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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붕    
글쓴이 : 정민디    17-02-08 09:50    조회 : 5,424

                                                 멘붕                   

                                                                                                                                정민디



  “뜨거워서 더 이상 빌딩에 있을 수가 없어요. 이제 곧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야 해요. 무서워요. 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안녕.”

 그날 불 붙는 빌딩에서 새처럼 날던 많은 사람들 중에 제니도 있었다. 그녀가 뉴욕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고 좋아하던 웨스턴미용실 아줌마는 딸하고 얘기도 못 나누고 음성메세지로만 애통한 마지막 말을 들었다. 절체절명의 분노로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아줌마를 봤다. 로스엔젤리스 한인 타운에 있던 미장원을 다시 찾았을 때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폐업 사인이 붙어 있었다. 세상은 슬픈 상태로 변해 버렸다.

 빌딩 밖으로 무수히 떨어지던 사람들에게 낙하산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란 망상을 해본다. 그날 밤 제니 같은 처녀가 정말 낙하산을 타고 파란 하늘에서 떠있는 꿈을 꾸었다. 생중계로 쌍둥이 빌딩이 붕괴하는 광경을 본 충격으로 나도 모든 국민도 ‘멘붕’이 되었다.


  요사이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특히 유행하는 멘붕은 ‘멘탈 붕괴’의 줄임말이고, ‘멘탈’은 ‘정신상태’를 의미하는 ‘멘탈리티’의 줄임말이다. 즉 ‘정신이 허물어져버린 상황’을 의미한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납치한 민간 항공기를 충돌시켜 만든 자살테러 사건으로 수 천 명의 사상자를 낳아 전 세계를 경악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무슬림들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였다.

다음 날 바로, 국민 특히 미성년자들의 충격을 막고자 비행기 공격영상을 다시는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문에 사진도 게제하지 않기로 했다. 각 학교에 심리상담사들이 분주하게 학생들을 대면했다. 연일 비극적인 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의 얘기는 눈물 속에 피는 꽃이었다. 그날따라 지각을 해서 화를 모면한 사람, 일찍 출근해 아침을 사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연기에 쌓인 빌딩을 망연자실 바라 본 사람, 육사를 나온 한국 청년이 침착하게 대처해 20여명을 신속하게 빌딩 밖으로 구출한 경우 등 행운담도 있었지만 누구도 기쁘게 이런 얘길 할 수 없었다.

일찍이 헤르만 헤세가 미국의 생각 없는 낙관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일갈했다.


“과장되게, 아무 문제없이, 미국적인 것을 흉내 낸다. 지독히 우둔하고 믿지 못할 만큼 행복하고 환하게 웃는 살찐 베이비로 분장한 배우처럼 그렇게 이 낙관주의의 붐은 거기 있다. 날마다 빛나는 새 꽃으로 장식되고, 새 영화배우의 사진과 새로운 기록들이 겨우 하루를 가는 것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게 나오니까. 이토록 격양되고 어리석은 낙관주의는 전쟁이며 불행 죽음, 고통 따위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어떤 걱정이나 문제점들에 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헤세가 우려했던 최대강국의 태평성대는 끝나는 듯 했고,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있을 수 없다는 각오로 온 나라의 긴장이 팽배해졌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에 자존심이 몹시 상한 미국은 광분하여 경계태세를 한층 높였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항은 신발 속 까지 조사하고 어떤 액체도 손에 들고 기내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각종 유언비어의 혼란 속에서 공항이 삼엄해졌고 연착이 되거나 결항이 늘어났다. 그리고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 뉴욕이 불바다가 된 후에 내 가게도 9월 매상이 반으로 줄어버렸다. 내 세탁소는 물론이고 옆집 꽃가게, 매니큐어 살롱, 신발가게, 하물며 많이 바빴던 중국패스트푸드 가게도 손님이 뜸해졌다. 가게 주인들도 종업원들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 모두 공황 상태로 무기력해져서 집에서 꼼짝을 안 해 경제가 올 스톱이 됐다.

테러가 나기 전에 나는 이미 멘붕 상태였다. 일 년 전 파산선고를 했었다. 테러 하루 전 9월 10일은 내 생일이었는데 친구가 신용 보증을 서주어 어렵게 차를 샀다. 남편은 남은 땅 팔러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장사가 안 돼 자동차 할부금 내는 것도 힘들어질까 봐 다시 ‘멘붕’ 상태가 된 것이다.'


   애초에 게임을 하다 갑자기 아이템이 사라지거나 상대에게 졌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 내의 논쟁에서 패배했을 때 쓰이던 이 말이 실생활로 확장되어 갑작스레 당혹스럽거나 창피한 일을 당했을 때, 혹은 예상치 못했던 일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두루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멘붕’은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오는 심리적 공황 상태다. 멘붕은 상대화된 가치와 해석을 요하는 사건의 범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주체의 무기력감을 드러내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유행하게 된 것이다. 하긴 고난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는 그 정도가 멘붕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내가 겪은 이민 역사가 진정한 멘붕 종결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이민 초기 Swap meet(스왑밋, 벼룩시장)이라는 장터에서 장돌뱅이로 먹고살기를 시작했다. 누가 이간질을 했는지 정신 차리고 보니 설움 많은 소수민족끼리 총 들이대고 약탈하고 싸우던 허무한 4.29 폭동을 고스란히 겪었다. 동네 흑인 아저씨가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것은 알았는데 어느 날 내 가슴에 총구를 들이대며  권총강도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바꾸어 나타났다. 그래서 아저씨 잘 사셔야 된다고  돈이며 양털양탄자며 줄수 있는 것은 다 줬다. 게다가 한국 재산 가져다 미국 땅에 학습료 충분히 내고도 파산하고 그러다가 원망 할 데가 남편 밖에 없으니 관계가 흔들흔들 했던 일 등, 붕괴가 여러 번 나다보니 나는 꽤 드센 여자가 되었고 정신상태도 황폐해졌다.

9·11 테러 10주년, 무너진 옛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는 마치 유명 관광지처럼  미소를 띠고 가족사진을 찍는 풍경이 흔해졌다. 새로 세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 벽면에는 성조기와 함께 “절대 잊지 말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추모공원도 기념식에 맞춰 개장 됐다. 뉴요커들은 새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의 상징’이 아닌, ‘뉴욕의 부활’을 알리는 건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끝까지 추적하여 은신하고 있던 테러 원흉 빈 라덴도 응징했다.


  그리고 그 동안 나도 신용이 회복 되고 아들들이 학교 마치고 취직을 해서 편해졌다. 살다보니 나에게도 멘붕이라는 말을 재미로 쓰는 날이 왔으니 힘들었던 세월이 많이 희석이 됐다. 무릇 말이란 게 좀 과장 되어야 짜릿하고 중독이 되지만 나를 포함해 요사이 이 유행어를 쓰는 사람들 모두 어리광과 엄살이 심하고 호들갑스럽다.


 정말 멘탈 붕괴가 된 사람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웃는 것을 그만둔, 어처구니없이 딸을 잃은 웨스턴 미용실 아줌마다.

   


                                                                            <2013년 제 6회 한국산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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