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백두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bduhyeon@hanmail.net
* 홈페이지 :
  덫    
글쓴이 : 백두현    15-08-06 08:51    조회 : 6,411
 
나의 주말농장 부근 산자락에서 덫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고라니 한 마리를 보았다. 여러 명의 이웃들과 같이 보았는데 각자 설왕설래했다. 지난 계절의 만행을 생각하면 죽어 마땅하다는 사람들과 불쌍하니 놓아주자는 사람들의 의견이 저마다 분분했다. 옥수수나 콩 농사를 망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대로 죽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껌벅거리는 고라니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측은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고라니가 많아졌을까? 요즘 차를 타고 운전하다 보면 길거리에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 숫자가 엄청나다. 게다가 이렇게 덫에 걸리거나 사냥꾼의 총에 쓰러지는 숫자도 부지기수다. 산을 떠나 위험을 무릅쓰고 고라니가 이렇게 마을까지 내려오는 이유는 먹이 때문이다. 농작물이라도 먹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것이다. 그들의 터전에 먹이가 부족하게 된 것은 자신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진 까닭이다. 아마도 개체수를 조절하던 호랑이나 삵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산속의 환경은 그대로인데 고라니 숫자만 많아지니 그도 살기위해 몸부림치다 그만 덫에 걸린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라니는 살기위해 인간의 작물을 탐한 것이다. 살기위해 자신의 몫이 아닌 인간의 농작물을 먹어야만 했다. 사람들도 고라니를 먹어야만 했다면 서로 먹고 먹히며 그나마 개체 수 조절이 될 텐데 사람들은 고라니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갈수록 먹을 것이 남아도는 세상인데 질기고 노린내 나는 고라니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다. 숲에서는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고라니 고기에 관심이 없으니 점점 고라니 수는 더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덫을 놓아 인위적인 개체 수 조절에 나선 것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두는 자신이 살기위해 살생을 한다. 나를 지탱하고자 세상에서 취하는 것 중 생명 아닌 것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살면서 취하는 것들 중 생명 아닌 것이 없었다. 고기나 생선은 말할 것도 없고 풀 한 포기, 과일 한 조각조차 모두는 스스로에게 소중한 생명이었다. 이 모든 것은 미안하게도 나의 생을 위해 다른 생을 취하는 일이었다. 윤회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6도윤회>를 말하며 사람의 환생체인 동물의 살생을 금하고 채식을 권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식물들도 모두 생물이다. 쌀이나 콩 같은 곡물 역시 다음해를 기약하는 소중한 씨앗으로 그 또한 되살아야 할 생명이다.
사실 生의 의미 자체가 다른 生을 취해야 하는 것이 우주만물의 이치이긴 하다. 문제는 고라니 같은 동물의 살생이 오히려 인간보다 인간적이라는 사실이다. 동물들은 배고플 때만 다른 생명을 취한다. 뭐 때론 우두머리를 정하기 위해 다투는 일도 있지만 그때마다 죽이지는 않는다. 대개가 나의 배고픔에 큰 지장만 없다면 크고 작은 동물들 간 다툼이 별로 없다. 유독 사람만이 나의 생명유지와 상관없이도 다른 생명을 취한다. 지금 당장 배고프지 않더라도 살생을 하고 일종의 쾌감이나 욕심 때문에도 생명을 취한다. 어이없게도 군대에서 맞아죽기도 하고 돈 때문에 청부살인도 당하는 세상이다. 이에 비하면 단지 살기 위한 고라니의 노략질이야말로 얼마나 인간들보다 인간적이란 말인가.
그뿐인가. 동물은 생존본능을 위해 발정기에만 암컷을 품지만 사람들은 수시로 이성을 품는다. 동물들은 번식을 위해 스스로 정한 짝과 교미를 하지만 사람들은 돈으로도 사랑을 산다. 경기도 포천의 한 빌라에서 발견된 사체처럼 치정에 얽혀 남편이 아내에게 살인까지 당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덫도 마찬가지다. 동물의 덫은 종족보존을 위해 다른 동물들에게만 놓지만 인간의 덫은 욕망 때문에 인간들 스스로에게도 설치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놓은 비정한 탐욕의 덫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인간답지 못한 슬픈 덫이다.
몽고지방의 사람들에겐 <천장>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시체를 화장하거나 매장하지 않고 나뭇가지에 걸쳐놓아 지나가던 배고픈 동물이나 독수리 같은 새들이 먹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체의 살이 모두 먹이로 제공되고 나면 남은 뼈도 땅에 묻어 식물의 거름에 소용되도록 한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나 그래도 그 의미는 숭고하다. 살면서 취했던 그 많은 생명들을 위로하고자 나도 누군가의 생을 위해 제 몸을 바치는 것이다. 죄 많은 인간들도 죽어 산에라도 묻히면 부디 그 시체라도 거름이 되어 좀 더 숲이 무성해지길 바란다. 그래야 온갖 덫이 많아져 상처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고라니 덫 하나라도 줄어들 테니까.

 
   

백두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26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3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95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