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백두현
부하직원 중에 두 딸을 키우던 엄마가 있었다. 그녀에게 큰딸은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효녀였고 늘씬한 키에 얼굴도 예뻐 나무랄 데가 없는 자식이었다. 게다가 공부까지 잘해 어디를 가나 내세우곤 했는데 고등학교 재학 중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서울의 유명대학 입학이 가능한 처지였지만 가정 형편을 생각해 4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택해 이미 수시에도 합격한 인재였다. 그리고 대학 입학을 확정한 딸은 그간 고생하신 부모님을 생각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근의 스포츠센터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스포츠센터 건물에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대중목욕탕과 헬스클럽, 레스토랑을 갖춘 충북 제천에 소재한 9층 건물이었는데 원인 모를 불이 난 것이다. 그것도 면접을 본다는 딸을 태워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운명적으로 발생했다. 비보를 듣자마자 엄마는 과속과 신호위반을 반복하며 다시 차를 몰아 현장에 도착했지만 야속한 불길은 건물만 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스포츠센터 건물도 태우고 사람들의 애간장도 태우고 삽시간에 스물아홉 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까지 연기와 함께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소중한 딸도 그날 희생되었다.
딸은 비상구를 찾지 못해서 연기를 피해 허둥대며 올라가다 9층에서 엄마에게 마지막 전화를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우리가족 모두 사랑한다고. 전화를 받은 엄마는 시뻘건 불길로 뛰어들려는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심장 떨리는 목소리를 처절하게 뿜어냈다. 그러나 딸은 그날 그 건물을 나오지 못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오기는 나왔는데 끔찍하게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나왔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지만 며칠 전 생일선물로 샀다던 목걸이가 딸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같은 목걸이를 했다고 주위사람들은 무조건 딸이라는 것인가. 엄마는 실신했다 깨어나고 다시 실신하기를 반복하며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결국 유해는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아빠도, 동생도 허둥지둥 시신을 따라 갔다. 그러나 엄마는 따라가지 않았다. 혼자서 집으로 갔다. 내 딸이 분명하지도 않은데 왜 내가 거기를 가야 한다는 것인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내 딸은 절대 죽지 않았다. 다만 찾지 못할 뿐이다.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서 딸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혼자서 그 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가족들은 엄마 없는 장례식장에 향불을 피울 수 없었다. 문상객도 받을 수도 없었다. 막무가내로 집으로 향한 엄마는 그날 밤 얼마나 현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을까. 한 순간도 잠을 청할 수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자고 일어나면 한 줄기 꿈이었기를 얼마나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까.
냉정하게도 시간은 배려가 없다. 안타깝지만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고 그 또한 지나가는 것이라 슬프다. 가족들은 그 날 세상에서 가정 처절한 장례식을 치르고 말았다. 화장했기에 무덤이 없을 딸의 시신을 땅 속보다 더 차디 찬 가슴속에 묻어야 하는 잔인한 의식이었다. 같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 심정으로 나도 눈물이 났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 결코 나눌 수 없는 슬픔을 공유할 따름이었다. 아니, 염치없게도 내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앞으로도 그 엄마는 수십 년간 바람을 따라다니며 울어야 하리라. 나로서는 아무런 죄도 없었지만 하염없는 부채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오래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 내일처럼 슬픈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날까. 세월호도 그렇고, 지금 제천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도 그렇고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적마다 필요 이상의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람은 다음 세상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있다고 믿는 약한 존재다. 그래서 있다고 믿는 다음 세상을 말하며 알량한 부의금과 함께 위로를 건넬 따름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망자가 아닌 스스로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평안하기를. 그 세상은 이런 아픔이 절대 없는 세상이기를. 그리고 이 생의 인연이 부질없이 끝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파 몸부림치는 그리운 사람들과 꼭 다시 만나는 그런 세상이기를.