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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걸음 소리    
글쓴이 : 김창식    18-03-12 17:08    조회 : 6,920
                                             발걸음 소리
 
 
 
 다세대 주택 1층으로 이사했다. 집 주변은 쓰레기 천국이었다. 정화조 냄새가 불안정한 음표처럼 떠돌았다. 길고양이가 눈치를 보며 차 밑으로 숨어들었다. 이삿짐 정리하느라 한동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에 살던 아파트에 무엇을 놓아두고 온 것 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딱히 중요하지는 않은데 그렇다 해도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일 법한 물건, 사건 아니면 정황, 그것도 아니라면 자취나 흔적, 혹 소리?
 
 이사를 한 달여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밤 중 섬뜩한 기척에 잠이 깨었다. 숨죽여 귀를 기울인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나 해서다. 발걸음 소리 때문에 잠을 깼는지도 모르겠다. 사위는 적막하고 괴괴한 기운이 흐른다. 아파트 끝집이고 침실은 복도에 면해 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집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 택배원이나 종교인이 문을 두드릴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낮 시간대의 이야기다.
 
 신문배달원인가도 했다. 배달원의 발걸음은 오종종하고 급박하게 마련이며 올 때보다 더 바삐 사라진다. 잘못 찾아든 취객일까? 취객은 비칠비칠하고 허물어진 기척을 내기 십상이다. 군인인 아이가 새벽녘에 온 것인가? 덩치가 큰 아이가 내는 구둣발 소리는 쿵쾅쿵쾅에 가깝다. 문에 다다르기 전 벌써 제 엄마를 부르니 모를 리가 없다. 사내의 것으로 여겨지는 불규칙한 발걸음은 들리는 듯 끊긴다. 낯설면서도 귀를 맴도는 느낌이 수상쩍다. 환청일까? 머릿속 잡음일까?
 
 그 며칠 전에도 새벽녘에 구둣발 소리를 들은 듯하다. 저벅저벅도 아니고 뚜벅뚜벅도 아니며 통통거리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불연속적인데다 묵직한 편이며 두툼한 막대나 쇠붙이가 낮게 끌리는 소리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이 섞인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발걸음은 가까워지다 멀어지다를 되풀이하다 끊긴다. 그러다 멈추는 듯 다시 이어진다. 그러다 또 희미해진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소리인지도?
 
 어떻게 된 셈인지 알아보려면 창문이나 현관문을 열어보면 될 것이다. 실눈을 뜨고 닫힌 창을 비스듬히 올려다본다. 누구요, 하고 소리쳐볼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피부에 와 닿은 무서움은 아니지만 왠지 그래선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미지의 존재와 침묵으로 맺은 선의의 약속이 있어 어겼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 올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라고나 할까.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은 망태 할아버지였다.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철로 만든 집게를 들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망태에 넣어 잡아간다는 할아버지를 정작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그저 머릿속으로 모습을 그려보았을 뿐. 등이 굽고, 앞 이가 빠졌으며, 듬성듬성 수염이 돋은 데다, 한쪽 눈알을 꼈다 뺐다 하는 불구의 형상을. 그래서 더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망태 할아버지가, 혹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가엾은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든 것은 나중 철이 들고나서의 이야기다.
 
 중세시대 독일 하멜른 시의 전설을 바탕으로 그림 형제가 다시 쓴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이 생각난다. 외지(外地)에서 마을로 찾아와 피리를 불며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져버린 그 사나이.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비롯한 파약(破約)을 경고하는 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우리 영화 <손님>은 추리 기법의 향토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요소에 쥐 떼를 등장시켜 괴기함을 더 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도 생각난다. ‘숲 속 두 갈래 길을/다 가 보지 못할 일이 서운하여/눈 닿는 데까지 오래오래 바라보았네/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 하리/두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어/사람이 덜 다닌 길을 갔더니/그 때문에 이렇게 달라졌다고.’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살면서 장님처럼 길을 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맞닥뜨리곤 했다. 때로 길도 없는 곳에서 어느 길로 갈까 망설이기도 했다. 나의 삶은 무엇 때문에 비틀어지고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일까?
 
 발걸음 소리가 끊긴다. 사라진 발걸음은 누구의 것이람? 정말 누가 왔다가 가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문 앞이나 복도 어디쯤에 멈추어 서 있는 것일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발걸음의 주인을 찾아 홀연히 문을 열고 나선다. 사내는 다시금 발을 끌며 멀어지고 쥐 떼들이 흐느끼며 뒤를 따른다. 찍찍 흐흡 츱 츠흡 찌직 찍 츱 찌직 츠흡 흑 흐엉 찌지찍.
  
 새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접어든 골목길에서 쥐의 주검을 보았다. 맞은편에서 파지(破紙) 줍는 노인이 수레를 끌고 다리를 절뚝이며 나타났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리를 비집고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전에 살던 집 아파트 복도를 오갔던 그 사람은 어떤 연유로 간절한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고 나는 그것을 짐짓 모른 체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 속 불안과 방황, 슬픔이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문밖의 그 사람.
 
@ 2017 <<에세이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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