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과 섹스
이 영 희
오늘 아침에도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위층에 사는 여인이다. 아침 일곱 시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조금 후면 피아노 연주가 잦아지면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색소폰 소리가 꿀을 찾는 벌처럼 ‘웅웅’‘붕붕’ 내 귀를 자극한다.
어느 날은 늦은 밤에도 연주는 계속 되었다. 십 삼년 전 혼자가 되었다는 위층에 사는 그녀. 자식이 있으니 온전히 혼자는 아니다. 가끔 내가 사는 3층으로 그녀가 내려온다. 향긋한 국화차를 앞에 놓고 두 여자는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눈다. 몇 번의 만남이 있은 후 자연스레 집안일을 이야기 한다. 여인은 남편을 사고로 잃고 한동안은 외출할 수 없었다며 눈가를 붉힌다.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 그녀의 잘못도 죄도 아닌데 어디를 가든지 주위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했었다고 한다.
지금, 그녀의 두 아들은 모두 대학생이다. 단정하게 큰 말썽 없이 아이들은 잘 자라 주었다고 한다. 경제적인 궁핍은 세월과 함께 해결이 된다지만 남편의 자리, 아이들 아버지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꿔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인의 한 숨 섞인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 새 나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배울 점도 많고 점점 그녀가 좋아진다.
신앙생활도 남달리 열성적인 그녀는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피아노와 색소폰을 배우러 다니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투실하지도 않은 얄팍한 몸매와 가슴으로 여자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결코 흔치 않은 배움이다.
여인은 아침과 밤 시간에 귀찮은 소음은 아닌지 내게 물어오곤 한다.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그녀처럼, 악기도 조심스레 다루기에 절대로 소음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색소폰을 부는 아침 시간, 우리 부부는 아직 자리에서 뒹굴 거릴 때가 있다. 느긋한 게으름을 누리며 서로 보듬기도 한다. 위층에서는 외로움을 초월한 여인의 연주는 계속되고 3층의 우리는 밀물처럼 썰물처럼 사랑을 나눈다. 입안에서 굴려지고 녹여지는 사탕 같은 피아노 선율. 그리고 가슴을 풀어헤치게 만드는 색소폰 소리. 그것은 나팔관을 통해 나오는 여인의 달큰한 숨소리와 함께 호흡이 가빠진다.
지금도 삼층과 사층의 시공간을 꿀을 찾는 벌 한 마리가 내 머릿속을, 심장 속을 붕붕거리며 날고 있다. 살다보면, 살아가다보면 여러 종류의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아침을 열어가는 나날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또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전 까지는 아침마다 색소폰이 주는 달뜬 음색에 인생의 아이러니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2006년, 에세이플러스(한국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