실, 한남등 한강의 다리밑을 통과하며 내 무모함에 가슴을 치고 있었다. 원효대교를 지날즈음 36km 팻말을 보았고 63빌딩이 멀리 보이는데 아무리 달려도 길이 줄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달려 갈수록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다리는 강철운동화를 신은 듯 천근이었고 머리가 빠개지듯 아팠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뇌로 가는 산소의 부족으로 생기는 두통이 일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 안 60조개의 세포들이 다 들고 일어나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제발 여기서 그만 두라고. 하지만 저기 종점이 보이는데?
무겁기만한 팔과 다리가 내 몸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종점이 눈 앞에 서 있었다. 감지기가 깔린 매트를 지나고 내 몸에 달린 칩이 ‘삐이’소리를 내며 완주했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아프던 어깨죽지에서 날개가 돋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어떤 일이든지 해 낼 것 같았다. 힘이 들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하는 내 세포들이 앞으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완주 후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섯 시간을 넘게 아우성치느라 들고 일어났던 근육과 뼈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반란을 시작하는 것이다. 최소 2~3일에서 많게는 한 달여동안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이 들고 달린 직후 2~3kg이 줄었던 체중은 본래로 돌아가려고 식탐수준으로 음식에 돌진한다.
여성들에게도 달리기가 체중조절과 건강에는 좋지만 예뻤던 가슴은 인대가 늘어나서 쳐지고 빈약해진다. 몸매가 흐트러지든지 고통이 따르든지 상관없이 달리는 순간만은 행복하다. 오로지 달리는 것에 집중할 뿐 세상의 고민들 따윈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가장 다이내믹한 참선이라고 말했던가.
 
선택할 수 없는 시작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생과 달리 원한다면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라톤.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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