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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기 천국    
글쓴이 : 유시경    13-12-21 01:28    조회 : 7,657
괴기 천국
 
 역으로 들어서는 길목 양쪽에 식당들이 즐비하다. 유리문마다 외국어와 한자로 도색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쪽 면을 거의 차지하였다. ‘양러우촨(羊肉串)’, ‘거우러우 훠궈(狗肉火?)’, ‘마라샹궈(麻辣香?)’ 등. ‘연길호프’라든지 ‘백두한라’라든지, ‘일품향(一品香)’과 같은 이른바 ‘각종 료리’ 집의 간판들이 오밀조밀하게 내걸린 것이다. 시장통의 중간 중간 필리핀이나 베트남 식료품점과 백화연쇄점들이 들어선 것은 낡은 이야기가 되었다.
 남편과 그의 친구 L씨는 중국인 식당들의 입간판을 쳐다보며 음식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계유지는 둘째 치고, ‘구육(狗肉)’이라 쓰인 글씨를 보고는 문득 ‘추억 돋는’ 과거사가 떠올랐으므로,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즐겁게 입을 열게 된 거였다.
 ‘회춘당(回春堂) 한약방’ 집에 세 들어 살던 때였다. 아빠는 부엌에서 뭔가 폭폭 삶고 있었다. 엄마는 방문에 기대 앉아 빠끔히 부뚜막을 내려다보았다. 양은솥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잠시 후 뚜껑을 연 아빠의 손에는 검붉은 고깃덩어리가 들려나왔다. 아빠는 부뚜막에 나무도마를 놓고 익숙하게 칼질을 하였다. 엄마가 있을 자리에 아빠가 대신하는 부엌풍경이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었다. 몇 날은 한약을 달이고 몇 날은 흰죽을 끓이며, 어쩌다가 이름 모를 고기를 고아내는 그 모든 것이 아픈 엄마를 위한 일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괴기 줄까?”
 아빠는 살점 하나를 썰어 내게 건네주었다. 고기 냄새에 흥분한 나는 그것을 넙죽 받아먹었다. 솥단지에서 막 꺼낸, 단 한 입, 단 한 점의 살코기였지만 눈물 나도록 맛이 좋았다. 아홉 살짜리 식탐 덩어리였던 나는 고기를 좀 더 달라고 떼를 썼지만 아빠는 애들이 먹을 게 못된다면서, 아니 이것은 엄마의 약이므로 안 된다고 하였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황홀경. 한 점 살을 씹고 나니 자꾸만 군침이 맴돌았다. 입안에 감기는 촉감, 짝짝 달라붙는 점성과 기름기, 깔끄러운듯하면서 보드라우며 질긴듯하면서도 매끄러운 살성과 후미감. 혀밑샘을 자극하며 누룽지처럼 어금니에 눌어붙는, 차지고 끈기 있는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양은 불분명하지만,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그 괴기’ 맛을 기억하고 있노라고 앞의 두 남자에게 털어놓았다. 또한 그것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맛본 고기의 종류였다고 말했다. 중국음식점 간판에 걸린 한자어로 치자면 그것은 이른바 ‘구육(狗肉)’이었을 것이다.
