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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발에 날개 달고    
글쓴이 : 유시경    17-12-01 23:36    조회 : 6,225

착한 발에 날개 달고

 중학교 1학년 소녀시절, 2차 성징에 한창 신경 쓸 즈음이었다. 한 여름날 옆방 순경아저씨 댁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아저씨가 내 발을 내려다보시더니 박장대소하였다. “여보, 시경이 발 좀 봐. 발가락이 어찌 이래 생겼나? 얼굴은 계집앤데 발가락은 짧고 뭉툭한 게 꼭 머시매 발 같구나, 하하. 발가락 벌어진 거 봐. 발가락 키가 다 똑같네. 정말 우습구나.” 나는 쑥스러워 그만 얼굴이 벌게져서는 벽에 딱 붙어서 두발을 모으고 발가락 열 개를 꼼지락거렸다. 아저씨 부인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아니야. 작고 예쁜데 뭘 그래.” 하시며 그 상황을 급히 수습하는 거였다. 그때 보았다. 아주머니 맨발은 발가락끼리 비스듬히 누워있어 그 모양새가 참 기다랗고 반드러우며 큼지막하게 생겼었다.

 나는 외형에 비해 발이 매우 작은 편이다. 그러나 작기만 할 뿐이지 그다지 우습게 생긴 것은 아니다. 발이 생기다 만 것처럼 보이는 건 순전히 몽당연필 같은 열 개의 발가락 때문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내 발은 그저 덜 자랐을 뿐, 심지어 손보다는 밉지 않고 발바닥 아치모양도 옴팍 들어간 게 좀 상냥하게 생겼다. 어른들은 여자가 발이 크면 못쓴다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내 발을 보고 아주 곱살스럽게 생겼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이 꽤나 듣기 싫었었나 보다. 길고 뾰족한 발가락을 갖고 싶은데, 운동이나 무용을 잘 하는 사람들 발모양은 참 미끈하고 날렵하기도 하던데, 나는 뉘를 닮아 왜 이렇게도 발이 쪼그만지, 발가락은 왜 또 싹둑 잘린 것처럼 무디고 어정쩡하게 네모꼴로 생긴 건지, 왜 여자 발은 착하고 얌전하게 생겨야 하는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그저 부지런해야 먹고 사는 걸 달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내 발은 좀 억울하게 생겼지만 그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도 같다. 225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나의 발은 걸을 때마다 보폭을 조절하느라 엉덩이를 실룩거려야만 했다. 그 탓인지 여중고 시절 간혹 오리궁둥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짓궂은 아이들이 뒤에서 따라오다가 “야, 오리궁둥이! 너 일부러 흔드는 거 아냐? 너무 흔들어댄다. 어지간히 꼬리쳐라.” 하고 장난치며 웃었다. 친구들은 걸음걸이만 보고도 저 애가 누구란 걸 금세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 좋은 친구들은 뒤뚱발이인 내 뒷모습을 꽤나 매력적이라고 치켜세워 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여고생의 상징이던 플레어스커트를 벗어던지고 성년이 되자 그 오리궁둥이는 볼이 뾰족하고 ‘잘 빠진’ 구두를 신고 다녔다. 그리고 엉덩이가 되똥거리거나 말거나 아예 뒤태가 도드라지도록 꽉 끼는 타이트스커트를 입곤 하였다. 또 남들과 함께 걸어 다닐 땐 발이 좀 편안하고 그들과 비슷한 품새로 걸을 수 있게 한 치수 큰 신발을 사서 신었다. 양말 위에 덧신을 겹쳐 신든지 두꺼운 깔창을 깔아야 했음에도, 주눅 들었던 내 발은 날개를 단 것처럼 나날이 기세가 당당해지고 보폭도 적당히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론 걸림돌에 부닥치고 때론 텅 빈 공중에 헛발질하며 당글당글 살아가는 발. 나는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의 발들은 죄 거칠고 크며 보기 흉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이의 발은 놀랍게도 내 것보다 5밀리나 더 작았다. 22센티미터의 발을 가진 조선족 교포 성옥 씨는 한 주먹도 안 되는 예쁜 발로 물 찬 제비처럼 가게 안을 날아다녔다. 그녀가 발가락을 오므리면 한 손으로도 그 발을 감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뾰족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서 먼 길을 출퇴근하는 바람에 그만 그녀의 발에 병이 나고 말았다. 운동 삼아 걸어 다닌다던 성옥 씨의 발등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점차 부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로 손발을 맞추며 장난치고 신기해하던 우리는 그 여린 발 때문에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발이 작다고 복스럽다거나 바지런하리라는 시대는 멀리 물 건너갔다. 키도 크고 발도 큰 요즘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어느 때는 외려 건강하고 감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보아도 내 발가락은 짤막하고 뭉툭하다. 페디큐어로 장식해도 때깔이 나질 않는다. 내 발은 참 토속적으로 생겼다. 오죽 내세울 게 없으면 발 이야기냐 하겠지만, 맨발에 덧신 하나 신고 식당을 누비고 다니느라 닳고 닳은 발바닥에 경의를 표한다면 적잖이 허세일까. 애써 군말 없이 하중을 견디는 두 발이니,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빗대어 ‘족(足)의 족(足)함’으로 서툰 위안이나 삼아야겠다.

 이제 보니 아직 내 발은 참 자랑할 만하게 생겼구나. 온갖 잡것을 만지작거린 이 손보다야 때가 덜 묻었으니 가히 그것은 높은 곳에 앉은 것만 못지않으리라. 아무렴 어떠리. 날아라, 착한 발들이여.

 -2017년 11월 군포문협 세 번째 사화집 얼과 꼴≫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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