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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송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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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마음    
글쓴이 : 송경미    17-08-09 09:08    조회 : 6,195

                                                  가난한 마음

 

화다닥!’

덮고 있던 홑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내 얼굴까지 기어올라 소름끼치게 하던 이 괘씸한 벌레는 그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기구나! 바닥에 나가 떨어졌군. 저도 놀랐겠지? 죽은 척 하는 거야? 쪼끄만 게 어딜 기어 올라와.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누군가를 깨워서 단박에 황천길로 보내고 싶지만 깊은 밤이니 목숨만은 살려준다. 너 다행인 줄 알아! 녀석을 기죽이면서 속으로는 몸에 돋는 소름을 달랜다. 그리고 가능한 멀리 밀쳐내는 중이다.

 

송충이를 닮은 2cm 남짓한 털북숭이 녀석이 나를 이렇게 놀래키다니. 그래도 바퀴벌레나 생쥐보다는 백배 낫다. 뭐 나한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그놈들은 늘 더러운 곳에 모여 우글대는데 넌 혼자인 것도 그렇고, 어느 구석으로 도망치면 집어낼 수도 없어 내 몸만 근질이는 그놈들보단 많이 나아.

정신을 차린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이 녀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머리에는 털이 송송 나있는 게, 내가 좋아하는 슈나우저 얼굴처럼 귀엽기까지 하다. 저 복슬복슬한 털 사이에 채송화 씨보다도 작은 눈이 숨어 있겠지?

지금 날 노려보니? 나랑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거야?‘

그래요. 공중에 솟구쳤다가 내동댕이쳐져 정신을 못 차리겠단 말예요. 앞길 가로막지 말고 그 태산 같은 얼굴 비키세요!’

장애물의 정체가 위협적이지는 않다고 판단했나? 벌레는 슬슬 방향을 틀어 움직인다. 이제 제 갈 길을 가려는가 보다. 부지런히, 정말 부지런히 기어간다. 어디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 찾는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기어가는 모습이 꼭 나 같다. 쉼 없이 가고는 있지만 끝은 알 수 없는 삶이 아닌가? 쉴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으니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맡기고 나아가야 한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 녀석은 아직 2미터도 못 갔다. 휴식도 없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 몸으로 오체투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배가 고플까. 안쓰러운 생각에 밥을 주기로 했다. 늘 종종거리며 소득 없이 바쁜 내게도 열심만은 기특하다고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 좋겠다. 뭘 주나? 그래 꿀을 주자. ‘넌 로또를 맞은 거야.’ 몸체보다 큰 꿀 덩이를 만났으니 말이다. 먹을 게 목적이었다면 이제 기지 마라. 안 기어가도 되니 좋지?

꿀 무덤에 고개를 처박고 먹어대는 녀석은 돈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우리 인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꿀을 먹느라 오물댈수록 작은 몸은 점점 꿀 속에 파묻히고 얼굴의 털은 꿀범벅이 되어버렸다. 복권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달콤하고 안락한 생활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하고 뭐가 다른가?

이 또한 내가 구해줘야지.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오길 바라며 로또복권을 긁은 것도 아니고 배고프니 밥 달라고 보챈 것도 아니잖아? 성실하게 앞만 보고 기어가는 녀석의 앞길을 내가 막았으니 구해주리라. 종이 조각으로 반짝 들어 꿀 독에서 빼내주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또 앞만 보고 기어간다. 너는 나보다 낫구나. 그 맛있는 꿀에 미련을 두지 않고 기어가는 너의 모습, 참으로 가상하다. 주춤대고 서성이며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껍데기 같은 발걸음을 옮기던 나와는 사뭇 다른 네가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하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꿀이 묻은 꼬리가 하필 카펫 모서리의 수술에 붙어 녀석의 발목을 잡는다. 꼬리를 지렛대 삼아 그 관성으로 전진하던 이 녀석이 이젠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쳐도 수술이 엉켜 작은 몸을 더욱 옭죄고 있다. 그 달콤한 꿀이 죽을 함정인지 알았더라면,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라도 덥석 덤벼들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니면 꿀이 말라서 저절로 압박을 풀 때까지 단식하며 기다릴 줄이라도 알든가.

화장지 한 장을 받쳐 주고 몇 번 뒹굴리니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그냥 맑고 가볍게 가는 거야.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도 있잖아. 너는 그러겠지? 세상이 확 뒤집히는 천재지변을 만나서 공중제비를 돌다가 내동댕이쳐지고 평생 편히 앉아 먹을 꿀 독에도 빠져봤고 몸을 빼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옭아매는 밧줄에도 묶여봤다고. 종일 기어봐야 별 볼일 없는 벌레의 삶이지만 그래도 온몸으로 기어가는 것이 제일 좋은 법이라고.

그래, 너를 다시 만날 때는 네 의지대로 기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그저 지켜만 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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