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피어날 아이들
정민디
열세 살 ‘무헤와’ 와 열다섯 살 ‘셔히팡’ 과 친구가 되었다. 태국국경 난민 수용소인 누포 캠프(No Pho Camp)에 사는 두 소녀는 자그마한 나눔으로 공부도 하고 세끼 밥도 먹을 수 있다 해서 친구가 되자고 자청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으로 부모를 잃은 두 소녀는 몇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험한 정글을 걸어 난민촌을 찾았다.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라고 한 마하트마 간디의 강력한 외침 때문만은 꼭 아니더라도 내 앞에 나타난 인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한 신문은 신년 인터뷰로 2010년 11월 14일, 7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미얀마 만주화운동의 선구자인 아웅산 수치여사를 만났다. 그녀는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영토분쟁들에 대해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포용’을 강조했다. ‘원 아시아’ 라는 동질감을 갖고 그 안에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버마 난민들 교육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처음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제안했다. “군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총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얀마 민주화 정당인 민족민주동맹(NLD) 당사 내에 걸려 있는 수치여사의 문구다.
“ 미얀마를 탈출해 태국으로 간 사람들에게 적절한 삶을 유지하게끔 해 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미얀마로 돌아올 때 우리는 어떤 준비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기업이나 개인, 국제사회가 흩어진 미얀마 난민들에 대해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난민촌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 교육문제가 그렇다” 수치여사는 이렇게 호소한다.
난민촌은 무려 9곳이나 되고 난민의 수는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미얀마 국경과 인접해 항상 위험이 도사린 누포 캠프의 불교중학교에는 300여명의 학생 가운데 반 이상이 고아다. 10세에서 19세까지의 아이들이 대나무로 지은 막사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하루 두 끼 밖에 먹지 못하고 있다. 두 끼니 조차도 거의 매일 같은 메뉴다. 밥 한 그릇과 야채들을 넣어 끓인 멀건 국 한 국자가 전부다.
내 친구 두 소녀가 숙녀가 될 때 까지 굶지 않고 공부도 하며 미소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어미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하루빨리 편안해진 조국이 그 들을 불러 줬으면 좋겠다. 그 누가 알랴! 이 척박한 난민 수용소에서도 제2, 제3의 ‘아웅산 수치’ 같은 찬란한 꽃이 활짝 피어날지.
< 서울 문화 투데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