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거리
백 춘 기
지난 가을 여행길에 천년고찰 해남 대흥사 경내에서 수령이 천년을 넘었다는 느티나무의 연리근을 보았다. 다른 곳에서도 몇 번 연리근, 연리지, 연리목을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은 처음 보았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어떤 인연으로 만나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듯하였다. 그곳 안내문에 있는 대로 남녀가 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사랑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기를 맹세하는 자리 같았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이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줄기가 만나면 연리목, 가지가 만나면 연리지라고 부른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연리 나무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데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겼다. 대흥사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로 그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왼쪽은 음의 형태이며 오른쪽은 양의 형태로 언뜻 남녀가 천년동안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비익조는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새로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로 살고 땅에서는 연리지로 살자고 하는 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언약하는 말로 전해져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자고 언약할 때 이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한 몸이 된 것은 본래 인연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인지, 태어 난 뒤 서로를 마주보고 그리워하고 사랑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연리근은 본래 인연이 있었던 사이이고, 연리목이나 연리지는 자라다가 줄기에서 하나가 된 것은 태어 난 뒤 서로 마주보고 그리워하며 사랑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젊어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친척 부부가 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아내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늘 부부 싸움을 밥 먹듯이 한다. 그러니 자식들도 잘 풀리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일이 없었다. 남들 보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잘 사는 것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서로 아옹다옹하며 살았다. 한 때 잘 나가던 사업도 부도가 나서 경매로 집까지 쫓겨났다. 말로는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고 한다. 서로 구속하며 사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헤어지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타고난 인연이라던 연리지도 다시 생각하면 두 나무가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서로 한데 엉켜 딱 붙어 숨 막힐 듯 서로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아서 조금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 혼자만의 자유를 허용하는 운명의 간격이 없을 테니까! 나이 들어갈수록 부부사랑이 더 필요하고 간절해지지만 그렇다고 아예 딱 붙어 지낸다는 것이 오히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그렇게 말했다.
두 분이 함께 하시되 그 안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두 분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속박이 되지는 않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