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때로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십여 년간 부부가 동업자처럼 일을 하다 보니 도리어 알게 모르게 괴리감마저 생기는 듯하다. 가령 우리 부부는 일을 하는 동안 철저히 사무적이다. 행동 하나라도 어쩌다 무례해 보이면 그이는 어김없이 내게 야단을 친다. 손님 관리하는 일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길 만도 한데 자세가 흐트러질라치면 은근히 눈치를 준다. 종업원들 앞에서 면박을 주는 그 남자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져 저이가 과연 내 낭군일까 의심스러워진다. 꾸지람을 들은 가여운 여자는 이내 앵돌아져서 그와 눈 맞추길 꺼린다.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사사건건 왜 참견이냐고 쏘아붙인다. 그러고 나면 둘 사이에 한동안 냉랭한 기운이 감돌아 일하는 내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나는 저녁나절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고집불통인 셈이다. 그러나 상대의 고집은 나보다 두어 수 위에 있다. 반나절 동안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죗값으로 삼박사일 말 한 마디 붙이지 않는다. 우리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잔 식으로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너는 짖어라 나는 듣는다. 어디 사는 누구시더라? 라는 식이다.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잠도 떨어져 잔다. 손님을 보고 실실 웃다가도 뒤돌아서면 낯선 표정을 짓는다. 아이만도 못한 어른처럼 유치하고 졸렬해진다. 그렇잖아도 말수 적은 남편이 삐치니 마치 쇳덩어리가 짓누르는 것처럼 묵직하고 갑갑하다. 그렇게 한 며칠 남남처럼 지내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져 돌아버릴 것만 같다. 심장에 활화산의 분출구라도 있는 양 화병(火病)이 터질 것처럼 부아가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속에 쌓인 화를 먼저 터뜨리는 자는 부부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먼저 웃어도 진다. 나는 이 화를 삭이기 위해 최대한 살랑거리며 손님에게 과잉친절을 베푼다. 남편으로부터 억눌린 응어리를 풀어놓는 양 온갖 알랑방귀를 뀐다. 손님,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이것 좀 더 드릴까요? 저것은요? 오만하고 사치스럽게 웃는다. 쓸개 한 점까지 떼어줄 듯이.
문밖으로 나가 풀 방도를 모색 중인 남편의 화를 나는 더욱 돋운다. 술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리는 처량한 우월(優越)을 향해 무언(無言)의 야유를 던진다. 접대하는 언니들, 주방 식구들과 깔깔거리며 남편 흉을 본다. 흥! 제깟 게 마누라 없이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식탁을 정리하고 현관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리는 동안 우리는 한 마디의 말도, 단 한 번의 눈빛도 나누지 않는다. 그이는 식사하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나지막이 배웅인사를 한다. 그 능청이 더욱 밉살스럽다. 나 또한 질세라 사근사근 웃으며 다음에 또 만나자 한다. 흡족해서 가시는 손님 그 누구에게도 우리가 지금 냉전 중임을 절대 눈치 채지 못하게 임무수행을 하는 것이다.
남편의 지나친 간섭에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더 이상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 시동을 거는 그가 나를 태우고 가든 흘리고 가든 괘념하지 않는다. 유유히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는 동안 그이는 천불이 날 것이다. 나는 잠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한다. 절대 질 순 없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진 않으리라 누누이 다짐한다.
이틀, 사흘, 나흘. 살을 부딪지 아니하므로 우리 부부는 이제 서먹서먹해져간다. 어디서 봤더라? 마치 오늘 처음 만난 남남같이 느껴진다. 한 지붕 아래 동거인처럼 사는 남남, 계약직과 정규직 같은 남남, 우량주와 부실주 같은 남남, 대주주와 소주주인 남남, 남자와 여자인 남남.
닷새째 되는 날, 남편은 새벽녘까지 술에 만취해 들어온다. 술의 힘으로 아내에게 진지한 대화를 요청하리라 마음먹었나 보다. 오호라, 술까지? 나는 바짝 긴장의 줄을 움켜쥔다. 남자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가장이라는 명분을 핑계 삼아 흐트러져도 용서가 되는 이 남자를 이날만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우리 그만 쪼개지자 말하고 싶은 충동마저 솟구친다.
그러한 찰나 홀로 허공을 향해 부르짖는 바위, 중년의 돌무더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당신 나를 사랑한 적 있느냐고. 싫다 해도 할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절대 당신과 헤어질 순 없노라고. 내 꼴이 보기 싫도록 밉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좋아하지 않느냐고. 우리 서로 사랑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아니겠냐며 희대의 신파(新派)를 구구히 노래한다. 부르다 부르다 침대에 널브러진 한 남자의 달아오르는 고독을 보며 터진 심장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발뒤꿈치로 줄줄 새나가는 걸 확인한다.
어쩌랴, 어쩌랴.
그날 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줍은 사랑을 하였고 다시 눈을 맞추었으며 스무 해를 같이 산 것처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가만.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더라? 언제 우리가 싸우기나 했던가.
‘부부간은 낮에는 점잖아야 하고, 밤에는 잡스러워야 한다’더니 남이 들으면 딱 그 짝 아니겠는가. 풋!
- <문학청춘> 2012년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