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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박자    
글쓴이 : 정민디    17-11-12 19:43    조회 : 5,301

                                                엇박자 

                                                                        

                                                                                                               정민디

   동굴입구에서는 희미한 불빛과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불그스름하고 뿌연 호롱불빛 밑으로 울긋불긋한 옷으로 치장한 여인네들과 거무죽죽한 성장 차림의 남자들이 벽 쪽의 긴 의자로 차례차례 앉기 시작한다. 천장, 벽, 긴 의자 등속이 스페인 특유 테라코타양식의 현란한 타일로 장식돼 있다. 한 쪽 벽에는 투우사가 빨간 천을 흔들며 소와 대치하고 있는 그림의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고, 다른 쪽에는 여러 악기들이 놓여 있다. 가운데 공간에서  공연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니 모두들 무희복장들을 하고 있다. 폭 넓고 긴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술이 많이 달리고 정교하게 수가 새겨진 숄을 걸치고 머리는 쪽을 져 커다랗고 붉은 꽃을 꼽고 있다. 표정들이 밝지 않고 거칠고 비장하다. 무희들은 집시다. 플라멩코를 추려하는 것이다. 기타를 든 남자가 의자에 나와 앉았고 또 다른 남자는 노래를 부르려는 듯 서있다.

  이윽고 기타에서 애절한 소리가 나오고, 앉아 있던 나이 든 뚱뚱한 무희가 날렵하게 걸어 나온다. 그녀는 위로 뻗은 손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발끝에도 긴장을 심는다. 손가락을 배배 꼬부리며 돌리고, 현란한 발의 움직임은 사뿐사뿐 빠르게, 때로는 강하게 바닥을 치며 따다닥 따다닥 구두 밑바닥으로 힘의 중심이 옮겨간다. 노래가사처럼 낮에는 해 따라 밤에는 별 따라 방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외로운 집시들. 무희는 무아지경이 되어 방랑하는 삶을 표현하듯 자꾸자꾸 뱅뱅 돌고 또 돈다. 소리꾼 역시 감정이 고조되어 목에는 굵은 핏줄이 서고 어디에서 건 정착하지 못하는 한을 토해내느라 배가 등 쪽으로 밀려 허리를 구부린다. 깊이 팬 주름 진 얼굴에서 비통하고 구슬픈 가락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만의 혼의 의식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스페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직접 공연을 보고 동영상을 찍어 보낸 장면이다. 짚시들이 동굴에 숨어 살며 춤을 추던 것을 지금도 전통을 보여주려 동굴에서 공연을 한다. 이 영상은 한 동안 나의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그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춤을 좋아한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즈음 아직 까지 남아 있던 땀구멍 구멍 마다 숨어있는 정열을 배출 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엘에이 로컬 신문에 난 플라멩코 강습기사를 보게 됐다.

 ‘바로 이거야! 정열하면 플라멩코잖아?’ 하고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맞물려 멋진 기타리스트를 만난 게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오르는 계기가 됐다.

   이 춤은 인도와 더러는 페르시아 쪽에서 유럽으로 이주해 온 유랑민들인 집시들의 고유한 춤으로써 노래꾼, 플라멩코 기타, 무희 셋이 한 조를 만들어 공연을 한다. 노래는 한을 토해내는 듯해 우리네 창과 아주 흡사하다. 지금은 플라멩코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춤의 로고가 됐고 그 나라의 민속춤사위가 플라멩코에서 많이 응용한 것이다

 오십대 후반의 미세스 고메즈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한 예술가였다. 그녀는 몇 년 전 유방암을 앓고 나서는 더욱 더 춤을 열심히 가르치고 본인의 공연도 자주 했다. 이십대 초반쯤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어려서부터 췄던 플라멩코를 계속 했다. 미세스 고메즈는 동양적인 작은 체구에 꿈꾸는 듯 반짝이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태계 집시라 한다. 생애 전반을 플라멩코를 추면서 보낸 선생님은 많은 제자를 키워 냈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셨다. 어떤 형태로든 춤을 춰 본 경험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면 플라멩코를 배우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운 춤 중의 하나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무릇 알아 간다는 것은 더 많은 호기심을 부르고 환희도 주었지만 이 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도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여러 다른 춤을 추어 온 나는 새로운 것을 익혀야 되는 것에 대해 별반 두려움은 없었고 내심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플라멩코기타의 음은 너무나 생소하고 군데군데 갑자기 복병처럼 튀어나오는 엇박자가 우리네 가락 같지 않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빠른 동작의 춤을 익히기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몸의 조직은 둔해져 있었고, 발동작이 많아 무릎에 무리도 생겼다. 게다가 그들의 문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오로지 흉내 낼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내 춤추는 모습은 서양여자들이 한국무용을 어설프게 추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오버랩 됐다. 한국의 살풀이도 추어내지는 못하는 내가 어찌 집시들의 혼이 담긴 춤을 감히 흉내 낼 수 있으랴.

  겨우겨우 공연을 하게 됐다. 여러 인종들이 모여 자기나라 민속춤을 추기로 하고 대학 강당을 빌렸다. 일천한 춤 솜씨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기도 민망해 나를 아는 관객이 없는 게 편했다. 아들 한 명만 초청했다. 그런데 그 한 명의 관객 때문에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 생겼고, 그가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아들은 공연 내내 이제나 저제나 탈춤 추는 엄마가 나오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다음 순서는 스페인의 플라멩코” 라는 소개에 이어 엄마 비슷한 사람이 나와서 깜짝 놀라 자꾸 보니 진짜 우리 엄마더란다. 하긴 사전에 아무 정보도 없이 온 아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엄마가 하도 이것저것 바꾸어 취미생활을 하기 때문에 엄마의 행보에 무관심해진 것이었다. 끝나고 선생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너의 엄마 참 잘했다고 용기 주시는 말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맘(Mom), 놀래서 잘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지?” 

라고 말했다. 공연을 제대로 보았다. 한 박자씩 느린 것 같기도 하고, 제일 둔중하거나 빠른 음악을 잘 따라가지도 못했다는 등 하여간 혹평 일색이었다. 

  “아니, 그런데 한국 사람인 엄마가 왜 스페인을 소개할 때 나와?” 

 아들은 엄마가 한국 사람이니 당연히 탈춤을 출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가 깜짝 놀란 것이다. 그날 아들이 환상방황을 하고 있는 나를 무참히 끄집어내어 주었다. 나는 알아 버렸다. 그 춤을 추고 있던 잠깐 동안 스페인에 이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엉뚱한 곳에 가서 크나큰 이질감과 싸우며 억지로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선생님은 골반과 다리 쪽에도 암이 전이 돼서 돌아가셨다. 전화를 하면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서 춤을 추자고 안타까운 희망을 버리지 못하셨는데. 선생님이 안 계시다는 핑계는 자연스럽게 춤을 중단하게 했다. 그리고 꽁지머리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도 엇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느린 박자, 빠른 박자, 슬픈 박자, 기쁜 박자, 화나는 박자, 어긋난 박자, 우리네는 참으로 다양한 박자들로 산다. 플라멩코 춤으로 한 때 삐거덕 거렸으나, 한 박자 쉬며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엇박자였다고 여기리라. 힘들게 추었던 플라멩코의 불같은 시간을 내 몸 구석구석에 화인으로 간직하리라. 

  그래도, 아직도, 환상방황을 한다. 늦은 봄 바르셀로나로 아들의 졸업식에 갈 예정이다.  그때 그곳에서 땡땡이 무늬의 빨간 드레스를 입고, 붉은 장미를 머리에 꼽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아들 축하 한답시고 세비야나스를 추고 있을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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