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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그 서운함은 잊지 못했네    
글쓴이 : 안명자    13-04-09 23:12    조회 : 4,221
아직도 그 서운함 잊지 못했네
 
안명자
 
 며칠 전 우리 부부를 포함해 가깝게 지내는 세 커플이 점심을 함께 했다. 식사 후 차를 나누면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승연엄마가 먼저 말을 꺼낸다. "혜연 엄마는 참 좋겠어. 아들이 일찍 장가를 들어 손자가 벌써 고등학교엘 갔다지. 우리 애는 늦게 장가가는 바람에 며느리가 요즘 입덧하느라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직장생활에 바쁜 아들이 제 아내 입덧에 먹고 싶은 음식 사오랴 집안일 돌보랴 나이든 아들이 가엾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맞아, 입덧할 때 먹고 싶은 것 목 먹으면 그렇게 서운 할 수가 없지." 그러자 강하 엄마가 남편을 향하더니 갑자기 뾰로통한 얼굴로 말을 받는다. 내가 입덧할 때 그렇게 군 오징어가 먹고 싶더라고. 길가에서 군고구마와 함께 구어 파는 오징어 말야. 강하 아빠를 시켜 사다 달라 했지. 한참 후에 군 오징어는 사갖고 왔는데 글쎄 몸통은 다 어디가고 귀와 다리만 갖고 온 거야. 몸통이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까 오징어가 비싸니까 잘라서 팔았는데 몸통은 이미 누가 사 갔다는 거야.
 
 강하 엄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감쪽같이 속은 내가 숙맥이지만 다리만 두개 먹다가 이가 아파서 못 먹고 말았어. 그래도 추운데 사다 주어 고맙다고 치하까지 했는데. 얼마 후에 말다툼 끝에 약을 올리는데 분통이 터져서 보따리 싸려다 말았다니까. 글쎄 자기가 임산부야? 아니 양심도 없지. 오징어를 사갖고 오다가 야금야금 먹다보니까 금방 없어졌다는 거야. 걱정은 되지만 추운데 다시 가서 사 올수도 없고 해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거라나. 자기가 몸통을 먹고서 누가 사갔다고 내게 속인거래 글쎄. 아니 입덧하는 아내에게 남편이란 사람이 말이 되는 얘기냐 말예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나거든."
 
 말을 마치자 모두가 손뼉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 이 말을 듣고 같이 실없이 웃던내게 짚이는 일이 있었다. 아직도 못 잊을 사건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머리를 스치자 가슴 한 구석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던 것이 총알처럼 튀어 나왔다. "그래도 강하 아빠는 저이보다는 낫네. 아이를 가져 입덧이 한참 심할 때인데 하루는 저이가 살 것이 있다면서 충무로 신세계백화점에 가자는 거야. 기운이 없어 싫다고 하자 그래도 자꾸 자자고 해서 언감생심, 시부모님과 여러 동기간 속에서 힘드니까 맛있는 것 사주려나보다 하고 마음속에 터질 만큼 바람 잔뜩 넣은 풍선을 안고 따라 나섰지요."
 
 백화점에 들어서자 지하 푸드 코드에서 전주비빔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데 군침이 돌았다. 신세계 전주비빔밥은 그 당시에 아주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비빔밥이면 먹고 기운 좀 차릴 수 있겠다 싶었다. 입덧에 시달리던 나는 눈이 번쩍 떠지면서 군침이 돌아 입맛을 다셨음은 물론, 우리 살 것 다 사고 갈 때 비빔밥 먹고 가자고 하니 남편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러자고 했다.
 
 지나치게 꼼꼼한 남편을 따라 다니느라 짜증도 나고 입덧에 어지럽기도 해서 땅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그래도 오직 그 비빔밥 먹을 생각에 거의 한 시간가량을 있는 힘을 다해 쫓아다녔다. 물건 구입 후 계단을 내려오게 되었다. 나는 허겁지겁 지하로 내려가는 길로 발길을 틀었는데 이게 웬일? 남편은 정문으로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아아~비빔밥. 비빔밥 먹어야 하는데."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던 나는 비빔밥 생각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남편이 세운 택시에 내가 올라타며 그를 밀쳐 버리고 혼자서 귀가했다. 자존심은 형편없이 구겨졌고 배려 없고 인정머리 없는 남편이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서운함과 야속함에 택시 안에서 굵은 눈물은 왜 그리 많이도 떨어지는지.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보따리는 싸도 내가 쌌어야지 않았겠느냐며 서운했던 임산부의 비애를 응어리 실타래가 풀려 나오듯, 달필가가 일필휘지 휘두르듯 술술 말 했다. 아마도 그때 먹고싶던 비빔밥을 못먹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의 청노루처럼 예쁜 눈이 약간 틀리게 보였엇다. 
 
 말을 마치자 분위기는 고조 되었고 다른 두 커플들은 파안대소를 하면서 "에이, 혜연 아빠 너무 크게 잘못 했구먼. 앞으로 무엇이든지 혜연 엄마가 요구 하는 것은 다 사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속죄를 받지 너무했구먼. 혜연 엄마는 그 인정머리 없는 사람 뭐가 이쁘다고 수발을 그리 잘 들어 주는 거요." 이구동성으로 우리 부부를 놀려댔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 "그러니 어쩝니까. 제 팔자가 그런 것인지 제가 남편마음을 더 잘 움직이지 못 해서인지도 모르죠. 암튼 입덧 얘기만 나오면 오장이 뒤집히는 것 같다니까요."
 
 외출 후 피곤도 하고 찬바람에 떨고 있는 나목처럼 온 몸이 추위에 경직된 상태다. 간단히 저녁을 때웠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원치 않는다. 남편은 하루 세끼와 간식을 항상 집에서 해 주는 음식만 먹지 외식은 일 년에 몇 번 손꼽을 정도다. 젊어서부터 지병이 있어 늘 섭생에 본인도 주의해 왔고 나 역시도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힘들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방문을 살짝 열더니 얼굴만 내밀면서 남편이 주문을 한다. "요즘 양미리가 알이 꽉 차고 맛이 좋다는데 사다 먹었으면 좋겠는데." 모임에서 좀 깨달은바가 있었는지 유독 눈치를 보며 말 하는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웬지 얄미운 생각이 들어 생선을 뒤집던 뒤집개를 설거지통에 확 집어 던졌다. 그러자 그 속에 있던 그릇들과 부딪쳐 쨍그렁 소리가 요란하다. 그 시끄런 소리를 비집으며 들릴락 말락 하게 튀어나오며 하는 말. "쳇, 웃기네. 자기는 먹고 싶은 것 있을 때마다 언제나 다 요구해 챙겨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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