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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에 내린 눈    
글쓴이 : 박옥희    18-03-25 15:13    조회 : 8,146

-엄마 미쳤어?-

박옥희

 눈이내린다.

첫눈치고는 제법 맹렬하게 쏟아져 내린다. 기세로 보아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수도 있겠다.첫눈이 오는 날은 첫사랑을 혹은 안타깝게 헤어진 옛애인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설레는 만남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귓가에 맴도는 말이있다. ‘엄마 미쳤어?’ 

 작년 3월의 일이다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이젠 겨울 추위에서 벗어났다고 긴장을 풀 즈음이었다. 평소에 컴퓨터를 못 다룬다고 나를 구박하는 시집간 딸아이가 아니꼬았다. 가까이에 있는 상명대학교에 등록했다. 매주 한번씩 컴퓨터 수업을 받으러 가기로 한거다. 그 학교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덕분에 오고 가는 길에 생생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때로는 맑은 공기 속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문제는 평생교육원 강의실이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아 겨울에는 일기예보, 특별히 눈 예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3월 중순 어느날 하늘은 맑았고 봄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학교에 갔다두 시간쯤의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에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세워둔 차에 쌓인 눈의 양은 10센티 이상이었다. 그날 집에서 나오기까지 눈 예보는 전혀 없었다. 의심없이 차를 끌고 간건데 밤사이 흰 눈이 쌓인 것처럼 두시간 동안 엄청나게 눈이 쏟아져 내린거다. 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에 모인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다음날 차를 가져 가겠단다. 나는 다음날 이 높은 곳을 걸어 올라올 생각을 하면서 잠시 망설였다.

 결국 겁 없이 눈길을 운전하기로 결정했다.

온몸을 웅크리고 잔뜩 긴장하며 가장 가파른 내리막길 구간인 중학교 앞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어려운 구간을 지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슬그머니 긴장을 풀 무렵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교 입구에서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한거다. 좁은 길에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차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브레이크를 밟지 말라던 말을 떠올리며 차를 세워보려 기를 썼지만 차는 제멋대로 언덕을 내려갔다. 눈앞에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좁은 눈길을 가로지르며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고 있었다. 순간 아이들만은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언덕이 끝나는 앞쪽에 커다란 봉고차가 길쪽에 코를 처박고 있다. 나는 핸들을 봉고차를 향해 돌렸다. 그 차에 부딪혀 차를 세워 보자는 심사였다. 계획대로 내 차는 봉고차를 향하여 미끄러져 갔다.

운전을 포기한채 차 옆에 서 있던 차 주인은 자기차를 향해 오는 내 차를 보고 어 어하고 외마디 소리만 질러댄다. 나는 두 눈을 질끈감고 마지막 순간을 각오 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봉고차를 받기 직전 내 차가 멈춰섰다. 마지막 수단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힘껏 잡아 올린 결과이거나 아니면 그곳이 언덕이 끝나는 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큰 길로 들어섰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눈 덮힌 길에는 차선마저 없었다. 길 양편에는 도로 턱에 코를 쳐박고 내팽겨쳐진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버스도 더 이상의 운행을 포기한 듯 승객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도 차를 버리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면서 거북이 운전을 계속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자주가던 음식점으로 차를 돌렸다. 주인에게는 저녁 손님이 오기 전에 차를 가져 가겠다하고 주차장에 차를 맡겼다.

집에 돌아와 차를 학교에 하룻밤 재우지 않고 무리하게 끌고온 내 결정을 깊게 반성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호 하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봉고차를 들이 받으려 했던 순발력에는 스스로 대견했다. 게다가 길에 차를 버리지 않고 얌전하게 주차장에 맡기고 왔으니 내 운전 실력도 서툰편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걸핏하면엄마는 그것도 몰라?’를 노래 부르듯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말을 꺼낸지 얼마 안되어 딸아이는 전화통에 대고 있는대로 악을 썼다.

엄마 미쳤어?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 차는 왜 끌고 나가

나는 말문이 막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역시나 우리 둘은 코드가 안맞는 모녀지간이다.

 

                                                                                               2017.<<한국산문>>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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