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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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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무게    
글쓴이 : 노정애    17-09-05 20:22    조회 : 6,686

돈의 무게

노정애

 

월요일 조간신문을 식탁위에서 읽다보니 로또 당첨 번호가 나와 있다. 지난주 사두었던 로또를 꺼내왔다. 세 개의 번호라도 맞기를 바라며 동그라미를 쳤다. 한 줄에서 2,4,24 세 개가 연속으로 쳐졌다. 네 개, 다섯 개, 손이 떨렸다. 한 줄에 동그라미 여섯 개. 로또 1! 가슴이 북 두들기듯 요동쳤다. 놀란 심장을 달래며 심호흡을 했다. 눈을 비비며 회차와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역시 1등이다. 안방에서 남편이 출근을 서두르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망설였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야하나? 찰나의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하고 남편을 불렀다. 서윤아빠~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서윤아빠.

눈을 뜨자 침대였다. 여전히 가슴은 두근거렸다. 텅 빈 손을 올려보았다. 그럼 그렇지 내 복에 무슨 로또 1등이야. 아쉬워서 허탈하기까지 했다. 남편에게 말해야 하나를 망설였던 순간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내 반쪽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돈 앞에서는 남이였다. 꿈속에서도 그러니 현실은 오죽할까. 고개를 돌리니 옆지기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가여운 생각이 잠시 스쳤다. 혹시 1등에 당첨되는 예시일지도 몰라 번호를 적어두었다. 다음날 그 번호와 유사한 번호들의 로또를 샀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1530년대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로토라는 복권이 나왔다. 이것이 지금의 로또이다. 미국의 명문인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의 대학들도 민영화된 복권발행의 기금이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산 한 장의 복권이 모여서 이렇게 멋진 학교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뿌듯하다. 복권구입자중 20%가 중독자라는데 일 년에 한두 번 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이다. 80Kg 쌀 한 가마니에 들어 있는 쌀알은 260~300만개쯤인데, 쌀 세 가마니를 쏟아놓고 검은 쌀 한 톨을 섞은 뒤 눈을 가린 채 그걸 집어들 확률임을 나도 안다. 떨어져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지몽까지 꾸었으니. 1등에 당첨된다면 더 좋겠지만.

며칠을 은밀한 곳에 보관해둔 종이 한 장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당첨금을 어디에 쓸지가 고민이었다. 형제들이나 시댁 식구들에게 얼마나 줘야할까? 시골 친정엄마에게 좋은 집이라도 한 채 사드릴까? 노후를 위해 작은 건물을 사둘까? 매 분기 후원하는 장애인 재활센터에도 나눠줘야겠지. 이런 고민들 틈에서 남편에게 말만 하고 분배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지도 굳어가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돈을 나누면 늘 모자랐다. 내가 좀 더 가지려고 하니 도와줄 가족이 너무 많았다. 받는 금액의 30% 이상 나가는 세금도 아까웠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로또에 당첨되고 불행해졌다는 뉴스도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사고 싶은 물건들이 하나하나 늘었다. 평소에 보지도 않았던 신문의 매물 광고를 유심히 살폈다. 근사해 보이는 건물들을 보면서 당첨 금액이 많았으면 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사서 고액의 돈을 나에게만 몰아주면 하는 욕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드디어 로또번호가 발표되는 날. 주말저녁이라 남편도 있어 방송으로는 보지 못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조용히 번호를 맞췄다. 이런! 한 줄에 고작 한두 개의 번호만 맞았다. 결과는 꽝! 괜히 속이 상했다. 번호 3개도 못 맞히는 개꿈에 머리 지진 나게 고민했던 며칠이 떠올랐다. 고민들이 한 순간에 해결된 것이다. 시원섭섭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남편에게 개꿈 꾸고 로또 산 이야기를 했다. 짧은 순간 당신에게 말해야 하나를 망설였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배신감을 느낀다며 눈을 흘겼다. 말 안 해도 좋으니 걸리기나 하라며 자신도 그랬을지 모른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 날 이후에 옆지기의 씀씀이가 커지면 로또 1등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그에게 보내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을 보면 돈이 행복지수를 올려주지 않는듯하다. 그러나 늘 부족하고 절실하게만 느껴지는 돈. 몇 천원으로 몇 십억을 낳는 황금알이 되어 오기를 우리는 얼마나 소원하는가. 그런 기대가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권을 사게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의 꿈들은 달콤하다. 로또 1등의 큰 액수는 다른 이들의 간절한 바람과 소원을 담아서 산 한 장 한 장이 모여 당첨자에게 가는 것이다. 한 줄에 천 원, 모두의 기대와 간절함이 모여 몇 10억이 만들어진다. 돈의 가치에도 무게가 있다면 복권 당첨금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1등에 당첨되었지만 더 불행해졌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그 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였으리라.

만약 1등에 당첨되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 무거운 무게가 내게 지워진다면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확신은 없다. 욕심 앞에서 삶의 질을 앞세울 자신은 더더욱 없다. 어쩌면 꿈으로 끝나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순간 남편도 남이라는 이기심도 보고 내 욕심이 얼마나 큰지도 알았다. 종이 한 장에 가슴 뛰었던 며칠이 있어 김칫국 마시는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누느라 늘 모자랐지만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어 짧은 시간 행복하기도 했다. 떨어지면 다음을 기대하면 된다. 이런 마음에 요즘도 가끔 로또를 산다. 0에 가까운 확률에 운을 걸어본다. 돈의 무게를 감당 못할지라도 한번만 1등에 당첨되어 봤으면. 어젯밤 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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