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골프
노정애
“글을 쓰려면 주제와 소재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는데 전혀 못 들은 척하고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쓰는군요.” 수필을 써 보겠다고 몇 해를 다닌 수필창작 강좌에서 선생님이 한 말이다. 어디선가 들어봤다.
“어떻게 시키는 대로는 절대 안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지.” 골프 연습장에서 남편이 한 말이었다.
몇 해 전 남편은 떡 벌어진 어깨와 마른 모델의 허리둘레쯤 되는 내 허벅지 사이즈가 골프하기에 손색이 없겠다며 싫다는 나를 연습장으로 보냈다. 신체 조건은 박세리도 울고 가겠다며 열심히 하면 프로의 실력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살살 부추겼다. 몇 해를 에어로빅에 다녀서 뚱뚱해도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마누라가 운동신경이 형편없어 고등학교 때 100M를 20초에 달린 것도, 광안리 갯가에서 살면서도 수영을 못해 수영장에서 물에 뜨는 것만 배우는데도 한 달이 걸렸는지도, 오랫동안 에어로빅을 해도 잘 따라하지 못해 항상 뒷줄에 서서 열심히만 할 뿐 제대로 하는 동작이 없다는 것도, 운동 후의 수다 떨기를 더 좋아하는 것도 몰랐다.
가끔 부부동반으로 골프를 가거나 함께 연습장에 가면 내 실력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남편은 기가차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박세리가 어이없어서 울고 가겠다며 이렇게 저렇게 쳐보라고 주문하고 자세도 잡아줘 보지만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타박을 했다. 하지 않겠다고 심통을 부리는 나를 달래도 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그의 인내력도 바닥을 들어내기 일쑤였다.
우리의 귀가 길은 늘 묵언수행으로 마음속으로만 독설을 퍼부었다. 운전과 골프를 남편에게 배우면 이혼하기 십상이라는 진리를 잊지 않았기에 적당한 선에서 입을 닫아 그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은 다행이리라.
수다 떨기를 좋아해 한번 입을 열면 멈출줄 모르는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한 것이 누구였던가? 하지만 글쓰기도 쉽지 않았다. 지적 깊이와 사유도 없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재로 겨우 몇 줄을 쓰고 주제 의식 또한 없어 얄팍하기가 종이 같았다. 공부만 하면 언젠가는 잘 쓰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문학강좌도 듣고 책도 읽어보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깊이 있는 지식은 내 머릿속에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수필 창작반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회원들과 밥 먹고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하니 날라리 학생이 분명했다.
가만히 보니 수필 쓰기와 골프는 닮은 점이 많다. 둘다 시간과 노력, 돈과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수필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하며, 사색과 다작, 좋은 스승에게 배우고, 많은 사람들의 조언도 들어야 좋은 글 한편 건져 올릴 수 있다. 물론 글쓰기에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노력 없이도 잘 쓴다면 그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리라.
골프 또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 여유와 연습이 가장 큰 몫이다. 시작 할 때 프로에게 레슨을 받아 안정된 자세를 배우고, 항상 연습하며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 닦아야한다. 필드에 나가서 잘 쳤을 때 보다는 못 쳤을 때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모자란 부분들은 연습으로 채우고 보완해 나가야한다. 나이가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꽤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둘은 닮았다. 또한 게으름은 가장 큰 적이다.
비단 이 둘뿐이랴. 산다는 것이 자신의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투쟁과도 같은 열정적인 노력의 시간들이 모여 거대한 꿈도 바라던 소망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 첫 문장은 단 몇 줄 만으로도 좋은 글인지 판가름 된다. 글의 시작은 다음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골프에서도 첫 드라이브 샷을 날리면 그 사람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첫 샷을 위해 연습장에서 제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잘 쳐보겠다고 힘껏 치다보면 OB나기 십상이다. 레슨을 받을 때 처음으로 듣는 말은 힘을 빼라는 가르침이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공 찾는 숲 속의 사냥꾼이 되기 쉽다. 글에서도 힘을, 혹은 욕심을 빼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담으려는 욕심으로 글에 힘이 들어가면 독자는 단 몇 줄의 글도 난해시 보다 읽기가 힘들어진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소재를 이용해 주제로 접근해 가면서 쓰고자 하는 방향으로 무리 없이 흐르게 해야 한다. 잔가지들은 치고 골격만을 남겨 간결하게 써야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홀을 향해 남은 거리를 계산하고 자신이 보낼 수 있는 정확한 채를 선택해서 샷을 날린다. 글에서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나 엉뚱한 말들을 쏟아 부어 흐름을 놓치는 것처럼 세컨 샷도 방향을 잘 못 보거나 욕심껏 멀리 보내려다 땅만 파는 삽질로 물이나 벙커에 빠지거나 때론 바로 앞에 떨어지기 일쑤다.
글은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여운이 있는 문장으로 끝맺는 것이 좋다. 잘 써왔는데 쉽게 끝내지 못한다면 길 잃은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소재와 주제의 통일성과 일관성 그리고 완결성과 균형에 유의하면서 퇴고의 과정을 거쳐 다듬어야 한편의 수필이 완성된다. 골프에서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파4홀에서 두 번의 샷으로 그린에 올리고도 4번의 퍼터를 친다면 지금까지 잘 친 것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보통은 다음에는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기반성으로 마무리 되곤 한다.
나는 수필 쓰기나 골프에서 똑 같은 말을 들었다. 앞으로 내 별명을 사오정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단 글쓰기나 골프뿐이랴.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만 하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말에는 귀를 닫고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만 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이 둘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수필이 좋고, 골프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는 동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그 순간들을 좋아한다. 무엇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만 시간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만큼 투자하지 않았으니 아직 희망은 있다.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직언 해줄 사람도 있고 애정과 관심이 있으니 낳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좋은 결과를 위한 숙성의 시간들은 노력과 열정으로 채워야 가능하리라.
건강이 허락한다면 게으름을 멀리하고 최선을 다해서 언젠가는 보통은 넘는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80타대를 쳐서 남편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고 멋지게 한 방 먹여 줄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