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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주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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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은 사람 (등단작 / 1999)    
글쓴이 : 주기영    13-03-14 16:29    조회 : 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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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영
 
 ㅇㅇㄱ과 ㅇㅇ7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숀 코너리나 로저무어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니면 잘 생긴 남자 주인공과 함께 등장했던 팔등신의 미녀, 본드 걸 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영화 속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만년필 뚜껑을 비밀스러운 카메라 렌즈로 변화 시킨다든지, 도심을 질주하던 자동차의 모습을 바꾼다든지 하는 첨단의 무기를 소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보다 훨씬 잘났다. 적어도 나에게는.

 1979. 서울사대 부속여자 중학교의 2학년 교실.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60명씩 모여 있던 곳에 대학생들이 들어왔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나오신 예비 선생님들이다. 말이 선생님이지 우리보다 열 살 정도가 많던 그 분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때로는 우리가 선망하는 서울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들의 자기 소개 시간. 칠판에 커다랗게 ‘ㅇㅇㄱ’이라고 쓰고는 우리쪽으로 돌아보며 씩 웃는다. 축 처진 어깨와 달리 웃는 모습이 참 맑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다시 칠판을 채운다. ‘장...’이라고. ! ‘ㅇㅇㄱ’은 ㅇㅇ7이 아니라 이름의 받침만을 따서 흘려 쓴 것이다. 순간 교실이 온통 들썩거린다. 심상치 않은 한 달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그렇게 선생님은 ㅇㅇ7처럼 슬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들릴듯한 소리가 리듬을 타고 운동장 저 끝에서 내게로 들려왔다.
 “기영아, 이리와. 나하고 놀~.
 “바둑아, 이리와. 나하고 놀~.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내 이름을 선생님은 늘 그렇게 장난치듯 부르셨다. 선생님의 사소한 관심이 열 네 살 소녀의 마음을 온통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셨겠지만.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도 선생님의 몇몇 추종자들은 교실에 남아 수업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때마다 선생님은 우리를 앉혀놓고 시를 암송해 주셨다. 제목은 언제나 <목마와 숙녀>였다. 칠판 가득 <목마와 숙녀>를 적어 놓고 아무 얘기도 없이 몇 번 씩 이나 외우고 또 외웠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시 낭송은 더없이 멋졌지만 버지니아 울프, 페시미즘, 인생, 고립…… 같은 뜻도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는 사실 때문에 난 부끄럽고 답답했다. 암호처럼 낯선 말들을 내 안에 주워담고는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줄줄 외우며 선생님과의 감정의 공유에 대한 확인으로 난 행복했다.
그 시가 6.25후의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젊은 시인의 허무와 방황의 모습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난 이미 단발머리 여학생이 아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는 시가 <목마와 숙녀> 한 편 뿐인 것은 결벽증에 가까운 내 소심함이 작용했음을 숨길 수 없다. 감정의 사치로 인해 시인들에게 더 이상 죄짓지않기를 바랬으니까.
 밤마다 이불 뒤집어 쓰고 책 읽으면서 밑줄 죽죽 그어대던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라던 산티아고의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 달은 너무 짧았다.
마지막 날, 작별 인사를 하시고 헛기침으로 우리를 긴장시킨 후에 시작된 선생님의 이별노래는 정말 의외였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 아름답게 꽃 필 적에” 하다가 고음에 가서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우린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다시 우리 쪽으로 향하셨을 때, 고음때문이 아니었다. 울고 계셨다. 남자도 그렇게 오래, 그렇게 많이 울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교실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붙잡고 울고불고, 급기야 선생님들께서 머무르시던 교생실 앞에 교장 선생님이 보초를 서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난 거짓말처럼 담담했다. 마음 속으로 <목마와 숙녀>를 되뇌면서 사춘기의 제 1막이 올랐다가 내려지는 아주 묘한 쾌감이었다.

 극장에서 ㅇㅇ7시리즈의 막이 오르는 걸 보면 문득 선생님이 보고 싶어 진다. 지난 봄, 딸 아이의 숙제로 봉선화 씨앗을 심으면서도 그랬다. 화분에 씨앗을 심으며 아이에게 20년 전 그 노래를 들려주니 아이는 킥킥거리며,
 “엄마, 이상해. 무슨 노래가 그래?” 하며 웃는다. 그 옛날 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길거리에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도 알아볼 수 없겠다 싶을 만큼 얼굴 모습 하나 기억 나지 않지만 그렇게 이유없이 떠오르곤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낀 채로 뛰어나와서 보게 된다. 여러 겹의 추억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에게는 첫 사랑과의 만남, 스승과 제자의 만남 등 그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까닭이리라.
보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나면서 산다면 ‘그리움’이 끼어 들 자리가 없겠다 싶어서 마음 한 구석 비워 두지만 그래도 가끔은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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