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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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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두 마디    
글쓴이 : 김혜자    14-07-27 00:56    조회 : 29,392

    

2014년 5월 24일. 스위스와 남프랑스 인문학 기행 아흐레째다.

오전엔 폴 세잔느의 고향 엑상-프로방스를 거쳐 왔다. 세잔느가 북쪽 벽을 온통 유리로 바꿔버린 채광 만점 작업장과, 그가 고집스레 똑같은 산만을 열여섯 점이나 그린 장소인 테랑 드 팽튀르(Terrin de Peinture, 화가들의 땅) 언덕에 올라 그림 속의 그 생-빅토르 산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세잔느라는 화가를 그려보았다. 엑상-프로방스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골목길들을 나도 화가가 되어 돌아다녔다.

어제는 칸(Cannes)에서 묵었다. 마침 ‘칸 영화제’ 개막 전 날이었다. 행사장의 풍경들을 둘러봤다. 계단엔 이미 레드 카펫이 깔려있었고, 몸값 비싼 스타들의 향연이라선지 경호팀의 경계도 삼엄했다. 금년엔 우리 배우 전도연도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으니 저 레드 카펫을 밟고 올라 멋진 포즈로 플래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장한 일이다. 별도로 마련된 포토 포인트는 아직 카메라맨이 없어 조용했고, 바로 길 건너 선착장의 초호화요트들만 빽빽이 늘어서 뽐내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마르세유(Marseille)에 왔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인 이프 섬 탐방을 위해서다. 프랑스 최대 항구인 마르세유 포트는 도시의 한 중앙에 있다. 포트의 삼면을 육지로 감싼 마르세유는 에메랄드처럼 산뜻하고 맑은 지중해를 품고 있었다. 바닷가인데도 갯내조차 나지 않는다. 뭔가 격이 다른 것 같다. 수도 없이 많이 정박해 있는 호화요트들 때문인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알렉상드르 뒤마가 《삼총사》에 이어 다음해인 1845년에 내어놓은 소설이다. 음모에 휘말려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낙인찍힌 19세의 항해사 에드몽 단테스. 이프섬 지하 감옥에 14년간 감금. 극적인 탈옥과 엄청난 보물의 발견.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한 그의 치밀하고도 통쾌한 복수극. 여학교 시절 정말 날 새는 줄 모르고 읽었던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소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옛 은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의 모든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걸 잊지 마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출간 즉시 최고의 인기소설이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자리에서 밀려나 유배당한 시기로 설정하고, 주인공은 밀고를 당해 나폴레옹 지지파인 보나파르트당원이 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내용이 당시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실감나게 읽혔지 싶다. 발자크는 “몽테크리스토, 감미로운 광기가 흐른다.”고 평했다. 동갑내기 빅토르 위고도 “그는 ‘읽고자하는 욕구’를 창조해 낸다. 사람의 영혼을 파고 들어가 거기에 씨를 뿌린다.”고 극찬했다. 뒤마는 하늘이 보낸 얘기꾼임에 틀림없다.

나는 지금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그 섬으로 간다.

이프 섬은 마르세유 앞바다 남서쪽 3km 지점에 있는 석회질의 작은 바위섬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 이프성(城)이 있다. 16세기 초에 세워져 백여 년간 많은 정치범들을 수용하고, 아예 면회란 없었던 악명 높은 중죄수의 감옥이 지금은 바스티유처럼 인기 있는 관광지로 변했다. 에드몽 단테스의 덕택이다. 문학의 힘이다.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찬 배를 타고 15분 쯤 가니 바로 이프 섬의 암벽이 맞아준다. 그곳은 코발트 바다에 떠있는 하얀 절벽이었다.

성 안 통로는 좁고 벽들은 높았다. 네모로 된 감옥의 한 가운데에는 소설 속에 나오는 죄수용 공동 우물이 있었다. 각 방마다 누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수감되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루이14세의 미움을 받아 죽을 때까지 검은 철가면을 써야했던 정치범이 갇혀있었던 방도 있고, 그 성의 최초 수감자가 누구란 것도 다 밝혀 놓았다. 창문이 없는 방도 있고, 굵은 쇠창살 박힌 창문이 있는 방에선 코발트 빛 바다 건너 가까운 섬이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의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의 독방으로 가는 통로는 왜 더 좁게 느껴졌을까. 그가 옆방 파리아 신부를 만나, 벽을 통해 오가던 구멍은 뚫어놓은 상태 그대로 보존해 두고 있었다. 탈출에 대한 집념도 대단했지만 숟가락 같은 하찮은 도구로 벽을 긁어 파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도 석벽이 석회암이라 비교적 무른 재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죽은 파리아의 몸뚱이와 바꿔치기로 탈출에 성공했던 그 철문, 시체를 버릴 때만 열렸던 그 철문의 위치가 소설과는 달리 무섭게 파도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이가 없었다. 이야기꾼 뒤마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선지 이 소설이 영화화 될 때도 극적인 영상 효과 때문에 상당 부분을 이 섬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촬영했다한다.

19세기 프랑스에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등 억울한 감옥살이 얘기가 인기를 끌었다. 아마도 프랑스혁명 후의 소위 ‘자유사상’ ‘프랑스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시 마르세유로 돌아왔다. 해질녘의 바닷가는 한낮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무수히 많은 요트들 너머 저 멀리 남쪽 산꼭대기에 솟은 성당에 불빛이 하나 둘 밝혀졌다. 노틀 담 드 가르드(우리를 보호해주는 성모) 성당이다. 종탑 꼭대기의 황금빛 마리아 상은 오래 등대 역을 해왔다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불을 밝힌 성당 건물은 하얀빛으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그 빛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뱃사람들에게, 그리고 날마다 방황하는 우리 모두의 등대가 되어 일러줬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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