 고기를 먹은 기억보다도, 개를 삶는 아빠와 그것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퀭한 눈빛이 교차한다는 사실이, 더구나 고기 장사꾼인 이 여자의 말을 믿어야 할지 의문이라는 표정의 남자들. 세상의 모든 고기에 통달하다시피 했다는 남편의 벗 L씨는 내 말을 듣고 비소(誹笑)를 보냈던가. 그 정도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한두 번 먹어본 솜씨는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나는 곧장 후회하였다. 말로써는 내 경험을 진정으로 승화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또 우울해졌다. 믿지 못할 말을 한 내 영혼의 의심 때문이 아니라 그 황당한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로지 자신의 아픔과 싸우다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한약방 집 열두 남매의 막내딸, 서씨(徐氏) 문중의 고집 세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 점순인지 정순인지 정희인지 확실치 않은 이름만큼이나 불행했던 여인, 불행으로 시작해서 불행으로 생을 마감한, 불행한 청춘을 통째로 살다 간 엄마. 이것이 내가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내 생모의 모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그 대부분은 어린아이의 눈에 가장 먼저 띄게 마련이다. 점점 말라가는 아내를 위해 아빠는 병원보다는 집을 택했고 온갖 희귀한 약을 수소문해서 엄마를 살려내려고 애썼을 것이다. 엄마는 서른아홉 평생, 살아생전 모든 종류의 고기를 섭렵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 신문지를 펼친 채 토끼 뼈를 한껏 발랐고, 어느 날엔 고슴도치 뼈를, 어느 날엔 여러 마리의 뱀을, 어느 날엔 수리부엉이가 새끼줄에 묶여 주춧돌 뒤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해야 했다. 살아있는 자라의 목을 작두로 잘라 피를 받아내던 남자들. 목적지도 없이 날뛰며 기어가는 걸 보고 기겁을 하면서도, 그 자라를 삶아 솥단지에 둥둥 뜬 등뼈 속에서 살을 발라 닭고기처럼 뜯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과 이별하기 직전의 엄마는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사람처럼 비쩍 말라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었다.
 나는 전생에 고기와 원수진 사람마냥 고기를 주무르며 굽고 삶아 먹는다. 정신없이 일하는 동안에는 이성적 가치나 인간성을 따지기 힘들어진다. 사소해지고 감정적으로 변해버린다. 아무 생각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못내 허기가 지고 아무거나 주워 먹고 싶어진다. 그이가 보면 화를 내고 종업원이 보면 조롱할 ‘꺼리’지만, 상을 치우다가 불판 위에 손님이 남긴 갈빗대마저 몰래 뜯기도 한다. 남은 음식, 버려지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식어빠진 고기조각에 손이 가는 건 왜일까. 음식에 대한 미련보다는 때로 내 허기의 집착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의식일까 무의식일까. 슬픈 일이지만 의식적으로 쌓아놓은 교양과 지성이 ‘보이는 것들’에 의해 한순간에 갈아 먹히고 마는 원인을 나는 파헤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 나는 차라리 들짐승 같다.
 엄마의 기일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계모임에 나서는 사람들처럼 우리가족은 그렇게 또 만나고 헤어진다. 언젠가 아빠는 연거푸 술잔을 비운 뒤 “내가 죄가 많다. 내가 죄가 많아서….” 라고 탄식하였다.
 “느그 어매를 내가 살려 낼라고 벼라별 짓을 다 혔다. 내가, 내가 말여. 내가 얼마나 느그 어매를 사랑혔는지 아냐? 안 먹인 게 없어야….”
 세상에 널리고 널린 고기. 채소와 과일값은 오르고 고기값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넘쳐서 죽어간다. 우리는 지구의 끝과 끝에 매달려 사는, 아니 반복 순환하는 요지경 열차에 실린 몸이다. 칸칸이 쓰레기통마다 음식 썩는 냄새는 진동하고 듣도 보도 못한 음식찌꺼기들로 넘쳐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은 멈추지 않는 엔진의 노예나 다름없다. 우습게도 나는 그들의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고기를 가공해내는 중간 칸에 탑승해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쯤 우아하게 채식만을 고집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때로 나 자신조차 야수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돼지든 소든 양이든 개든 인간이 먹는 고기는 다 똑같을 것이다. 전에는 아파서 고기를 먹었으나 이제는 아프지 않으므로 고기를 먹게 된다. 누구를 뭐라 책망할 필요는 굳이 없겠지만 나는 ‘괴기 천국’으로 변하는 이 밤거리가 다소 씁쓸하기만 하다.
 동물 위에 동물, 또 동물 밑에 동물. 고기를 구우며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하물며 어떤 날엔 또 이렇게 염원한다. ‘하늘에서 음식이 비처럼 쏟아진다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했다며 부디 욕하지는 마시라.
 
 - 한국산문 2013년 1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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