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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밥상    
글쓴이 : 노정애    17-09-05 20:11    조회 : 4,542

특별한 밥상

노정애

 

일주일에 한 번 밥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들 너무 바쁘다. 쌀 소비가 줄어서 걱정이라는 보도가 딱 내 집이야기다. 아침 6시면 온가족이 앉아 밥을 먹던 일상도 큰아이가 성년이 되면서 막을 내렸다. 작은아이까지 대학생이 되면서 딸들은 365일 다이어트 중이다. 나날이 불어나는 뱃살을 걱정하는 남편마저 간편식을 요구했다. 더 이상 주중에 아침상을 차리지 않는다.

별일이 없는 휴일 아침에 식구들은 밀린 잠을 자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함께 밥을 먹는다. 일주일 만에 모두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긴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에 무탈하게 보낸 한주가 담겨있다. 지난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중 하루다. 리차드 커티스감독의 <어바웃 타임>을 보고난 어느 날부터 이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모티브로 시작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많이 쓰는 시간여행이라는 진부한 소재다. 타임리프자신의 의지로 시간이동이 가능한 능력이다. 본인의 의지 상관없이 다른 시간대로 들어가는 타임슬립과는 다른 의미를 하는 팀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도 아니다. 그럼에도 가족애를 중시하는 우리정서와 맞았는지 한국에서 3백만명 이상의 관객몰이를 하며 크게 성공했다. 주인공 삶의 몇 년 만을 보여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영국의 콘웰 마을에 살고 있는 팀(돔 놀 글리슨)은 성년이된 어느 날, “우리집안 남자들은 20살이 넘으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서 가고 싶은 시점을 떠올리면 된다. 팀의 첫 번째 목표는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여러 번 번복 한다고 해서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시간여행을 할수록 걱정은 더 많아지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워진다는 것도 깨닫는다. 조금 어벙하고 빈틈투성이인 팀의 행동들은 때때로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 그는 주변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타임리프를 많이 한다. 물론 자신도 그 능력 덕분에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와 행복한 가정을 꾸민다.

마지막에 팀은 아이 셋이나 둔 아빠로 열심히 살면서 더 이상 과거로 가지 않는다. “단 하루라도 내가 이날로 되돌아와 다시 산다고 생각하며 그날을 즐기려고 매일 노력한다.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 것, 마치 그날이 특별한 내 삶의 마지막 평범한 하루인 것처럼.”이라는 주인공의 말로 마무리 된다. 비현실적 이야기인데 현실감 있는 깨달음을 주고 영화는 끝이 난다. ‘지금 곧 세상을 하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게 남겨진 시간은 기대하지 않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라.’는 현제(賢帝) 마르쿠스 아우렐이우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부자간의 시간여행이다. 팀은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수시로 티임리프를 통해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그러던 중 자신의 둘째아이 출생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러가는 장면이 나온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영화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삶을 바꾸면 아이도 바뀐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참는 아들을 보며 알아챈다. “혹시 이게 마지막 여행이니?” “네 아버지 곧 아기가 태어나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거 있으세요?” “있지...산책이나 갈까?” 그리고 둘은 미래가 바뀌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과거로 간다. 팀의 어린 시절, 부자는 해변에서 산책을 한다. 잠시 후 바다를 보고 앉아있는 둘의 뒷모습이 화면 가득 비춰진다.

평범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 장면에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산책처럼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내 삶의 소중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어디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이 물음은 한동안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그러던 어느 휴일 날, 평소처럼 아침밥을 준비했다.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진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를 희망하며 식탁을 차린다. 손이 많이 가는 제철 나물을 만들고 모두가 좋아하는 반찬과 갓 지은 밥 냄새로 식구들을 깨운다. 또 다시 일주일 만에 밥상 앞에 함께 앉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며 여유롭게 밥을 먹는다. 지난 한주의 일들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화기애애하다. 칭찬과 격려는 덤으로 따라온다.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작은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 평범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아침이다. 그때서야 알았다. 나는 어리석게도 과거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했다. 10, 20년 후의 어느 날, 내가 타임리프하고 싶을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다. 유레카! 어려운 과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했다. 마음속에서 봄바람이라도 부는지 따뜻한 기운이 부풀어 올랐다. 둥실 하늘이라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세월 속에 숨어있던 작고 소박한 일상들과 지금 이순간이 한 없이 소중해졌다. 그 뒤 주말의 아침은 내게 나날이 더 특별해지고 있는 중이다.

요즘도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인생의 단 한번 몇 시간의 과거여행을 할 수 있다면 추억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언제인가?’를 가끔 묻곤 한다. 바로 함께 있는 지금일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극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도 이런 평범한 일상들은 함께 있다. 그런 크고 작은 일상들과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만들어지리라. 그러니 즐겨라. 살아라. 팀이 말한 되돌린 시간처럼, 장영희의 내생에 단 한번에 나왔던 오늘이 언제나 지상에서의 내 나머지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라는 글처럼.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때가 될 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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