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나의 고교 시절은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기였다. 시 쓰기에 매료돼 점심시간이면 김소월, 또는 릴케나 하이네의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학교 옆 야산 아늑한 숲을 찾기도 했다. 국어 과목은 내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며 아끼던 청량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던 과목이기도 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정서함양에도 무척 심혈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쉽게 추진하기 어려운 브라스밴드가 창단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 들여 온 악기들은 세계 정상급 Y사의 명품이었다. 나는 문학에 버금가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브라스밴드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클라리넷에 입문했다. 섬세하고 깔끔한 클라리넷의 음색에 서서히 도취되며 나의 문학세계는 음악의 바탕 위에서 조금씩 열려가고 있었다.
널따란 음악실 벽 쪽으로는 그 무렵 유행하던 통기타 수십 대가 질서 있게 늘어서서 까까머리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책가방 속에는 교과서 외에 ‘포크송 모음집’이 필수로 들어있었다. 팝송도 몇 곡쯤은 코드를 짚어가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집에서 기타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한 동안 학교가 끝나면 그 친구네 학원으로 달려가 어깨 너머로 통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6개월쯤 지났을까? 나의 연주 솜씨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 모임이나 캠핑 등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코드를 보지 않고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능력도 그때 다져진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의 고교시절은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도 문학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 나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학보사 기자 시험에 응시, 학생기자가 된 나는 학보에 제법 소설도 연재하며 문학을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강의가 비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교내 음악감상실을 찾아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거대한 이벤트 하나가 우리 세대 앞에 눈부시게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대학가요제’였다.
그 무렵 대학가는 록밴드 열기가 뜨거웠다. 서울대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 밴드가 해마다 모여 솜씨를 겨뤘다. 1977년 MBC가 시작한 대학가요제는 청년 문화를 창작곡 경연에 끌어들여 유신시대 숨 막히던 젊음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나 어떡해’를 부른 서울대 보컬그룹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대학가요제는 지난 36년 동안 젊은이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이 되어 왔다. 대학가요제는 기성 가요제의 저변이 넓지 않았던 시절, 신선한 노래와 얼굴들을 잇따라 배출하는 대학문화의 산실이었다.
노사연·배철수·신해철·심수봉 등 많은 가수들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타로 입문했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돌고 돌아가는 길’, ‘그때 그 사람’ 등의 히트곡이 나왔고 이들 노래는 대학가뿐 아니라 중·고교생과 일반인들에게도 폭넓게 애창되었다.
대학가요제 20년사에서 가장 이색적인 사례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었다. 2회 때 본선에 진출한 이 노래는 그 무렵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통기타 음악과는 리듬과 정서가 사뭇 다른 트로트풍이어서 순위권 안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 오히려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10·26사건과 연관되어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가요제는 대한민국 대표 음악축제로 명성을 떨치며 수많은 뮤지션을 배출해 냈다. 그러나 얼마 전, 스타와 히트곡을 숱하게 배출했던 대학가요제가 지난해의 36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MBC 측은 “제작비는 많이 들고 시청률은 너무 낮다.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허공의 메아리’였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억대 상금을 내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거센 물결을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중의 입장에선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이벤트고, 방송사의 입장에선 계륵 같은 존재였다. 위태롭게 연명해 오다 마침내 방송사 측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한 시대가 마감했음을 나타내는 안타까운 징후이기도 한 대학가요제의 폐지. 70~80년대에 젊음을 보낸 세대는 이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떠나보내게 됐다.
<울산제일일보 / 김부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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