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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니 풀    
글쓴이 : 공해진    15-02-27 20:40    조회 : 4,830
측간 옆 돌담 넘어 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키웠다. 논마지기가 많은 집에서나 소를 키웠지 소농들은 돼지나 닭을 키웠다. 돼지는 특히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에 부업으로 단연 최고였다. 지금이야 배합사료를 먹이로 대량사육을 하지만 당시엔 몇 집 건너 한집에 한 마리 정도 키우는 수준이었다. 한 마리가 먹는 양도 만만찮아 여러 집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도 턱없이 모자라 농사가 조금은 있어야 했다.
보릿고개가 문제였다. 춘궁기에 부족한 사료를 대신하여 봄여름 잎이 연할 때 구세주같이 구원해준 풀이 있었으니 ‘고마니’ 풀 곧 돼지 풀이다. 주로 도랑 주변에서 지천으로 자라 생활하수 정화능력이 뛰어나다고 고맙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내게도 고마운 풀이었다. 외양이 닮은 야생초 ‘며느리 밑씻개‘ 와는 이름과 의미가 사뭇 대비된다.
 
초등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는 망태를 메고 도랑가로 나섰다. 도랑가 아무데서나 수북한 ‘고마니’ 풀을 베어다 우리에 휘익 뿌려주면 돼지는 맛있게 먹었다.
빈 망태 속에는 물고기 잡는 소쿠리를 몰래 넣어 두었다. 풀을 베고 망태를 채우고 난 다음에 물에 들어가 풀숲에 숨어 있는 놈은 발로, 도랑벽 돌구멍에 있는 놈은 손으로 몰아서 소쿠리 안으로 몰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민물장어라도 잡는 날이면 횡재, 어쩌다 물자수에 손가락이 물려 기겁을 했지만 다행히 독이 없는 물뱀이어서 피해는 없었다. 고기 잡는 맛에 더운 날에도 불평 없이 풀을 베러 다녔다.
 
돼지가 새끼를 낳는 것은 우리 집의 매년 행사였다. 돼지는 한배에 보통 6∼12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임신기간은 더도 덜도 아닌 114일이다. 우리 집 돼지 사육은 다른 집에서 시샘을 하듯 유별나게 새끼를 많이 낳아 수입이 짭짤했다. 수업료를 내야 할 때나 돈이 필요할 때마다 내다 팔았고 든든한 생활 밑천이 되어주었다.
어느 해에는 무려 11마리를 낳았다. 그때는 어린 나도 엄마를 거들어 분만을 도왔다. 다 낳았다고 판단하고 비설거지 하듯 정리를 하고는 피곤하기도 하고 늦은 저녁이라 뒷날을 기약했다. 아침에 우리로 갔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12번째 새끼가 밤중에 도움 없이 태어나 비료포대 끈에 휘감겨 한 다리가 묶인 채로 있었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으나 다리는 결국 불구가 되었다. 새끼돼지는 보통 두 달 전후로 10킬로쯤 되면 한 마리씩 내다 파는데 다 팔고나니 12번째만 남았다. 살은 포동포동 쪘으나 한쪽 다리가 골절되어 세 다리만 가진 돼지는 더 키울 수 없었다. 어른들께서 용단을 내렸었다. 어린 마음에 잠시 울컥했으나 잠시일 뿐 그때의 부드러운 수육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고마니 풀과 어린돼지. 도토리 먹고 자란 흑돼지의 ‘하몬’과 겉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새끼돼지 구이 ‘코치니요 아사도’를 합한 맛이라 할까. 아무튼 그렇다.
 
가을 도랑가로 가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풀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자라고 있었을 터이지만, 이맘때면 하얗고 빨간 별사탕 같은 꽃이 눈에 띈다. 이 풀이 바로 언제나 우리 곁에 아무데나 있어서 그리 귀하지 않게 여기는 그냥 돼지 풀, 바로 ‘고마니’ 이다. 꽃이 핀 다음에는 돼지 먹이로 쓰이지 않는다.
고마니는 고마리를 이르는 남도 지방의 방언으로 돼지풀이라 한다. 사람들은 돼지 풀의 어린잎과 연한 줄기를 채취하여 나물과 국거리로 이용하였고 약으로도 썼는데 주로 지혈, 요통, 소화불량, 시력회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수질정화는 물론 중금속 제거 효과도 있다고 하니 도랑가에 흔하게 난 풀이라고 홀대할 것이 아니다.
 
고마니 풀로 키운 새끼돼지 한 마리가 내겐 중학교 수업료가 되었다. 뭐든 부족했던 그 시절, 고마니 풀은 구할 때마다 있었고 찾을 때마다 눈에 띄었다. 워낙 지천에 널려 있어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그 말 한마디 들려주는 것도 인색했던 지난날이다.
 
<<책과 인생>>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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